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세계 1등 제품서 배워라"…이건희가 시작한 전시회, 삼성 부활 이끌까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불량은 암이다. 참담함을 느낀다.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
지난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은 경쟁사 제품을 한 데 모아 놓고 연신 한숨을 푹 쉬었다. 당시 세계 1등 제품과 삼성전자 제품을 비교해놓고 보니 기술력 차이가 현격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선대회장은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찾았다가 가전 양판점 '베스트바이'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인 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삼성 TV를 본 후 "자기가 만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직접 봐라"며 "여기 어디에 놓여 있고, 먼지는 몇 mm나 쌓여 있고 얼마에 팔리는지 봐라"고 말하며 당시 전자 사장단에게 호통을 쳤다.
몇 달 후 이 선대회장은 녹화된 사내방송 한 편을 보고서도 격노했다. 잘못된 금형 탓에 세탁기 뚜껑이 맞지 않자 생산팀이 그 자리에서 칼로 모서리를 깎아 낸 뒤 출고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삼성전자가 지닌 국제 경쟁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모습에 이 선대회장은 참담함을 느꼈다.
결국 이 선대회장은 같은 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세계 8개 도시에서 68일간 350여 시간에 걸친 회의와 토론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맨날 밥 먹고, 옷 입고, 같은 넥타이 매고 있으니 변화를 못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 4~5년 새 변하지 않으면 이제 영원히 못 변한다. 마누라 자식만 빼놓고 다 한 번 바꿔 보자. 다 뒤엎어 보자"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그렇게 나왔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은 신경영 선언과 함께 그 해 세계 1등 제품과 삼성전자 제품의 차이를 살펴보자는 취지로 '경쟁 제품 비교 전시회'를 처음 시행했다. TV, 가전 등 자사 제품과 글로벌 경쟁 제품을 한데 모아 전시해놓고 임직원이 직접 비교 분석하도록 한 것이다.
◆ 잇따른 품질 문제로 곤욕…5년 만의 전시로 '긴장감' ↑
매년 혹은 격년 단위로 열렸던 이 전시는 2018년까지 열린 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등을 이유로 열리지 않다가 5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해 '갤럭시S22' 성능 저하 논란, 세탁기 유리문 파손 등 삼성 제품의 품질 문제가 잇따라 불거진 데다 경쟁사와의 기술 '초격차'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다시 이 전시회를 연 것이다.
이 전시는 매년 10월 각 사업부별로 차세대 신기술을 대거 공유하는 사내 연례 행사인 '삼성기술전'과는 다른 성격이다. '삼성기술전'에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이 참여하지만, '경쟁 제품 비교 전시회'는 가전·모바일 등을 담당하는 DX부문이 주축이 돼 운영된다. DS부문은 초기 '경쟁 제품 비교 전시회'에선 제품을 선보였으나, 2000년대쯤부터는 스마트폰, 가전을 중심으로만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23' 시리즈와 '갤럭시Z플립4·폴드4' 등이 애플 '아이폰' 시리즈, 중국 업체의 폴더블폰 등과 함께 전시된다. 가전 분야에선 경쟁사인 LG전자를 비롯해 월풀, 보쉬, 지멘스 등의 제품들이 함께 선보여질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세우고 있는 '스마트싱스'에도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기기간 연결성 강화를 중점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이번 전시회에는 생활가전(DA)·영상디스플레이(VD)·모바일경험(MX) 등 DX 부문 3개 사업부뿐 아니라 고객경험·멀티디바이스 경험 업무를 맡고 있는 CX·MDE 센터도 처음으로 참여했다.
◆ 한종희·노태문 등 사업부 임원 '총출동'…이재용 참석 가능성 ↑
5년 만에 재개된 전시인 만큼 삼성전자 임원진의 관심도 예전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진행된 개막식 행사에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노태문 MX사업부 사장, 용석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 등이 참석해 전시 제품들을 면밀히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해 취임 후 처음으로 전시장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사장 시절부터 이 선대회장과 동행해 전시장을 꾸준히 찾은 바 있다. 업계에선 이 회장이 '초격차 기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전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해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말해 주목 받은 바 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이번 전시 기간을 기존에 2주 정도 진행했던 것보다 이례적으로 한 주 더 연장한 것에 주목했다. 최대한 많은 임직원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각자 긴장감을 가지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선대회장은 경쟁 제품 비교 전시회에 매번 참석해 자사 제품의 경쟁력을 일일이 비교·시연하면서 취임 초부터 경영의 최우선 요소로 여겨온 '품질경영'을 임직원들에게 재차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삼성의 제품에 대해 호평과 동시에 경쟁력이 낮은 제품에 대해선 강도 높은 질책을 쏟아 내며 해당 전시회를 통해 리더십을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현재 경기 침체, 수요 위축 등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등 대내외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예전만큼 강력한 리더십이 없어 흔들리는 모습이 사업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삼성전자가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새로운 리더십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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