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마약 온상'이 된 텔레그램, 추적에 성공한 나라들이 있다

박재현 기자 2023. 7. 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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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팬데믹] ⑪ 텔레그램 추적에는 결국 실패했지만

텔레그램 추적에 성공한 나라들

"독일 연방내무부장관과 측근들이 텔레그램 측과 접촉해 영상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회의에 등장한 건 텔레그램 CEO(파벨 두로프)였습니다. 다들 CEO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놀랐었습니다."

- 맥스 호펜슈타트, 독일 슈피겔 탐사 기자


독일 정부와 수사기관도 오랜 기간 텔레그램을 찾아 헤맸습니다. 테러 모의가 텔레그램 상에서 실시간 이뤄지고 있었고 코로나19 백신 등의 잘못된 정보가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유포됐지만 정부에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에서도 텔레그램 추적을 포기할 무렵, 도리어 정부와 정치인이 텔레그램을 찾아 나섰습니다. 국민들이 범죄 위협을 방치하지 말라며 이들을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정부, 특히 낸시 페이저(Nancy Faeser) 독일 연방내무부장관이 어떻게 텔레그램을 찾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해 2월, 본인의 트위터에 "텔레그램 최고위층과 접촉했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올렸다는 사실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낸시 페이저 장관이 구글 CEO를 통해 텔레그램 측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를 전달받았다는 설(說)이 있지만, 구글은 SBS의 확인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텔레그램을 2년 이상 추적해 온 맥스 호펜슈타트 독일 슈피겔 기자는 "현재도 소아 성범죄, 테러 등 일부지만 독일 정부가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텔레그램이 정부에 협조할 수 있다'는 메시지만으로도 범죄는 움츠러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정부의 노력입니다.

텔레그램 사용 중지를 외친 브라질

더 나아가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3월 "브라질 내 텔레그램 사용을 중지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SBS가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텔레그램은 범죄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브라질 정부와 법원의 명령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당시 마약 확산, 위조지폐 유통, 가짜뉴스 유통이 텔레그램 내에서 이뤄졌고 이는 브라질 사회에 큰 위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텔레그램과 접촉하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고 판결에 이르게 된 겁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텔레그램과의 접촉 통로가 됐습니다. 판결이 나자마자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 파벨 두로프는 본인의 텔레그램 채널에 글을 올렸습니다.
"텔레그램 회사 주소와 브라질 대법원 간 이메일이 오가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의사소통의 결과로 법원은 응답하지 않은 텔레그램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 팀을 대표해 우리의 과실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중략) 안타깝게도 법원에서 이전의 범용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 연락을 시도했기 때문에 답변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중략)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구축되면 브라질의 불법적인 채널에 대한 게시 중단 요청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 개인 채널에 올린 글

두로프의 사과가 의미하는 바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텔레그램은 강경한 대응에 반응한다. 둘째, 대부분 정부가 알고 있는 텔레그램 이메일 주소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텔레그램과 정부의 채널을 구축하면 보다 쉽게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과글 이후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판결의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떨까요. 인도 뉴델리 고등법원에서도 법원이 "범죄자의 IP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제출하라"고 명령한 뒤 텔레그램 현지 대리인이 밀봉한 서류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텔레그램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법적인 대응을 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11개국 이상입니다. 이 정부들은 강경한 대응이 텔레그램과의 접촉 채널을 만들어주는, 브라질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을 기대한다고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와 범죄의 중간지점

벨라루스 법원은 지난 3월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운동가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때문에 벨라루스에서는 국민들이 시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텔레그램을 사용합니다. 벨라루스 정부가 글쓴이를 추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주요한 정보 유통 채널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은 일면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텔레그램 CEO 파벨 두로프의 말이 맞습니다. 범죄자들은 더 나은 플랫폼이 있다면 언제든 옮겨갈 것이고, 텔레그램 '코어 팀'은 다만 플랫폼을 제공할 뿐입니다. 이 플랫폼은 양면이 있어 잘 사용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주춧돌이 되고, 잘못 사용될 경우 범죄의 온상지가 될 뿐입니다. 텔레그램을 단순히 '악'으로 묘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지점이 정부의 역할과 부딪치는 곳입니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 시스템의 영속이 가능하게끔 범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부가 텔레그램에서 폭증하는 마약 거래를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며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되 중요 범죄는 막을 수 있는,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이제 정부에 부여된 과제입니다.

제2의 텔레그램에 대비해야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SNS 기업, 그리고 이 기업의 플랫폼을 통해 퍼져나가는 범죄의 형태는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어느 정부도 처음 접해보는 당황스러운 경험일 것은 분명합니다. 대처를 해본 선례가 없기 때문에 당장 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텔레그램뿐만 아니라 제2, 제3의 텔레그램, 기술적으로 더 진보되고 더 음지로 들어간 최고의 보안을 갖춘 SNS의 탄생은 이미 예고돼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미 왓츠앱, 디스코드 등 텔레그램을 대체할 수 있는 충분한 SNS, 메신저들이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박재현 기자 repl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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