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도 조심” MZ 말년병장의 두 얼굴[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말년병장 잔혹사…전역 3일 남기고 택배차량 훔쳐 음주운전, 연쇄 추돌사고
“말년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
병사 복무기간이 30개월이 넘던 과거 말년병장 되면 달력에 전역 날짜 써놓고 하루하루를 지워나가며 이 말을 군대 철칙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훈련소 신병부터 30여개월 군복무를 잘 견뎌낸 말년병장이 혹시 훈련 중 몸 다치거나, 군기위반으로 군기교육대에 들어가 고생하는 일이 없도로 일과 업무에서 모두 열외시키는 관례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군복무 기간이 18개월(육군 기준)로 줄고, 내무반 병상 수도 확 줄면서 말년병장 ‘대우’가 예전 같지 않다. 무엇보다 MZ(밀레니얼+제트) 세대 병사들에게는 과거 ‘말년 병장’의 특혜·불공정 등 특권의식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
MZ세대 병영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MZ세대 말년병장의 두 얼굴, 빛과 그림자를 소개한다.
국방일보는 4일 말년병장 특권의식을 버리고 부대와 전우를 위해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하고 훈련·작전에 참여한 두 병장의 투철한 군인정신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육군6보병사단 초산여단에서 운전병 임무를 수행 중인 김동현 병장은 지난달 26일 전역 예정이었다. 김 병장은 7·8월 예정된 사단·중대 전술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9월 6일까지 전역을 미뤘다. 김 병장 부모도 아들 전역 연기 결정을 흔쾌히 수락했다.
김 병장은 군 입대 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입대 후에는 간호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이번 전술훈련에서 임무수행 능력을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김 병장은 “전역 연기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고민했지만,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미약한 힘이지만, 남은 군 생활을 뜻깊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연기 이유를 설명했다.
부대 지휘부는 김 병장의 전역 연기에 감사를 표시했다. 박권영(대령) 초산여단장은 “김 병장은 충성심이 뛰어나고, 어떤 지시에도 성실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모범 병사”라며 “앞으로 간호장교로 복무한다면 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육군15보병사단 백호대대 양원식 병장 역시 전역을 연기하고 강원도 철원군 734고지에서 유해발굴작전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발굴된 각종 유품과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지켜본 양 병장은 국가를 위해 산화한 선배 전우들을 한 분이라도 더 모시고 싶다는 생각에 작전이 종료되는 지난달 30일까지 전역을 미뤘다.
양 병장이 작전을 펼친 734고지는 국군 2사단이 1951년 8·9월 두 차례에 걸쳐 중공군 80사단의 공격을 격퇴한 김화지구전투 현장이다. 고지의 주인이 9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양 병장은 “작전을 끝내지 않고 전역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며 “마지막 한 분의 호국영웅까지 조국과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 병장, 양 병장처럼 후배 전우들을 위해 전역을 연기하면서까지 작전에 참여하는 책임감 강한 병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역을 코앞에 두고 휴가 나와 남의 차량을 훔쳐 음주운전 사고를 내는 바람에 감옥살이로 군생활을 불행하게 마감한 ‘비운의’ 말년병장도 있다.
4일 서울 강서경찰서는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절도 혐의로 20대 A 병장을 체포했다. A 병장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음주 상태로 택배 차량을 훔쳐 운전하다 연쇄 추돌 사고를 낸 혐의다. 그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 사고 현장을 벗어나 양천구로 이동한 뒤 또 다른 차량을 운전하다 같은 날 오후 4시 20분경 경기 김포시에서 검거됐다. 적발 당시 A 병장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인 0.06%였다. A 병장은 전역을 사흘 앞두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를 군사경찰에 인계했다.
A 병장 사례에서 보듯, 비록 군 복무기간이 짧아졌다 해도 군복무기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년병장 병영 생활수칙’은 가능한 한 지키는 게 몸에 이롭다. 다음은 말년병장 잔혹사 사례들.
2013년 11월, 제17사단 포병대대의 모 말년병장은 전역일 하루 전에 전투장비 지휘검열을 앞두고 당직사관이 총기손질을 지시하자, 이에 발끈해서 자신의 총기를 세탁기 안에다 넣고 돌리는 바람에 항명죄로 법정에 서게 된 사건이 있었다. 결국 이 말년병장은 군 검찰에서 조사받다가 예정대로 전역한 뒤, 법무부 예하 민간 검찰청, 민간 지방법원에 넘겨졌으며, 징역 3개월 집행유예 1년을 구형받고 이듬해 1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보통 판결이 구형량보다 낮게 나오지만 검사 구형량보다 는 것은 이 사건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판사가 인지했다는 의미다. 이 말년병장은 복무 중 후임병의 위생도구를 함부로 사용해서 영창 7일의 징계를 받는 등 현역 복무를 불성실하게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주범인 이찬희 병장은 전역을 2달 앞둔 상태에서 사건을 터뜨려 유기징역 중 거의 상한선에 해당되는 징역 40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전역을 앞두고 저지른 사건 하나로 보통 사람들은 퇴직할 나이에 교도소에서 출소하게 된 것이다.
빅뱅의 전 멤버 승리는 2019년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전역을 약 1달 앞둬 놓고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됐다. 군 검찰, 승리 모두 항소해 전역이 보류됐으며 지난해 5월 26일 최종적으로 1년 6개월 실형 선고가 나와 사실상 불명예 전역하게 됐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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