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역고소-무새'에게 관심을 주지 마시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우리는 '역고소-무새'*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새는 위험을 감지하면 "무고... 무고..." 하고 운다. 때로는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명예훼손... 명예훼손..." 하며 울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관계를 구성하는 직장은 '역고소-무새'의 대표적인 서식지이며, 특히 '체면'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는 '역고소-무새'에게 매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역고소-무새 : 역고소와 앵무새를 합친 말.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앵무새처럼 '역고소하겠다'라고 반복하여 말하는 사람을 뜻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면 가해자로부터 무고죄나 명예훼손죄 등 소위 '역고소' 당하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슴 아프게도, 가해자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피해자를 신고하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누구나 알 만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지점장으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당한 A 씨도 그중 하나다.
A 씨는 한 직장에 다니는 동안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다. 별 문제없던 직장 생활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새로운 지점장이 온 다음부터였다. 지점장은 다른 직원들이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A 씨를 두고 "내가 결혼만 안 했으면 너 어떻게 해보고 싶었는데", "(A 씨를) 재혼시키자", "나랑 연애하자"라고 말했다. 거기서 더해 A 씨가 혼자 사는 아파트 옆집으로 사택을 구하려고 하여 A 씨는 이사를 가야만 했다. 어느 날 지점장은 A 씨에게 전화를 하여 "내가 연애하자고 하면 화낼 거냐"라고 물었고, A 씨는 이것을 녹음하여 본사 인사부서에 신고했다. 인사부서는 비밀유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A 씨의 신고 사실은 다른 지점들에 소문이 났고, A 씨에게는 전화가 빗발쳤다. 지점장은 공공연히 A 씨를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높으신 어떤 분은 왜 본사에 이야기해서 일을 크게 만드느냐, 지점장이 잘리면 와이프에게 뭐라고 말하겠느냐며 성희롱을 신고한 A 씨를 죄인 취급했다.
괴롭힘이나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는 가해자에 비해 직장에서의 우위, 성별이나 연령과 같은 인적 배경, 지지 집단 유무 등에 있어 취약하다. 특히 A 씨는 '이혼녀'라는, 혼인제도 밖에 있는 여성이라는 배경을 가졌다. 인정하기도 싫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결혼을 완성된 인간의 척도로 삼는 사회에서 이혼 경험이 있는 여성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비정상적인" 대상으로 치부되기 쉽다. A 씨 역시 내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라 만만했나 싶다고 했다.
반면 가해자는 결혼제도에 편입된 남성으로 지점장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혼 여성으로 일개 직원에 불과한 A 씨와 달리, 가해자에게는 지점의 장이라는, 기혼 남성이라는 '체면'과 '명예'가 있는 것이다. 역고소 무새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체면'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체면'은 사람에 따라 있기도 없기도 하며,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은 그 '체면'을 손상시키는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역고소-무새'를 만든다.
'역고소-무새'는 "무고…", "명예훼손…" 하고 울면서 사건의 초점을 성희롱 사실이 아닌, 피해자의 신고가 자신과 조직의 '체면'을 손상시켰다는 것으로 옮겨간다. '역고소-무새'의 울음은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아주 편리한 수단이다. 피해자는 도리어 '역고소-무새'를 해친 가해자가 되어 성희롱 피해 입증과 함께 무고 또는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입증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성희롱 사실은 오간 데 없어진다. 그러나 '역고소-무새'는 성희롱 가해에 대해 별다른 변명을 덧붙이지 않고도 단지 우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해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나의 '체면' 손상 피해와 너의 성희롱 피해를 서로 무마하자는 합의 조건으로 삼기도 한다. 역고소는 정말 가성비가 좋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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