“또 비가 온다 카는데…지자체는 천하태평” 영주 주민들 잠도 못 잔다

김현수 기자 2023. 7. 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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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공사 빨리해야 한다고
그렇게 민원을 넣었는데,
이제야 공사를 하고 있다”
큰 비 다가오는데 걱정 태산
경북 영주시 상망동에서 46년을 살아온 최해옥씨(69)가 4일 오전 자신의 집 뒤편에서 일부 무너진 축대를 가리키고 있다. 김현수 기자

“저녁부터 또 비가 온다 카는데(그러는데)…. 무서워서 잠도 못 자.”

경북 영주시 상망동에서 46년을 살아온 최해옥씨(69)는 4일 오전 산에서 떠내려온 토사로 엉망이 된 자신의 밭에서 쓸만한 농작물을 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30일 오전 4시40분쯤 빗물에 휩쓸린 토사가 한 주택을 덮치면서 생후 14개월 된 영아가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씨의 집은 사고 현장과 직선거리로 100여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최씨는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비가 내렸다. 비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라며 “우리(가족)도 잘못했으면 죽을 수도 있었”고 회상했다. 이날 최씨의 집 뒤편에는 축대 아래를 떠받치는 토사가 빗물에 쓸려가 축대 일부분이 무너져 있었다.

상망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40대 장모씨도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배수공사 등 긴급 복구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장마전선이 북상하고 있어서다.

생후 14개월 된 영아가 숨진 경북 영주시 상망동의 한 주택에 4일 오전 산사태를 막기 위해 커다란 모래주머니가 쌓여있다. 김현수 기자

장씨는 “빗물을 돌리는 작업(배수공사)을 빨리해야 한다고 그렇게 민원을 넣었는데, 이제야 공사를 하고 있다”면서 “핏덩이 같은 아이가 죽어서 온 동네가 초상집 분위긴데 지자체는 천하태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후 14개월 된 영아가 숨진 주택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지붕과 벽면이 그대로 허물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집 안 곳곳에는 진흙이 잔뜩 고여 있었고, 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난감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허물어진 벽 너머에는 산사태를 막기 위해 커다란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었다.

집중호우로 얼마 전 큰 피해를 본 경북 북부지역에 4일 장마전선 북상이 예보되면서 주민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 여름철 강수패턴이 짧은 시간 동안 좁은 지역에 쏟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로 바뀌면서 주민의 불안감이 더욱 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0시부터 30일 오후 5시까지 경북 영주지역의 누적 강수량은 342.5㎜였다. 영주시 이산면에서 시간당 최대 63㎜의 폭우가 쏟아졌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시간당 30㎜ 이상의 비가 좁은 지역에 쏟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장마는 보통 넓은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리지만, 국지성 집중호우는 특정 지역에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경북 영주시 상망동의 한 주택이 최근 내린 집중호우로 4일 부서진 채 방치돼 있다. 김현수 기자

장마특이기상센터장인 장은철 공주대 교수는 “최근 60년 정도 시간당 강수량을 보면 강한 강수 발생 빈도, 즉 집중호우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해 해수면 온도, 저위도 공기 온도 상승 등 모든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국지성 호우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따뜻한 공기는 더 많은 수분을 품을 수 있다. 결국 지구 온난화가 국지성 집중호우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영국 기상청과 브리스톨대 과학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대기기후과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이 같은 내용을 실었다. 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증가하면 2070년에는 극단적 국지성 강우 현상이 4배 이상 늘고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큰 피해를 본 포항에서도 당시 강우량이 500년 빈도를 훌쩍 넘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이상 기후로 인해 예측하기 힘든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만큼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14개월 된 영아가 숨진 경북 영주시 상망동의 한 주택 안에 4일 토사가 쌓여 있다. 김현수 기자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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