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건강보험 나라마다 다른데…상호주의 가능할까?
사회보장기본법에 상호주의…외국인 보험혜택 축소하려면 법령 고쳐야
건보 악화의 주범? 외국인 전체 건보 수지 해마다 흑자…중국만 적자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한중 관계가 냉각되면서 해묵은 외국인 건강보험 무임승차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달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 역시 상호주의를 따라야 한다"며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이 등록할 수 있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범위에 비해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인이 등록 가능한 건강보험 피부양자의 범위가 훨씬 넓다. 중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밝혔다.
이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한중관계 재정립을 역설하면서 한 말로 앞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이 지는 쪽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강경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됐다.
그렇다면 나라마다 건강보험제도가 다르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제로 외국인 건강보험에 상호주의를 적용하는 방안은 타당성이 있을까?
근대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인 의료보장제도는 1883년 도입된 독일 질병보험제도에서 시작돼 영국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됐다. 주요 선진국만 놓고 봐도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크게 국가보건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 사회보험방식(NHI·National Health Insurance), 민간보험방식(CSM·Consumer Sovereignty Model)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NHS는 국민의 의료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일반 조세를 재원으로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균등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해당한다. 반면 NHI는 자기책임 원칙을 우선시해 개인이 납부한 보험료를 주요 재원으로 삼고 정부는 지원·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수상이 처음 제안했다고 해서 '비스마르크 방식'으로도 불리는데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대만, 한국 등이 여기에 속한다. CSM은 민간의료보험이 공적 의료보장체계를 대신하는데 미국,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어떨까?
2021년 논문 '한국과 중국의 건강보험제도 비교연구'(조문흠) 등에 따르면, 1950~1970년대 무상의료 체제를 유지해온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의료보장제도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1998년 도시근로자기본의료보험, 2003년 신형농촌합작의료제도 도입에 이어 2010년 사회보험법 제정으로 도시주민기본의료보험을 전면 시행하면서 사회의료보험제도의 틀을 갖춘 뒤, 2016년 도시와 농촌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중국 의료보험제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재원으로 삼는 등 외형상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있지만, 실현 방식과 세부 제도에선 차이가 크다.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는 국민 중 상당수가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서 보험료를 면제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국민 한명 한명이 의료보험의 개별 가입자로서 보험료 납부 부담을 진다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직장가입자 피부양자에 해당하는 사람도 지역의료보험(도농주민의료보험)에 가입해야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직장가입자(도시근로자기본의료보험)의 보험기금이 2개 계정으로 구분돼 운영되는 것도 차이점이다. 중국 직장 보험료는 월급의 8%로 회사가 6%, 근로자는 2%를 부담한다. 이 중 회사가 낸 보험료는 사회통합기금으로 들어가지만, 개인 납부금은 개인계좌에 적립돼 당사자의 의료비로만 쓰이는데 최근 개인계좌 사용범위가 배우자, 부모, 자녀로 확대됐다. 중국 도농주민의료보험은 법정 정액 보험료를 동일하게 부과하는데 연간 1인당 280위안(5만원)으로 정부가 550위안(10만원)을 보조한다.
[표] 한중 건강보험제도 비교
[건강보험공단 국회 제출 자료 등 발췌]
우리나라 직장가입자 보험료는 월급의 7%로 근로자와 회사가 절반씩 부담하고 모두 통합기금으로 관리되며, 지역가입자 보험료는 개인의 소득 또는 재산에 따라 부과된다. 우리나라는 직장·지역가입자 모두 의무가입이지만 중국은 직장가입자만 의무가입이고 지역가입자는 선택인 점도 다르다. 외국인도 직장가입자는 양국 모두 고용 즉시 의무가입이지만,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우리나라는 6개월 이상 국내 체류하면 의무적으로 가입되고 중국은 영주권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이에 비춰보면 김기현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양국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범위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국의 건강보험 체계가 다른데 중국은 피부양자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외에도 근본 체계에서 차이가 큰 각국의 건강보험제도를 특정 부분만 따로 떼서 유불리를 따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2017년 논문 '중국 의료보험제에 관한 소고-피부양자제도를 중심으로'(송희숙)에선 한중 양국의 건강보험제도 차이를 양국의 상이한 헌법 이념과 원리에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아울러 관대한 소득인정범위로 인해 형평성 문제가 논란이 돼온 우리나라 피부양자 제도를 개선하면서, 모든 가입자에게 보험료 납부 의무를 지우는 중국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논하기도 했다.
