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섭의 수학을 디자인하다] 수학, 킬러문항 아닌 도전과 실패 가르쳐야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근본부터 잘못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라는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 평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3년마다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의 역량을 평가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시행된 PISA에서 꾸준히 높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했지만, 학습에 대한 흥미나 행복지수에서는 매우 낮은 성취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기이한 특징입니다. 수학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집니다. 시험은 잘 봐서 점수는 높은데, 수학을 싫어하는 겁니다. PISA 결과가 나올 때마다 전문가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합니다. 그때마다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한 대화가 오갔는데, 결론은 '수학 교육이 잘못됐다'는 한 가지로 모입니다.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학습의 결과·성적·점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경쟁에 익숙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 합니다. 정부에서 요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킬러 문항'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모든 국민이 알게 됐습니다. 연일 언론에서도 정답률이 낮아 어려운 '킬러 문항'의 출제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습니다. 이 진흙탕 싸움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서 근본부터 잘못돼 있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을 또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오리무중의 수학 교육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객관식과 단답형 문제들로만 이루어진 수능 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수많은 수학 교육 연구에서 강조하고 있는 서술형 문제와 탐구형 프로젝트 문제를 단 한 문제도 낼 수 없습니다. 매년 개최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래 인류에게 요구되는 역량인 창의력, 복합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 의사소통 등과 같은 것들이 논의됩니다. 잘 구성된 수학 문제는 미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보고(寶庫)입니다.
수학 교육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 유형을 익히고 암기해 정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고 결과의 실패를 허용하는 교실 문화가 필요합니다. 현행 수능 제도가 아닌 선진화된 평가 환경에서만 교수학습 상황에서 문제 풀이를 위한 추측과 모험, 그리고 도전과 실패를 장려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명문대 진학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돼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과거'라는 시험 제도와 과거 급제를 위한 지식의 주입·암기식 교육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약 1000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아주 긴 역사를 자랑하는 '등용문' 교육 철학이 계승돼 아직도 한국인의 유전자에 도도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에 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비싼 학원비를 지불하고 명문대행 직통열차 표를 구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점차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반은섭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저자·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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