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20억 신화 ‘코끼리 베이글’ 천홍원 대표

정세영 기자 2023. 7. 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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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것들로 직업마저 빠르게 바뀌는 세상. 코끼리 베이글 천홍원 대표를 만나 우직하게 ‘베이글’ 하나만을 바라볼 수 있었던 힘에 대해 물었다. 

운명처럼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우연찮게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필연으로 바뀐, 내가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말이다. 천홍원 코끼리 베이글 대표에겐 베이커리 사업이 그랬다.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의류 시장에 몸담았을 때만 해도 베이글 가게를 차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홍원 대표는 오픈런은 기본이고, 수십m 웨이팅 줄도 마다하지 않는 베이글 전문점 코끼리 베이글의 수장이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은 건 아니다. 의류 사업은 도전하는 족족 실패했고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 이름으로 신용카드조차 만들 수 없었으니까요. '이제 모든 게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것이 베이글이었어요."

그에게 베이글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느슨해질 때마다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나 다름없다. 역경을 헤치고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간 이들은 창업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 급급하다. 하지만 천홍원 대표는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실패했고, 좌절로부터 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더욱 철저히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실패야말로 자신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천 대표를 만났다.

패션 분야에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옷을 너무 좋아했어요. 미술을 전공했지만 옷 구경하고 입어보는 걸 더 좋아해서 스물여섯 살 때부터 남대문 도매시장과 동대문 개인 매장, 의류 회사를 거쳐 강아지 옷, 해외 납품, 쇼핑몰까지 거의 10년 동안 의류 쪽 일을 했죠. 제가 생각해도 이력이 화려하네요(웃음).

의류 일은 어땠나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인생 최대 위기이자 좌절의 시간이었죠. 시장조사도 하고 업계 시스템, 노하우 등 사업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차근차근 배우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무조건 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저를 더욱 궁지로 몰았던 것 같아요. 어리석었죠. 당시 했던 사업은 쉽게 말해 모두 망했어요(웃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진짜 잘될 거야’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희망 고문일 뿐이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부채는 계속 쌓여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베이커리 업계에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됐나요.

신용불량자였기 때문에 카드, 핸드폰도 만들지 못했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무기력함과 패배감에 찌들어 있었죠. 빚이 정말 많았지만 어머니께 빌린 돈을 조금이라도 갚고 난 뒤에 삶을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아는 형님을 찾아갔어요. 의류 쪽 일을 하시다가 우리나라 베이커리 카페의 원조 격인 '르 알래스카’를 창업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분이었어요. 사정을 이야기하니 흔쾌히 받아주셔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삶의 전환점을 맞은 거네요.

맞아요. 처음에는 제조, 생산 등 빵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했었어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아는 기술은 없고, 손도 느리고 의욕도 없고요. 매일 빵을 만드니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버텼어요. 다른 곳에 취업할 상황도 아니고, 어머니께 빚을 갚으면 어차피 모든 걸 정리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홀 매니저로 직무를 변경하게 됐는데, 이게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현장에서 손님을 응대해보니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과 식감, 변해가는 입맛과 트렌드가 보이더라고요. 세심히 관찰하며 잘 팔리는 아이템들과 그 특성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해나갔어요. 어느 날 모아서 보니 사람들이 선호하는 빵에 대한 기준이 잡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내가 만약 제빵 일을 한다면 이런 맛과 식감을 가진 빵을 만들어야지’라는 꿈이 생겼어요, 손톱만 한 빛이 보인 거죠.

그게 베이글이었나요.

당시 제가 내린 결론은 한국인은 대체로 부드럽고 어디서든 간편히 뜯어 먹을 수 있는 빵을 선호한다는 거였어요. 그에 가장 부합하는 빵이 바로 베이글이었고요. 하지만 흔히 판매하는 쫀쫀하고 텁텁한 맛의 베이글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베이글을 만들고 싶었죠. 어떻게 차별화를 둘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전국 유명하다는 빵집뿐만 아니라 음식점도 찾아다녔죠. 몇 날 며칠을 열심히 발품 팔며 시장조사를 한 끝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화로 구워 불맛을 살린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에 착안해 빵에 불맛을 입힐 수 있는 최적의 기계는 무엇인지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화덕’이라는 정답을 찾은 거고요.

