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프랑스 경찰, 기자에게도 총부리…“백인 아니라서”

노지원 2023. 7. 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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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위]시위대로 착각한 경찰, 튀르키예 출신 기자 겨냥
“프랑스엔 두 종류 시민이 있다, 백인과 이민자”
기회는 백인에게만…이민자 불심검문 약 3배
3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북서부 외곽도시인 낭테르의 한 상점 유리가 깨져있다. 지난달 27일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 이후 낭테르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일부 시위대는 은행, 관공서 등은 물론 슈퍼마켓과 상점을 공격했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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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은 ‘프랑스 사람’이 될 수 없어요.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3일(현지시각) 오후 프랑스 파리 북서부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만난 독립 언론인 우밋 돈메스(41)는 엿새 전인 지난달 27일 이곳에서 시작된 시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들 중 하나다. 이날 오전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 마르주크가 낭테르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그가 기자로서 마땅히 취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또한 평생 겪어온 ‘부정의’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튀르키예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넘어온 이민자 2세대다. 현재는 튀르키예 뉴스 통신사에 기사를 보내는 프리랜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

3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북서부 외곽도시인 낭테르의 한 거리에 다 타버린 차량과 바닥에서 뽑힌 철제 표지판이 쓰러져 있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경찰이 나를 보자마자 총을 들이댔어요. 기자라고 외치니까 그제야 거두더라고요.”

경찰이 돈메스를 시위대로 착각해 겨눈 총은 폭동을 진압할 때 쓰는 방어용 고무탄 발사기(LBD)였다. 살상용은 아니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장비로 알려져 있다. 돈메스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면, 경찰이 실제 그를 시위대로 착각하고 “물러서라!”고 외치며 총부리를 겨누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상부 지시를 제대로 못 받았는지 경찰들도 이 상황을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는 것 같았어요.”

나엘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지 단 몇시간 만에 낭테르에서는 시위가 조직됐다. 이어 그 다음날부터 전국적 소요로 번졌다.

 지난 엿새 동안 자동차 5천600여대, 건물 1천채가 불에 타거나 훼손됐다. 시위대 공격으로 피해를 본 경찰서는 250곳이 넘고, 시청의 경우 99곳에 달한다. 프랑스 당국은 경찰 병력 4만5천명을 배치하고 장갑차와 특수기동대를 동원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여태까지 경찰에 체포된 이는 3천354명이 넘고 평균연령은 17살이다. 이들 중 60%는 전과가 없다.

모두가 흥분해 있던 시위 첫날, 시위대 역시 그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시위대는 돈메스가 프랑스 주류 언론사 소속 기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서야 경계심을 거뒀다. “내가 (프랑스 방송) <베에프엠>(BFM) 같은 언론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서야 취재할 수 있게 협조해줬어요. 이민자들은 이 매체들이 (이민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해서 믿지 않아요.”

“이번 사건은 오랜 시간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차별과 이중잣대, 부정의의 문제죠. 나같이 아랍계처럼 생긴 사람은 피부색 때문에 경찰한테 불심검문을 받고 편견을 감수해야 합니다. 죄가 없는 사람도 죄인이 되고요. 나엘의 사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는 직업, 교육, 안전, 주거, 법,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차별받고 있습니다.”

3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북서부 외곽도시인 낭테르의 한 버스 정거장 유리가 산산조각 나 있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사건 발생 약 일주일이 지난 3일 현재 시위 열기는 소강 국면에 접어든 듯 보였다. 하지만, 분노의 진원지인 낭테르의 공기는 여전히 술렁이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대형 마트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겨레> 취재진에 경찰이 나엘을 쏜 곳의 주소를 친절히 알려줬지만,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입을 닫았다.

거리 곳곳에는 다 치우지 못한 성난 시위대의 흔적이 즐비했다. 500m쯤 돼 보이는 파블로 피카소길 한쪽에는 주차된 차량 19대 가운데 10대가 새까맣게 탄 채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버스 정거장에 설치된 유리는 다 깨져 있었다. 도로 울타리가 뽑혀 나갔고 표지판을 세운 철 기둥이 휘어지거나 쓰러졌다. 은행 현금인출기의 화면은 물론 슈퍼마켓·식당 유리벽 곳곳에 날카로운 구멍이 뚫렸다. 건물 벽엔 “경찰은 엿이나 먹어라”, “나엘을 위해 정의를”이라고 적힌 글씨들이 넘쳐났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한 남성이 현장 사진을 찍는 기자를 향해 “저리 가라”며 나무 막대기를 휘둘렀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한 주민은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목에 건 기자증도 빼고 사진도 찍지 말고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조언했다.

거리에서 백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2021년 기준 프랑스 전체 인구 가운데 약 700만명(10.3%)이 이민자다. 이들 상당 수는 파리에서 약 10여㎞ 떨어진 이곳 낭테르와 같은 방리외(변두리 지역)에 산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고 현장. 나엘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꽃과 메시지를 두고 갔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낭테르에서도 수도권 고속 전철이 다니고 높은 빌딩이 들어선 지역으로 이동하니 그제야 백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다미엥(26)은 시위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경찰이 실수를 한 게 맞긴 하지만, 슈퍼마켓이나 은행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라며 “자기들이 왜 거리에 나와 있는지, 지금 벌어지는 시위가 어떤 것인지 의미를 알고 있긴 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위가 혼란 양상으로 번지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에 대한 물음에 다미엥은 “그냥 경찰과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지난달 27일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 이후 낭테르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일부 시위대는 은행, 관공서 등은 물론 슈퍼마켓과 상점을 공격했다. 한 은행의 현금인출기가 파손된 모습.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나엘의 사건과 시위대-경찰 간 충돌을 바라보는 프랑스 시민들의 시각에는 분명 좁혀지기 어려운 간극이 있었다. 파리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사미(44)는 이번 사태가 “인종차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나 같은 유색인종이 매일 겪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사미의 부모는 알제리계 이민자다. “프랑스에는 두 종류 시민이 있다. 백인과 이민자다”라며 “우리는 길에서 백인에 비해 경찰 검문을 3∼5배는 더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랑스 민권 연구기관의 2017년 연구를 인용해 지난 5년 동안 아프리카나 아랍계 남성이 경찰의 신분 확인을 요구받는 비율이 백인 남성에 비해 약 3배, 5차례 이상 불심검문을 받은 경험은 9배나 높았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 이후 낭테르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낭테르 도시 벽면 곳곳에는 나엘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씨가 적혀 있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일부 시위대의 행위가 지나치게 폭력적이지 않느냐’라고 묻자 사미는 “지금 사회구조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세 번이나 강조했다.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해도 좋은 직장을 얻는 건 백인입니다. 아랍계인 것이 뻔히 보이는 내 이름, (이주민이 많이 사는) 외곽 지역 주소 때문에 나는 직장을 구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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