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시계형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대체 전문이 된 클라크 (1)
KBL이 출범한 후, 많은 외국 선수가 거쳤다. 하지만 여러 구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이는 흔치 않다.
아이라 클라크가 그 중 한 명이다. 비록 전성기 이후에는 ‘대체 전문 외국 선수’로 여러 구단의 호출을 받았으나, 누구보다 빨리 팀에 녹아들었다. 또한, KBL을 거친 외국 선수 중 최초로 KBL 구단 코치로 부임. 누구보다 많은 세월을 프로농구와 함께 했다.
대학 시절 & 한국 진출 이전
클라크는 고교 졸업 후 전문대학인 템플 칼리지로 진학했다. 템플 칼리지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텍사스 대학교로 전학했다. NCAA BIG 12 컨퍼런스 소속인 텍사스 롱혼스에서 두 시즌 동안 이름을 알렸다.
텍사스 출신인 NBA 선수들은 여느 대학 못지않게 많다. 좋은 학교로 명성이 자자한 만큼,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클라크와 가까운 케빈 듀랜트(피닉스 선즈)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라마커스 알드리지와 제럿 앨런(클리블랜드), D.J. 어거스틴(올랜도)과 에이브리 브래들리, T.J. 포드와 대니얼 깁슨, 잭슨 헤이즈(레이커스)와 코리 조셉(골든스테이트), P.J. 터커(필라델피아) 등 많은 선수들이 텍사스 대학교 출신이다.
클라크는 텍사스 소속으로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다. 게이브 미나케가 핵심 전력이었기 때문. 미나케가 있어, 클라크는 출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KBL 외국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으로 바뀐 이후, 두 선수 모두 한국에 진출했다.) 대신, 클라크는 전학 첫 해인 1996~1997시즌 NCAA 토너먼트 16강에 진출하는 기쁨을 맛봤다.
대학 졸업 후 프로농구 선수가 됐다. 대만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후 필리핀을 거쳤다. 러시아와 그리스, 터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무대는 물론, 호주에서도 뛰었다. 특히, 2003~2004시즌에는 러시아리그에서 소속 팀을 3위로 이끌었다. 컵대회 우승 등 굵직한 이력도 쌓았다. 유럽에서 전성기를 보낸 그는 2005~2006시즌 전 대구 오리온스(현 데이원스포츠)의 부름을 받았다. 그렇게 프로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대구에서
클라크가 오리온스에 합류했을 때, 불세출의 가드인 김승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승현이라는 최고의 가드가 있었기에, 공격형 외국 선수인 클라크의 가세는 오리온스의 전력을 수직 상승하게 할 수 있는 요소였다. 직전 시즌 오리온스의 득점을 책임졌던 네이트 존슨이 서울 삼성으로 이적했기에, 오리온스는 클라크와 함께 도약을 꿈꿨다.
오리온스는 클라크와 함께 안드레 브라운을 외국선수로 낙점했다. 클라크가 주득점원으로 나섰고, 브라운은 궂은 일을 주로 전담했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클라크는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특히, 김승현과 함께 빠른 농구를 했고, 어느 위치에서든 득점했다. 신바람을 일으켰다. 김승현은 클라크의 득점력 향상에 일조했고, 클라크는 김승현과 많은 하이라이트를 만들었다. 두 선수의 시너지 효과는 꽤 컸다.
포워드였기에 안쪽 수비에서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기동력과 여러 기술을 갖고 있었던 클라크는 누구보다 돋보이는 득점력을 보여줬다. 힘에서는 밀렸지만, 다양한 기술과 빠른 움직임을 보여줬다. 평균 22.4점 8.2리바운드 2.1어시스트로 단연 돋보이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오리온스는 클라크와 김승현의 활약에도 많은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다른 전력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 오리온스는 시즌 중에 외국 선수 트레이드로 리 벤슨을 데려왔지만, 벤슨과 클라크의 중첩된 측면이 많았다. 리그 6위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 가까스로 진출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 나선 오리온스는 원주 삼보(현 원주 DB)를 만났다. 지난 2002~2003 챔피언 결정전에서 오리온스의 2연패를 저지했던 삼보와 외나무다리에서 조우한 것. 오리온스는 2차전까지 1승 1패. 안방에서 열린 3차전을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2승 1패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당시 6강 플레이오프는 3전 2선승제로 열렸다)
그러나 오리온스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삼성한테 힘을 쓰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첫 관문에서 힘을 소진한 게 컸다. 게다가 삼성은 당시 서장훈과 올루미데 오예데지, 네이트 존슨을 중심으로, 막강한 높이와 엄청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클라크의 부진도 컸다. 정규리그 때처럼 공격을 주도할 수 없었다. 시리즈 평균 11.2점 5.2리바운드에 그치면서, 오리온스는 시즌을 그대로 마쳤다.
시즌 종료 후, 클라크는 오리온스와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터키로 진출했다. 터키 최고 명문 구단인 페네르바체 울케르에서 뛴 클라크는 2006~2007시즌 정상을 밟았다. 그 후 한동안 국내에서 뛰지 않았다.
