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 도입으로 열여덟 살 됐는데, 술 마실 수 있나요?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 학기가 끝났다. 그간 고생했으니 다들 마시고 놀자는 취지에서 학교 근처 주점을 통째로 대여해 종강총회를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와 수업을 같이 듣는 후배가 생각났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치맥’으로 달래는 등, 술을 꽤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당연히 이번 종강총회 때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배는 종강총회 참석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만 나이 도입 때문이었다.
6월 28일부터 도입된 만 나이는 올해 생일이 지났으면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빼면 되고,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면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다음 거기서 1을 한 번 더 빼면 된다. 후배의 나이는 올해 연 나이 기준으로 열아홉 살. 그러나 12월생이기에 만 나이 도입으로 만 열여덟 살이 됐다.
“연 나이가 열아홉이면 뭐 해. 우리 이제 만 나이로 산다며. 난 만 나이로 열여덟이니까 술 못 마시는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청소년 보호법’ 적용 대상과 술, 담배 구매 가능 나이가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 보호법 상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인 자로서,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제외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기에 여기서는 생일이 지났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즉, 2023년 기준으로는 2004년생까지 술과 담배를 구매할 수 있다. 종강총회가 열렸던 주점에서도 04년생 학우들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사장님을 만나 만 나이 도입과 관련해 의견을 여쭤보니, 역시 “2004년 하반기 출생자에게 술을 팔아도 되는 건지 종종 헷갈린다”라며 “단체 손님 중에 2004년생이 있다고 하면 약간 긴장하게 된다”라고 하셨다. 주점 근처 편의점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편의점 사장님은 “현재 04년생 중 생일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만 18세이고, 마찬가지로 05년생이 만 18세인데, 04년생들은 술과 담배를 살 수 있으니 아르바이트생들이 많이 헷갈릴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지만 취학 연령, 술, 담배 구매, 병역의무, 공무원 시험 응시기준 등의 부분에서는 기존대로 ‘연 나이’를 적용하니 헷갈리지 않도록 잘 기억하는 게 좋겠다. 아울러 보험 가입 시 별도의 ‘보험 나이’를 적용한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겠다.
종강총회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약간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학과는 한 학번에 속해 있는 인원이 60명을 넘어가는 중규모 학과라 모든 구성원을 알고 지내기가 힘들다. 게다가 종강총회 때는 우리 학번뿐만 아니라 고학년, 저학년까지 꽤 많은 인원이 모였다. 당연히 낯선 얼굴들이 익숙한 얼굴들보다 많았다.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이름과 학번,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하며 나이를 물었다.
“제가 20학번인데, 21학번이시면 저보다 동생인 거죠?”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올해 스물셋, 아니 만 나이로 스물둘이거든요.”
“아, 01년 초반이 생일이시구나. 저는 01년 10월생이라 만 나이로 스물하난데.”
다른 테이블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누구는 생일이 안 지났으니 두 살이 어려지고, 누구는 생일이 지났으니 한 살 어려지고…. 생일을 일일이 따져가면서 언니, 동생을 말하려니 더 복잡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일단 01년생이니까 그냥 말 편하게 해요”라고 타협을 보았다.
예전에도 나이 대결이 벌어지는 자리에서는 연도뿐만 아니라 서로가 몇 월생인지 따져가면서 ‘나이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나이가 드는 걸 반기지 않으면서도 정작 나이로 밀리는 상황은 꺼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언어적 특성도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어는 나이의 상하관계를 철저히 따지는 언어다. 원칙적으로는 나보다 상대의 나이가 어리면 나는 반말을 쓰고, 상대로부터 존댓말을 들어야 한다. 언어부터 나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니 우리가 나이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건 필연적인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미 민법상 나이는 만 나이를 채택하고 있었고, 법령, 계약, 공문서, 학교 등에서 연 나이, 세는 나이, 만 나이를 혼용해서 사용하느라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만 나이 통일법은 언젠가는 꼭 적용해야 할, 필요한 정책이었다. 더불어, 우리가 종강총회에서 나이를 엄격하게 따지며 말하기를 포기하고 적당히 어우러졌던 것처럼, 첫 만남 때 나이로 인한 암묵적 서열을 조장했던 문화 역시 서서히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생활에서 여전히 연 나이를 말해야 할지, 만 나이를 말해야 할지 헷갈리기는 하다. 그렇지만 만 나이 통일이 일상에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시 어려진 2023년, 벌써 상반기가 다 지나가고 하반기가 다가오고 있다. 한 살, 두 살씩 어려진 만큼 ‘만 나이 통일법’이 우리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한지민 hanrosa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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