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경상의료비 209조…보편적 의료 새 개념 필요”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2023. 7. 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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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건강네트워크 설문조사
건보 지원은 중증질환 위주로
“2차 계획 수립시 국민 목소리 반영해야“

지난 3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 의료비는 209조원으로 2015년 109조원 대비 거의 100조가 늘었다. 특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산재보험 등 정부 의무가입 제도에 기반한 의료비는 2015년 63조에서 지난해 131조로 매우 가파르게 상승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을 기점으로 정부, 가입제도 하의 의료비는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상의료비는 국민 전체가 보건의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지출한 최종 비용을 말한다.

이처럼 의료비가 가파르게 상승한 가운데 정부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수립 추진단(공동단장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구성하고 종합계획을 수립중이다. 당초 계획은 6월말까지 종합계획 초안을 발표하고, 의견 수렴 기간을 거쳐 9월까지 본계획을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전체 일정이 지연되면서 이달 말 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한 연구 용역이 마무리되고, 8월께 초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1977년 도입됐고 2000년 의약 분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대부분 선거와 맞물려 정책 방향성이 조금씩 바뀌고 수정됐을 뿐 국민의 의견이 전향적으로 수렴된 적은 거의 없다. 지난 정부에서 2019년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수립을 했으나, 진행 과정에서 국민 참여나 사회 환경 변화를 고려한 사회적 공론화가 미흡했고, 특히 문케어에만 집중돼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원의 86%를 담당하고 있는 피보험자인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분야의 싱크탱크인 미래건강네트워크(대표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이하 ‘미래건강’)는 올해 4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79세 이하 성인 503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뒤 지난 달 19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국민이 원하는 건강보험 개혁 정책토론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건강보험 관련 설문조사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으며, 표본오차는 ±1.38%P였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피보험자인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건강보험 종합계획이 수립되기 위해 고려할 점들을 살펴본다.

◇국민 10명 중 8.5명 “고액 진료비가 필요한 중증 필수의료 지원 강화 요구”= 30대 직장인 A씨. 건강보험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매년 오르는 건강보험료가 부담스럽고, 제대로 쓰이는 지도 궁금하다. 사실 본인은 병원 갈 일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병원에 많이 다니시므로 일정부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보험료 내는 사람들은 적어지는 반면, 인구 고령화로 쓸 사람은 많아질 것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보험료가 올라갈 것에 대한 염려가 크다.

60대 은퇴자 B씨. 은퇴 후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생활하는 중이고 국민 누구나 가입했다는 실손보험 등 민간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혹시 큰 병에 걸리지 않을까 늘 신경이 쓰인다. 주변에는 이미 암이나 뇌졸중, 심장병 등 큰 병에 걸린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다들 건강보험만으로는 보장이 어려웠다고 입을 모은다. 흔한 민간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안 아픈게 절약’이라 생각하고 하루 만보 걷기라도 열심히 하면서 혹시라도 큰 병에 걸려 자기들 살림하기도 여의치 않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3일 건강보험을 개혁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며, 건강보험 목적에 맞도록 중증질환치료와 필수의료를 강화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것을 강조했다. 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 85.0%는 윤석열 대통령의 보건의료정책 방향과 같이 건강보험이 경증질환 보다 중증질환 필수의료에 더 보장을 강화하는데 동의했다. 응답자의 92.2%는 국민건강보험의 목적을 ‘고액 진료비로 과도한 가계부담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 응답자들은 최근 1년간 연간 중증질환 치료 비용이 1156만원으로 경증질환 비용(202만원)에 비해 5.7배를 더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과 관계없이 중증질환에 소요하는 비용은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은 ‘1000만원을 배분한다’고 가정한 질문에서 중증질환에 661.5만원을, 경증질환에 338.5만원을 배분하겠다고 응답했다.