상호주의는 상대국이 자국을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상응한 대응을 하는 외교 통상의 원리다. 1995년 제정된 우리나라 사회보장기본법(제8조)에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은 상호주의의 원칙에 의하되, 관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 역시 상호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김 대표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타당성을 검토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실제 정책 변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국내에 거주한 외국인 대다수는 우리나라보다 건강보험 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저개발국·개발도상국 출신이다. 중국도 의료보험이 발전 초기로 지역간 편차가 크고 의료시설이 부족해 국제적 수준에 못 미친다. 따라서 외국인 건강보험에 상호주의를 적용한다는 건 결국 외국인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는 건강보험 혜택을 내국인보다 축소하겠다는 의미가 돼 차별을 정당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로 정부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조화로운 공존이 우리 사회의 과제로 떠올랐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지난 5월 말 기준 236만5천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5천140만명)의 4.6%에 해당한다. 국적별로는 중국인(88만5천명), 베트남(25만7천명), 태국(20만4천명), 미국(17만5천명), 우즈베키스탄(8만3천명) 등의 순이다.
우리나라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제109조)과 외국인고용법(제14조)은 가입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는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내국인과 같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이들 법령은 상호주의 원칙에 우선하기 때문에 만약 국가별 상호주의를 건강보험에 적용하려면 관련 법들을 개정해야 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 발췌]
학계에선 상호주의를 전제한 사회보장기본법 규정(8조)이 시대 상황에 맞지 않고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논문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백인옥)에선 "그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공되는 공적인 급여의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에 맞춰 제공해야 한다"며 "상호주의에 따라 보장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판단 근거로는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제6조 2항)과 세계인권선언의 사회보장 규정을 제시했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제22조)에는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돼 있는데, 외국인도 국적이나 상호주의와 관계없이 사회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갖는 것으로 해석된다.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외국인의 의료보험 가입 자격에 취업, 체류기간 등의 보편적인 제약을 두는 나라들은 많지만, 건강보험 보장 수준이 낮은 국가 출신 외국인이라고 해서 건강보험 적용 시 불이익을 주는 사례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의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실) 제출 자료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일본, 대만의 경우 외국인 직장근로자는 취업과 동시에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하고 지역가입자는 최소체류기간(3~12개월)이 지나야 가입 자격이 생기지만, 피부양자 요건, 자격관리, 보험료 부과기준 등은 내국인과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비준 전이지만 1990년 채택된 유엔 국제이주노동자권리협약(제27조)도 취업 국가의 법률과 요건을 충족한 이주노동자와 가족은 사회보장에서 취업 국가 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 대상 의료보험에 상호주의 적용을 검토할 만큼 외국인 무임승차 문제가 심각한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 대표의 상호주의 발언에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가 과도한 보험 혜택을 받아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는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건강보험기금이 외국인 의료 쇼핑 자금으로 줄줄 새선 안 된다"며 "건강보험 먹튀,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막겠다"고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주 국회(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외국인 보험료 부과 대비 급여비 현황'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가입한 중국인들은 지난해 총 8천83억원의 보험료를 내고 8천312억원의 급여 혜택을 받아 22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인 '건강보험 먹튀'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 과거 외국인이 건강보험 가입 직후 고액 진료와 약 처방을 받고 출국하는 사례 등이 알려지면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인 가입자 중 다수는 조선족이다. 국내 체류 조선족은 64만명으로 체류 중국인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하지만 중국인을 포함해 외국인 가입자 전체로 놓고 보면 납부한 건강보험료에 비해 받아 간 보험급여가 훨씬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해 외국인들이 낸 건강보험료는 총 1조7천286억원인데 이 중 보험급여 지출은 1조1천838억원으로 5천44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만 아니라 2018년 2천255억원, 2019년 3천658억원, 2020년 5천729억원, 2021년 5천125억원으로 해마다 흑자를 내고 있다.
[표] 외국인 보험료 부과 대비 급여비 현황 (단위:억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국회 제출 자료 발췌]
외국인 가입자는 병에 걸려도 내국인보다 병원을 덜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논문 '외국인 국민건강보험 가입현황 및 이용특성 분석'(변진옥 등)에 따르면 2017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는 내국인보다 1인당 연간 진료비를 각각 40.6%와 14.5% 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외국인은 병원 입·내원일수도 내국인보다 44.4%(직장), 21.8%(지역) 적었음에도 하루 진료비는 6.8%, 9.2% 많았던 것에 비춰 외국인은 증세가 심각해져야 병원을 찾는 것으로 분석됐다.
종합해 보면 중국인 건강보험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나, 외국인 가입자 전체로 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 흑자폭이 커진 건 중국인 등 외국인 무임승차를 막고자 수년에 걸쳐 외국인 가입과 보험료 부과 기준을 강화해 보험료부과액을 늘린 결과다. 이어 정부 당국은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도 6개월 이상 거주로 자격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지난해 보고서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현황과 가입자의 수용성 제고를 위한 개선방향'(문심명)에선 오히려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강화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차별성은 높아지고 수용성은 떨어진 측면이 있다"며 "차별적 조건을 완화함으로써 외국인 건강보험제도의 수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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