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0년 개농장 자리에 고추밭…“늘 죄인 같았는데 후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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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속이 아주 시원합니다. 그전까지 사는 게 살얼음판이었어.”
충남 아산시 주민 양아무개(73)씨가 작물이 가득 찬 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사는 집 바로 뒤편 496㎡(150여평) 규모의 텃밭에는 고구마, 고추, 들깨, 서리콩이 초여름 햇살을 받으며 파릇하게 자라나 있었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뜬장이 가득 들어찬 개농장이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개가 좋아서 시작한 일”
지난달 27일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한국 HSI)과 함께 3월에 개농장을 폐업하고 농사로 전업한 양씨의 집을 찾았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개를 번식·사육해 경매장과 식당에 ‘식용 개’를 공급하는 일을 해왔다. 양씨는 반평생을 해 온 일이자 ‘생업’이었던 개농장을 어떻게 접게 됐을까.
1950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의 첫 직업은 고속도로를 오가는 트럭 운전사였다. 88올림픽이 열리기 3년 전인 1985년 현재 거주지에 터를 잡았다. 30대의 그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땅을 사서 소를 키우는 것. 매일 고속도로를 오가며 수도 없이 졸음운전을 했고, 이러다가는 금방 죽겠다 싶었단다. 그만둘 결심을 하고도 3년을 더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사이 마땅한 땅을 구했고 소를 키울 축사 허가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운전을 그만두고 그가 데려온 동물은 소가 아니라 개였다. “나도 개를 좋아했어. 동네 개 한두 마리를 끌어들이다 보니 금방 몇십 마리가 된 거야.” 우사가 아닌 견사가 한 칸 두 칸 늘어났고, 결국 소가 아닌 개를 키우게 됐다. 당시에 개 한 마리를 팔면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개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료를 먹여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다른 식용 개 업자들처럼 양씨도 지자체에 ‘음식폐기물처리운반업’ 허가를 내서 학교, 식당 등을 돌며 잔반을 모았다. 새벽 6~7시, 밤 9~10시 하루 두 번 음식물들을 모은 뒤 갈아서 100마리 넘는 개들에게 급여했다. 매일 개들을 관리해야 하니 하루도 집을 비울 수 없었다. 아내 염아무개씨도 마찬가지였다.
“살얼음판 걷는 기분”…결단이 필요했다
고된 일이지만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나는 개를 다른 데서 사오지 않고 다 새끼를 내서 업자들에게 팔았어. 업자들도 (식용 개에 적합 개를) 골라서 데리고 가요.”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최근 1년간 개를 먹은 사람은 10명 중 2명이 되지 않았다. (한국 HSI ‘2022년 한국 개고기 소비와 인식현황’)
양씨의 사업은 급속한 퇴행 길에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동물 학대라는 강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한육견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는 게 늘 죄인 같고 마음 졸이지. 이젠 개 한 마리 잡았다고 신고 들어가면 징역 보낸다, 벌금 물린다 그러잖아.” 적당한 보상과 생업 대책이 있으면 농장을 접으려고 했다.
지난해 가을 무렵 사고가 발생했다. 밥 주던 그의 손을 개가 물었고 가운뎃손가락 한 마디가 절단됐다. 태어나 일평생을 뜬장에서만 살아온 개들은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것이다. 양씨가 입원한 동안 아내 염씨가 개들을 돌봤지만 혼자 하기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이곳을 찾은 한국 HSI 이상경 팀장은 양씨의 사정을 듣고 전업을 설득했다. 단체는 2015년부터 ‘변화를 위한 모델(Models For Change)’ 캠페인을 통해 농장주들의 전업을 유도하며 개농장을 폐쇄하고 있다. 단체는 캠페인을 통해 농장주들이 사업을 폐업·전업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보조하고, 개들을 전원 구조한다.
이 팀장은 “폐업 의지를 갖고 계셨지만, 현실적 문제로 골치 아파하고 계셨다. 처음엔 저희 제안도 잘 믿지 못하셨지만 계속 농장을 방문해 신뢰를 쌓았다”고 전했다. 꾸준한 설득과 방문에 양씨의 마음이 열렸다. 그는 이제 이 팀장을 ‘아들’이라 부른다. “뜬장에 들어가 개똥 뒤집어쓰고도 웃는 모습 보고 놀랐지. 30년 개 다뤄온 나보다 낫더라고.” 양씨의 농장은 캠페인을 통해 문 닫은 18번째 개농장이 됐다.
전국 1150곳…‘전환의 길’ 갈 수 있을까
양씨가 기르던 개 200여 마리는 지난 3월7~9일 단체에 이관돼 해외 입양을 떠났다. 개가 사라진 개농장은 어떨까. 배설물 냄새, 개 짖는 소리가 없고 파리가 사라졌다. 아내 염씨는 이제 1박2일 여행도 갈 수 있다며 미소 지었다. 양씨는 마음 편하게 종교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돼 좋다고 한다. “난 미련 없어. 후련해.”
전국 1150여곳 개농장은 과연 아산 폐업 개농장처럼 ‘미련 없는’ 전환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개 식용 금지’ 발언 이후 정치권의 논의는 올여름 더위만큼 뜨겁다. 지난달 서울시의회가 ‘개·고양이 식용 금지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한 데 이어,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개 식용 종식 관련 법안을 내놨다.
세 법안 모두 개 식용 산업의 합법적 시설에 대한 전업·폐업 지원 방안이 담겼다. 이상경 팀장은 “아산 농장 폐업은 농장주의 협업을 통해 개 식용 없는 미래를 보여준 상징적 변화의 사례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이 통과되면 더 많은 농장들이 안전하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산업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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