<출처=미래건강네트워크>
강진형 미래건강 이사(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이는 건강보험이 전반적인 보장률 강화보다는, 생명 위험을 줄이고 비용부담을 줄이는 중증질환 필수의료 중심으로 보장을 확대해야 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뜻한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이어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0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건강보험이 지속 가능하면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 원칙을 중증질환과 필수의료 중심으로 대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보편적 의료에 대한 정의 역시 중증 필수의료 중심으로 바뀔 때”라고 주장했다.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 중증질환과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부터 제대로 해야= 그렇다면 정부는 중증질환과 필수의료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위한 기준을 가지고 있나.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을 포함해 정부의 여러 관련 기관들이 발표한 자료들을 보면, 4대 중증질환(암·뇌혈관·심장·희귀 중증난치질환)과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대해서만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미래건강이 실시한 이번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는 중증질환의 예시로 4대 중증질환 외에도 중증 신부전, 중증 치매, 간경변 등 중등도가 높은 만성질환도 포함됐다.

미래건강의 고문을 맡고 있는 최병호 전 보건사회연구원장은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 “중증질환과 필수의료의 정의·범위를 규정하고 보장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2차 종합계획 추진단의 면면을 보면 중증질환과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를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부족하다. 추진단에 보건정책이나 예방의학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중증질환자를 진료하는 대학병원의 교수진을 주요 진료 과별로 보충해 중증 필수의료 정의에 대해 의학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병호 전 원장은 정부의 정책 정비를 위해 ‘(가칭)중증 필수의료 심의기구’를 신설해 중증 필수의료 정의와 지원 범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최 전 원장은 “복지부의 현 필수의료지원관은 중증 필수의료정책관으로 전환하고, 환자와 가족의 부담이 과다한 영역의 급여화를 추진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최 전 원장은 “건강보험의 기본 프레임을 바꿔 중증 필수의료에 대한 보장성 강화 외에도, 의료안전망 기금 마련을 통한 재난적 의료비 보장, 혁신의료의 신속 도입, 그리고 경증과 비필수의료에 대해서는 선별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말기암 희귀질환도 치료 가능한 혁신의료…문제는 고가 진료비= 인공지능(AI) 등 눈부신 IT 기술 발전은 의료기술과 결합해 혁신 신의료 기술과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말기암이나 췌장암 등 기존에는 치료가 어렵던 환자들도 완치되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제 암은 만성병이라는 말들이 나온지 한참 됐다. 이러한 혁신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설문 응답자의 87.9%는 암, 희귀질환 등 중증 희귀질환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을 신속히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국민 83.8%는 전체 약제비 중 신약의 보장 비중을 높여야 하며, 그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살리거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91.2%),’ ‘보장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의료비용 또는 요양비용, 사회경제적 부담 등 손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87.1%)’ 등을 꼽았다.