서울 삼성
클라크의 KBL 재합류를 이야기하려면, 2011~2012시즌을 이야기해야 한다. KBL이 2011~2012시즌부터 외국 선수 제도를 다시 바꿨기 때문. 드래프트로 회귀했던 제도를 자유계약으로 다시 되돌린 것. 보유 규정 또한 변경했다. 2인 보유에서 1인 보유로 바꿨다.
또, 클라크의 재합류를 이야기하려면, 삼성과 관련된 설명도 해야 한다. 클라크의 행선지가 삼성이 됐기 때문.
삼성은 먼저 안준호 감독과 함께 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대학교를 여러 해 동안 정상으로 이끌었던 김상준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앉혔다. 김상준 감독은 빠른 농구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풀 코트 프레스에 이은 속공 중심의 농구를 펼칠 뜻을 보였다.
하지만 외국 선수는 하승진과 NBA 드래프트 동기인 피터 존 라모스였다. 라모스는 하승진보다 큰 신장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빠른 농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컬러를 보여주지 못한 삼성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즌 중에 외국 선수를 바꾸기로 했다.
삼성의 선택은 클라크였다. 당시의 클라크는 전성기를 지난 선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크는 선전했다. 30대 중반이었던 클라크는 몸 관리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았고, 평균 25.9점 9.7리바운드로 활약했다.
그는 이승준과 함께 삼성의 골밑을 책임진 것은 물론, 호쾌한 덩크를 여러 차례 곁들였다. 시즌 중반 합류한 김승현과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었지만, 클라크는 수비에서 한계를 보였다. 팀의 최하위를 막지 못했다.
창원 LG
KBL은 2011~2012시즌 종료 후 외국 선수 제도를 다시 바꿨다. 선수 선발 방식을 드래프트로 되돌렸으며, 구단별 두 명의 외국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 걸로 결정했다.
클라크는 2012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계속 자유계약으로 KBL에 합류했던 클라크였지만,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2라운드 9순위로 창원 LG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LG는 외국 선수의 비중이 컸다. 토종 선수층이 취약했기 때문. 김영환(현 수원 KT 코치) 외에 활약할 수 있는 국내 선수가 마땅치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벤슨과 클라크의 활약은 LG에서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외국 선수 한 명만 코트에서 뛸 수 있었기에, 클라크는 벤치에서 주로 나서야 했다.
이유가 있다. 벤슨이 전성기를 구가했기 때문이다. 또, LG가 시즌 전에는 하위권으로 분류됐으나, 벤슨의 활약에 힘입어 시즌 중반 5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선수들의 지원이 모자랐고, LG는 순위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LG는 2012~2013시즌 중 변화를 택하기로 했다.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벤슨을 내보냈다. LG는 벤슨을 보내는 대신 커티스 위더스를 받았다. 2012~2013시즌 종료 후 모비스의 유망주이자 즉시 전력감인 김시래(현 서울 삼성)를 데려오는 걸로 트레이드를 최종 완성했다.
클라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이 뛸 수 있었다. 경기당 13.4점 6.2리바운드로 2012~2013시즌을 마쳤다. 직전 시즌 대비 평균 득점이 반 토막 났다. 그러나 출전 대비 공헌도는 좋았고, 출전 시간 대비 생산성도 좋았다. 추후에도 KBL에서 뛸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부산 KT
클라크는 2013~2014시즌 개막 전 다른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옵션 외국 선수로 홍역을 치렀던 부산 KT(현 수원 KT)가 클라크를 불렀다. 또, KT가 1옵션 외국 선수였던 앤서니 리처드슨을 고양 오리온스(현 데이원스포츠)로 보내면서, 클라크가 더 중요해졌다.
30대 후반이 된 클라크였으나, 클라크의 가치는 여전했다. 클라크가 활약하면서, KT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클라크가 이끄는 KT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마주했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가세한 후안 파틸로와 함께 KT를 이끌었다.
KT와 전자랜드는 4차전까지 2승 2패를 기록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그리고 시리즈 마지막인 5차전이 다가왔다. 클라크가 중심을 잡아줬고, 파틸로와 송영진이 뒤를 받쳤다. KT는 전자랜드를 큰 점수 차로 따돌리고 4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KT의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던 창원 LG. 당시 LG는 데이본 제퍼슨과 문태종의 원투펀치를 보유한 팀이었다. 여기에 김종규(현 원주 DB)와 김시래까지 포진해 있었다. KT와 LG의 전력 차이가 상당했다.
게다가 KT는 플레이오프 첫 관문에서 최종전까지 치렀다. 체력적인 면에서도 LG에 크게 뒤졌다. 또, 전창진 KT 감독(현 전주 KCC 감독)이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퇴장 징계로 2차전에 나설 수 없었다. KT는 마지막까지 싸웠지만, 3번의 경기 만에 시즌을 마쳤다. 클라크의 2013~2014시즌도 그렇게 끝이 났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Copyright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