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침팬지 사회에도 영아살해가 있을까요?"-진화심리학으로 본 '영아살해' 범죄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엄마가 자신의 넷째 아이와 다섯째 아이를 출산 하루 만에 살해하고, 냉장고 안에 시신을 5년 간 숨겨왔던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 '출생 미신고 아동' 표본조사에서 처음 드러났던 이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습니다. 정부가 유사 사례 2천여 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 가운데,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만 2백 건 가까이 됩니다. 11명의 아이가 이미 숨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아이의 출생 사실을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 병원 밖 출산을 막자는 '보호출산제'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전쟁 이후 혼란이 극심했던 상황을 반영해 영아살해죄 형량(10년 이하 징역)을 일반 살인죄(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보다 낮게 만들었던 형법 규정을 과연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논란도 커졌습니다.
영아살해 사건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6년, 서울 서래마을에서 프랑스인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기 2명을 살해해 자신의 집 냉동고에 보관했던 사건이 있었죠. 2017년 부산에서도 아기 시신을 냉장고에 수년 간 놔뒀다가 적발됐고, 2021년 청주에서는 갓 낳은 신생아를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버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보호 받아야 할 존재인 어린 아기,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기를 도대체 왜 살해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걸까. 일반적인 정서로는 영아살해 범죄를 이해하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범죄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인류 역사에서 '영아살해'의 역사는 그야말로 유구하다고 설명합니다.
"어떻게 친자식을 살해, 혹은 방임·유기해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냐는 질문은, 사실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냐'는 질문과 같은 층위의 질문입니다. 그만큼 인간 사회에서 살인과 영아살해의 역사는 오래 되었습니다."(유지현/진화인류학자, 서울대 생물인류학 연구실)
진화 심리학자들에게, 영아살해는 매우 익숙한 사건입니다. 인간과 유전자를 99% 공유한다는 침팬지 사회에서도 영아살해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아살해는 침팬지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 차이점부터 살펴봐야 영아살해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침팬지 사회에서도 영아살해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는 대부분, 침팬지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이 새로 바뀌었을 때 예전 우두머리 수컷의 새끼를 죽이는 경우입니다. 또 서열이 높은 암컷이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암컷의 새끼를 죽이는 사례도 몇 번 보고된 적이 있고요. 이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 선택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생활하는 침팬지 암컷이 자기 친자식을 방치하거나 죽인 사례는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명예교수이자 저명한 인류학자인 세라 블래퍼 허디 역시 저서 <어머니의 탄생>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아살해는 인간과 인간 외 모두에 걸친 영장류 종에서 폭넓게 보고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영장류에서는 대부분 살해자가 피해자와 혈연관계가 없으며 또한 어미인 경우도 없다. 인간 외 영장류 암컷이 영아살해에 연루되는 경우에도 자신의 새끼를 해치지는 않는다. 죽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새끼다. - <어머니의 탄생> 中, 새라 블래퍼 허디
정리하면, 침팬지나 원숭이의 경우에도 영아살해는 일어나지만 대상은 친자식이 아닌 경우가 많고,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을 해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대체 왜, 유인원 계통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인간이 자신의 친자식을 해치는 걸까요?
진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수렵-채집 시대의 영아 살해는 자녀 수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유용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인류학자 조셉 버드셀은 구석기 시대에 무사히 태어난 아이 중 최소 15퍼센트에서 최대 50퍼센트가 영아살해를 당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가설을 세웠습니다.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자신과 아이들을 부양하기 힘들 때, 갓난아기를 죽이는 건 간단한 계획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진화론 입문 수업의 교재로 많이 사용되는 <진화와 인간 행동>에도 영아살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아 살해는 불법이다. 그러나 초기 호미닌(인류의 조상)의 삶에서는 영아 살해가 적응적 전략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수렵채집인의 삶을 통해서 과거 인류의 번식적 경험을 추정한다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엄청난 수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진화와 인간 행동> 中, 존 카트라이트
'엄청난 수준의 희생', 이건 어떤 뜻일까요.
"진화론적으로 보면, 인간은 부모가 자녀에게 엄청난 양육 투자를 하는 종입니다. 무력하고 의존적인 유아기, 상대적으로 긴 청소년기가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이죠. 인간은 혼자서는 자식을 기르기 어려웠습니다. 인간은 파트너, 가족, 친족과의 '협동 육아'를 통해서 진화했고, '협동 육아'는 자식을 성공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심리는 스스로의 육아 능력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육아와 관련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매우 예민하게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양육 투자를 조절하는 심리적인 기제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가 없다'는 판단을 할 경우, 인간은 자신의 갓난아이를 차라리 일찍 포기해 버리는 선택을 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통계를 살펴 볼까요.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했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3년 간 여성의 임신중지, 즉 낙태 경험률은 전반적으로 줄었지만, 미혼의 비중이 늘었고 평균 연령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0년 간 영아살해 피의자 수를 살펴봤더니(경찰청 통계) 20대 이하 '어린 부모'가 78%,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이들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상대적으로 양육 환경이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아살해의 역사 자체야 수렵-채집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는 미리 임신과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존재합니다. 사후피임약도 개발됐고요. 영아살해가 자녀 수를 조절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원시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환경인데, 아직도 똑같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에 맞게 영아살해죄의 처벌 수위를 새롭게 정비해야 할 것이고,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로 폐지된 지 4년이 넘도록 아무런 대체입법 없이 답보 상태인 상황도 빨리 해결해야 할 겁니다. 또 어떤 요인을 살펴봐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인류의 이토록 오래된 범죄, 영아살해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영아살해는 보통 생후 즉시 아기를 '유기'하는 방식으로 가장 많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런 영아살해는 보통 생후 1년까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친모에 의한 아기 살해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1년'을 영아살해를 막기 위한 골든타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태어나는 그 어떤 아이든 최소한 1년 이상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는 믿음- 낳은 부모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경우에 사회가 이를 대신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가 보다 탄탄해진 사회에서는, 비정하고 안타까운 영아살해 범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조재영 기자(joja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499965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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