강진형 교수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실제로는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도수치료 등 경증질환 치료 보다는 중증질환 치료에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올해 초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에서 의학적 필요성이 낮은 항목에 대한 일률적 급여화로 인한 의료이용의 남용과 부적정 이용, 상급병원 쏠림 현상,국민과 의료진의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절감된 재원들이 생명에 위협을 주는 중증질환 치료에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입자 가속기 등 신의료 기술이나 항암제, 희귀질환 신약과 같은 혁신의료는 대부분 고가인 까닭에,아직 모든 국민들이 혜택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볼 때 혁신의료가 효과적으로 국민들의 생명을 구제하면서도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도록 경제성 평가를 정확히 하는 정부 정책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혁신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 해외로 원정 치료를 떠나거나 건강보험 등재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대다수가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의 건보 적용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설문에 따르면,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의료 비용이 증가하거나 사회경제적 부담 등 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미래건강은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중증환자의 적기치료를 보장할 수 있도록 새로 개발되는 신의료기술과 신약에 대해 신속하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여러 방안을 강구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미래건강은 우선 정부가 현재 시행 중인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전향적으로 확대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새롭게 개발되는 첨단 신의료기술과 첨단신약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여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가칭) 혁신의료평가위원회’를 구성·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혁신의료평가위원회에서는 첨단 혁신의료기술이나 세포·바이오치료제 등 초고가 원삿치료제 등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건강보험 적용기준과 절차 등 심의하자는 것이다. 특히 세포·바이오치료제 등 초고가 원삿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선등재-후평가 방식의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사후적으로 효과 평가를 실시하되 그 재원은 건강보험, 별도의 의료 안전망 기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회적·의료적 수요가 많아 보험적용이 시급한 사안은 심평원과 건보공단의 위원회를 통합 운영하거나 병행심사 등 신속심사 방안를 강구해 시행하는 안도 제시했다.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제안하는 국민이 원하는 건강보험 기본 프레임
◇재정 건전성 지키며 국민 생명을 살리는 ‘의료안전망 기금’ 신설 필요= 세계 각국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선도국들은 국민들이 혁신의료 혜택을 제 때 받아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영국은 3가지 종류의 특별 기금을 운영하는데 재원은 정부가 배정하거나 제약 기업을 통해 조달한다. 호주나 뉴질랜드, 벨기에 등도 의료안전망 기금을 정부와 주정부 지원으로, 이탈리아는 제약사 펀드를 통해 운영한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상당수 기금이 비영리단체들을 통해 운영되는데, 대부분은 기업과 개인의 기부에 의해 재원이 조달된다.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국민 91.1%는 본인과 가족이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질환에 걸릴 경우 경제적 부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82.4%가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금을 활용해 중증질환자·취약계층을 위한 별도의 의료비 지원 기금을 조성할 것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미래건강은 ‘(가칭)의료안전망 기금’ 신설을 통해 통상적이고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의료적 위험에 대한 보장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재난적 의료비 보장, 고가의 혁신의료 보장, 희귀난치질환 보장, 감염병 대응 등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2022년 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난적 의료비(가계의 경제적 부담 능력을 넘어선 의료비) 발생 가구 비율은 4.6%로 OECD 평균인 1.6%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 희귀질환 등 재난적 의료를 보장할 재난적의료비는 올해 950억원 수준으로 턱없이 적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도입을 주도한 문옥륜 교수는 “환자단체들은 실손보험에도 가입이 어려운 중증희귀질환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1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미래건강이 제안하는 방식만으로도 1조원 정도의 재원 마련은 가능하다”면서 “이번 2차 종합계획에서 꼭 의료 안전망 기금 신설안이 포함되고, 국회에서 조속히 법제화해 우리국민 누구도 돈이 없어 생명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건강은 1조원 재원 마련을 위해 구체적으로 제약사의 위험분담제 분담금, 병원의 영업정지와 약제 급여정지에 갈음하는 과징금, 건강보험의 본인부담 상한제 환급금의 일부 분담금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설문조사에서 국민 73%는 현재 건강보험료가 부담된다고 답변했고, 정부가 법정 국고지원률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국민들은 피보험자 법정 요율인 8%에 가까운 7.09%를 부담하고 있으나 국고 지원은 20% 상한선에 미치지 못하는 14%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피보험자인 국민들의 최근 5년간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직장 가입자 9.75%, 지역 가입자 9.86%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보험료가 올라가게 되면 앞으로 1~2년 이내에 국민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면서 “올 초 정부가 발표한 지출구조 효율화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로 보험료 인상폭을 줄이고, 생명과 관련된 질환의 진료비를 보장할 수 있도록 국고지원을 법정 비율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고지원률과 관련해 미래건강은 현행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예상 수입액을 과소 추계해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건강은 “국회가 앞장서서 관련 규정을 전전년도 보험료 ‘실제’ 수입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수정하는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현재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규정하고 있는 5년 단위의 국고지원 일몰제 내용을 폐지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 책임을 현실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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