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비·바람이 날 속였다`는 묘청, `수조물 먹방` 與, `똥 먹겠다`는 野

김세희 2023. 7. 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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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권127, 열전 권40 반역에 나온 묘청 기록. 서경 천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각종 술수를 썼던 모습과 천도가 좌절된 후 반역을 일으키기까지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노량진 수산시장에 있는 수조속 바다물을 떠다마시고 있다.<S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12세기에 접어들 무렵, 북방의 금나라(여진)가 요나라(거란)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송나라까지 강남으로 쫓아버린 뒤 고려를 위협해왔다. 금나라는 본국이 형, 고려가 동생이 되는 화친을 맺자고 요구해왔다.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기 전 부족형태로 이합집산을 거듭할 때, 각 부족에게 조공을 받아오던 고려 입장에선 치욕적이었다.

당시 고려 조정에선 서경천도론이 대두했다. 왕실 고문인 승려 묘청은 수도인 개경(현재의 개성)의 기운이 쇠락했으니, 왕기(王氣-임금이 날 조짐, 잘 될 조짐)가 있는 서경(현재의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궁궐을 지으면 왕조가 중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서경 임원역의 지세는 음양가들이 말하는 대화세(大華勢)에 해당합니다. 만약 그곳에 궁궐을 세우면 가히 천하를 아우르게 되니 금이 예물을 가지고 스스로 항복해 올 것이며 36국이 신하가 될 것입니다"라고 인종에게 말했다.

묘청은 인종의 서경천도를 유도하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많이 썼다. 그러던 어느날 대동강에서 오색빛의 기름이 햇살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묘청은 "신룡(神龍)이 침을 토해 오색 구름을 만들었으니 이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고 백관에게 청해 하례하는 표문을 올리도록 했다. 그러나 인종이 신하를 보내 자세히 살펴보니 기름기가 보였고, 잠수부를 동원해 자맥질하게 해보니 떡이 발견됐다. 정황을 알아보니, 묘청은 인종이 대동강에 도착하기 전 몰래 큰 떡을 만들어 그 속에 구멍을 뚫고 기름을 넣어 강 안에 가라앉혀 조금씩 새어나오게 했다. 인종을 속이기 위해 묘청이 조작을 한 셈이다.

황당한 일은 이뿐 만이 아니다. 어느 날 서경 중흥사 탑에 화재가 난 일이 있었다. 혹자는 "대사가 주상께 서경 행차를 간청한 것은 재앙을 누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런 큰 재앙이 생긴 것입니까"라고 했다. 묘청은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주상께서 만약 개경에 계셨다면 재앙이 이곳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행차를 옮기셨기 때문에 재앙이 외부에서 발생하였으며 옥체도 안전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재앙의 원인을 물었는데, 자신의 말대로 임금이 서경으로 행차했으니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고려 왕실의 명운을 예언하고 수도 천도를 주장한 자의 변명이라기엔 너무 궁색하다.

하늘을 탓하며 변명한 일도 있었다. 1132년 인종이 자신의 건의에 따라 서경에 행사할 때 비바람과 추위로 낭패를 겪자, "내가 일찍이 이날 비바람이 불 것을 알고 우사(雨師)와 풍백(風伯)을 달래며 말하기를, '임금께서 행차하실 것이니 비바람을 일으키지 말라'고 해 이미 허락을 받았는데 이처럼 식언을 하다니 매우 가증스럽구나"라고 선을 냈다. 자신이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신에게 부탁하는 비술을 썼는데, 바람과 비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이다. 음양비술(천문·역술·복서·지상 등을 상고해 길흉을 점치는 술법)이 통하는 그 시절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황당한 변명이다.

고려시대 묘청처럼 황당한 사례는 현대 정치인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겠다며 수산시장을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영선(5선)·류성걸(재선) 의원이 지난달 30일 노량진 횟집의 수조속 바닷 물을 손으로 떠마시는 '먹방쇼'를 진행하다 상인들의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이유는 더 기막히다. 김 의원은 3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사드 때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괴담이 나돌았는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둔 이번엔 생선송송회탁이라고 왜곡하는 말이 나돌아 '아니다. 안심하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수조속 바닷물을 마셨다고 밝혔다. 오염수 방류도 시작하기 전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있는 바닷물을 마시고 오염수가 문제없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오염수를 방류하고 난 다음에 와서 먹어야지, 지금 와서 뭐하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일 민주당이 남대문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규탄 범 국민대회'를 연 자리에선 원색적인 표현이 나왔다. 임종성 경기도당위원장은 이날 17개 시·도당위원장들이 무대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똥을 먹을 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문화가 대중의 오감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적어도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품격이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임박한 시점에 괴이한 행동을 하고 극언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강대국인 금나라의 위협속에서 현실적인 외교론 대신 풍수도참설과 술수를 활용했던 고려시대의 묘청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지금은 과학과 문명이 발전한 21세기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대응도 이에 걸맞게 해야 하지 않을까.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4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평가 보고서를 발표한다. 과학적인방법론에 의거해 검증 결과에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할수 있는 후속대책을 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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