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터전 뺏기면 농민은 못산다”…경제논리에 지워진 외침

김양진 기자 2023. 7. 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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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제주 제2공항 반대하는 채호진 농민 “논밭이 돈이 된다? 우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2023년 6월26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감귤밭에서 채호진 농민을 만났다. 김양진 기자

‘제주 제2공항 건설공사 추진’이 윤석열 정부 들어 급물살을 탔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들어선다는 제2공항 관련 최대 논란거리는 ‘경제성’이다. 과연 국토교통부 예측(제주 연간 항공 수요 4109만 명)대로 관광객이 제주를 많이 찾고, 지역 상인들은 큰돈을 거머쥐게 될까? 그런데 쉽게 간과되는 점이 있다. 제2공항 예정 부지(165만 평) 가운데 31.5%인 52만 평이 농토라는 점이다. 2021년 기준 서귀포시 농민 비중은 15.4%, 전국 농민 비중은 5.0%다. 오늘도 해껏 구슬땀으로 밭을 일구는 제주 농민에게 제2공항은 어떤 의미일까.

“제주도민의 11%(2021년 기준 10.8%)가 농업으로 먹고삽니다. 관광을 이야기하면서 (…) 농민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내쫓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찬성하는 사람들은 얻을 게 많습니다. 돈을 얻겠죠. (…) 그 안에 농민이 있습니다. 우리는 터전을 뺏기면 살지 못합니다.”

2023년 5월13일 제주도가 개최한 ‘제주 제2공항 도민 의견수렴 경청회’에서 채호진(53·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총연맹 사무처장) 농민이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 영상은 제주참여환경연대 사회관계망서비스 인스타그램에서 12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이례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6월26일 오전 성산읍 수산1리 한 작업장에서 가족과 함께 갓 수확한 초당옥수수 포장에 한창인 채 농민을 만났다.

“계약서 없는 임차농이 대부분”

—제주도, 특히 서귀포시는 전국에서 농민 비중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감귤 농사를 지어 자식들 대학 보낸다는 거, 다 옛날얘기예요. 감귤값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어요. (사단법인 제주감귤연합회 자료를 보면 2010년 1㎏에 3449원이던 하우스감귤 가격은 2021년 3399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 11년 사이 소비자물가는 18.6% 올랐다.) 비룟값 등 경영비는 다 올랐는데 농작물 판매 수익은 안 나니까 옛날처럼 적게 농사지어선 먹고살 수 없습니다. 이모작은 기본이고, 수천 평 농사를 지어도 힘듭니다. 6~7월에 단호박 같은 봄작물을 수확하면 바로 밭 정리하고, 무·당근·감자를 심습니다. 저는 과수원 5천 평에 밭 5천 평을 1년 내내 쉬지 않고 부칩니다. 1만 평이면 요즘 소농입니다. 꼭 필요할 때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2공항 예정지에 농토가 30%나 된다는데, 농민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제주 동부 지역 농민 중에 아주 낮게 잡아도 80% 이상이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짓는 임차농입니다. 대부분이 임대차 계약서도 못 씁니다. 계약서 써달라고 하면 쫓겨납니다. 땅 주인들은 자경(스스로 논밭을 갈아 농사지음)을 하면 양도세 면제, 용도변경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차라리 다른 임차농을 구하지 계약서는 안 써줍니다. 계약서 없는 임차농은 소작농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비룟값 지원 혜택도, 직불금도, 농민수당도 못 받습니다. 계약서를 써야 밭은 3년, 과수원은 5년 경작을 보장받습니다. 계약서가 없으니 언제든 나가라면 나가야 합니다. 임차농들이 계속 농사짓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낸다? 앞으로 농사 안 지을 사람은 가능합니다. 계속 농사지을 사람은 ‘땅 주인이 농사 안 짓는다’고 고발하는 것밖에 안 되니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합니다.”

‘가짜 농민’ 신고로 위법한 토지취득 적발

—2022년 8월 ‘농지위원회 심의제’ 신설 등으로 비농민의 농지 취득을 엄격하게 막는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매년 읍·면·동 단위에서 농지 실태를 조사하지만 농지로 등록된 땅에 농작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땅 주인이 재해보험에 가입했는지를 확인하면 직접 농사짓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농민단체들이 농지 전수조사를 요구했지만 정부가 인력·예산 핑계를 대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농지 활용 땅투기로 농지위원회가 생겼지만, 심의위원 상당수가 농지는 반드시 농사짓는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재산’으로만 봅니다. 경작 여부를 떠나 자식한테 증여한다고 하면 100% 심의를 통과합니다. 거기다 성산읍은 제2공항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모든 거래를 심의하지만, 그 외 지역은 타 지역 주민의 농지 취득 등 극히 일부 거래만 심의합니다. 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제가 성산읍 농지위원인데, 거래하는 땅 주인의 주소가 서울일 때가 많아요. 농지를 살 때 주소를 잠시 옮겨뒀다가 나중에 주소를 되돌리죠. ‘이런 사람이 애초에 어떻게 땅을 살 수 있었냐’고 지적하면 관에선 ‘그때는 절차상 문제없었다’고들 합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제주도연맹은 2021년 9월, 12월 ‘가짜 농민’ 신고를 받아 71개 땅에 대해 제주도에 조사를 요청했고, 대부분 위법한 토지취득으로 규명됐다. 농지 실태 조사를 무사히 넘긴 땅들이다. 제2공항 예정지 신산리에선 겉으론 한 사람이 농사지었지만 장부상 땅 주인은 수십 명에 이르는 1천 평 규모의 밭도 확인됐다.

‘가짜 농민’이 아니라면 땅 주인이라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온평리에 5천 평 밭을 일구는 채이식 농민은 “제주 어디나 땅값이 많이 올랐는데 다른 지역에 5천 평을, 그것도 쪼개지지 않은 땅을 살 수 있을까?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대토(토지수용에 토지로 보상)가 아닌 보상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근데 제주도에 대토할 땅이 남아 있나”라고 말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땅이 강제수용돼도 양도세를 내고, 여기에 새로 땅을 얻으려면 취득세를 내야 한다. 세금 다 내고 다른 지역에서 농사지으려면, 어쩔 수 없이 또 빚을 내야 한다. 제2공항으로 땅을 뺏긴 농민들이 계속 농사짓는다는 건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환경부가 한 차례 반려했던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별다른 설명 없이 통과시킨 2023년 3월6일, 하늘에서 제주 성산읍 제2공항 건설 예정지를 내려다봤다. 상당 부분이 농토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중요한데 주민투표 해야”

—2023년 3월6일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의 ‘전략환경영향평가’가 환경부를 통과했다.

“밭에 가보면 비 온 뒤에 물이 빠져나가는 ‘숨골’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지하수가 돼서 우리가 마시는 물이 됩니다. 제주도 사람은 육지에서 들여온 물이 아닌 이상 100% 지하수를 마십니다. 또 숨골로 물이 빠져나가지 않으면 홍수가 납니다. 국토교통부는 처음엔 제2공항 예정지에 숨골이 8곳밖에 없다고 했다가, 주민들이 이상하다고 하니까 나중에 153곳이 있다고 고쳤습니다. 지금도 지하수가 줄어 성산 쪽 물맛이 좀 짜다고들 합니다. 숨골이 막혀서 스며드는 물이 더 줄어들면 바닷물이 더 유입됩니다. 그러면 물을 먹지도 못하고 농사에도 못 쓰게 되죠. 홍수나 물 부족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나 대책이 나온 게 없는데, 정부가 일단 공항을 집어넣으려고 억지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킨 거예요.”

—제2공항 건설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여론이 높다.

“원래 이렇게 중요한 사항은 주민투표를 해야죠. 거의 없어지는 마을들도 있는데 주민투표가 안 된다니….”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는 2021년 7월 한 차례 반려됐다. 당시 지적된 △조류의 항공기 충돌 위험성 △항공기 소음 영향 △법정 보호종 보호 △숨골 훼손 등의 사유에 국토부·환경부는 이후 ‘환경영향평가’에서 보완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전략환경영향평가는 이 공사 자체가 적절한지를 따지는 것이 목적이고,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홍영철 공동대표는 “지금 정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상 문제는 그냥 회피해서 공항을 강행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른 개발도 보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넘어서면 ‘현실적으로 이미 검증됐다’는 식의 ‘현실론’이 고개를 든다. 계획을 던진 국토부는 뒤로 빠지고, 제주도민끼리 싸움을 벌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하지만(주민투표법), 공항 건설 같은 국가 사무에 대한 주민투표 여부는 중앙정부에서 결정하도록 한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2023년 4월23일 국회에 나와 “(주민 의견을 반영한) 제주도의회가 환경영향평가 동의권을 갖고 있다”며 사실상 주민투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원 장관은 2021년 2월 제주도지사 시절, 도의회와 합의해 제2공항 건설공사 추진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요청했음에도 그 결과가 반대쪽으로 나오자, 이를 무시하고 공사 강행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문식 성산읍 수산1리장은 “찬반 입장차가 큰데 여론 수렴을 하려면 가장 좋은 게 주민투표다. 그런데도 ‘제주도지사는 법으로 내가 결정할 수 없다’고 회피하고, 국토부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주민투표를 안 하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농사가 천직인 사람들 갈 곳 없어”

—‘힘든 농사 안 지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힘든 직장 그만두면 되지’ 하는 말처럼 들릴 것 같다.

“2005년부터 제2공항을 한다고 해서 논란이 이어졌는데, 농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게 4년 됐어요. 52만 평이 농지라는 것도 우리가 조사했어요. 이 52만 평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농지 구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1천 평만 농사지으려 밭을 산다고 합시다. 2015년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제2공항을 추진하기 전 평당 10만원이던 밭이 이제 100만원입니다. 농사 안 짓는 사람들이 농지를 사서 이렇게 땅값을 올려놓았습니다. 그 밭을 사려면 10억원이 있어야 하는데, 평생 농사지어도 벌 수 없는 돈입니다. 지금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익이 안 나도, 계약서를 안 써줘도, 밭을 빌려서라도 농사짓습니다. 제 명의로 된 밭이 1200평입니다. 사람들이 ‘제주에 그 정도 땅을 소유했으면 엄청 부자이시네요’ 합니다. 이 밭을 재산으로만 보는 겁니다. 돈이 된다? 팔아서 지금까지 진 빚 다 갚으면 다행이지요. 농사짓는 사람들한테 이 밭은 그냥 생활하고 먹고사는 수단입니다. 우리는 삶에 관해 얘기하는 겁니다.”

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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