화덕에 구운 베이글은 최초 아니었나요.

네. 당시 판매되는 베이글은 모두 오븐으로 구웠어요. 오븐은 기계식이다 보니 대량으로 쉽게 많이 구워낼 수 있거든요. 화덕은 사람이 직접 기계에 반죽과 스팀을 넣어야 하고, 중간중간 위치도 바꿔줘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가요. 또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많이 굽지도 못하고요. 하지만 베이글 반죽을 화덕과 오븐에 각각 구워 맛을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더라고요. 화덕을 사용한 베이글이 훨씬 쫀득하고 촉촉해요. 밀가루 잡냄새도 없고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맛있기 때문에 스프레드를 따로 바를 필요가 없죠. 질리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고요.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화덕으로 베이글 굽는 기술을 터득하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화덕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화덕을 구입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어요. 한두 푼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거든요. 시중에 나와 있는 화덕에 관한 책은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인터넷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오래 고민한 끝에 화산암으로 만들어 원적외선이 많이 나온다는 이탈리아 화덕을 구입했습니다. 그 시기가 르 알래스카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출근하고 오후 9시 마감한 뒤 집에 돌아와서 화덕으로 빵 굽는 일을 거의 1년간 매일 했죠. 육체적으로 너무 고단했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연습했어요. 다니던 지점이 문을 닫아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나머지 1년은 화덕에만 매진했습니다. 화덕 안에 물도 더 뿌려보고, 장작의 양도 늘려보는 등 원하는 맛과 식감이 나올 때까지 쉬지 않고 반복했어요.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군요. 총 2년 정도 연습하니 상상했던 것과 100% 부합하는 베이글이 완성됐어요.

실패 후 다시 사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어요. 실패하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잘될 거야’라는 희망보다 잘 안됐을 때 내 모습은 어떨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거든요. 그래서 사소한 것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고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경제적 능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도와주셨어요. 위태로워 보였던 제가 다시 반짝이는 눈빛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말렸던 공단 대로변에 1호점 오픈

코끼리 베이글 1호점(영등포점)은 공단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요.

계약을 확정한 뒤 공단 사무실 소장님을 찾아뵀을 때 "여기서 장사하면 망한다. 하지 마"라고 하셨어요(웃음). 하지만 저는 너무 마음에 들었죠. 주변에 코스트코가 있는데 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면 가게 앞에 줄을 설 수밖에 없었어요. 기다리면서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한 번쯤은 들를 것 같았거든요. 또 다른 이유는 착한 임대료이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장사가 잘됐나요.

신기하게도 오픈 첫날 완판됐어요. 가오픈 기간에 테스트 겸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는데 맘 카페에서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것 같더라고요. 저도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오늘은 오픈발인가 보다. 내일은 또 다르겠지’ 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날도 모두 판매가 되는 거예요.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이 찾아와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줄 서서 먹거나 하는 핫플은 아니었어요.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 정도였던 것 같아요.

유명해진 계기가 있다면요.

2019년 11월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 출연하게 되면서요. 아무 연출 없이 사람 위주로 촬영한다는 PD님의 이야기에 흔쾌히 승낙했죠. TV를 보신 분들이 제가 살아온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단순히 빵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고요. 이 프로그램 덕분에 유명해졌고, 말 그대로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거듭났죠.

이름은 왜 '코끼리 베이글’인가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도로변 너무 외진 곳에 위치해서 이름이라도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아이디어를 많이 구했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단순하고 촌스러운 이름 있잖아. 코끼리 베이글 같은 거"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친구들이 "코끼리 베이글 이름 지었어?"라고 묻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코끼리 베이글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코끼리가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코끼리 베이글’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죠.

신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요.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해요. 김치, 된장 등 말도 안 되는 재료가 들어가도 상관없어요. 자료를 취합한 뒤 현실적으로 제조 가능하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입은 것을 선정합니다. 그 후 선정된 아이디어를 재현해보는 거죠. 어울릴 것 같은 재료를 넣거나 소스를 개발해보는 등 오랫동안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모두 메뉴판에 이름을 올리는 건 아니에요. 테스트하면서 계속 걸러내거든요. 테스트에서 살아남은 것 중 코끼리 베이글에 어울리는 맛과 이미지를 골라 신제품으로 출시하고 있어요.

코끼리 베이글은 어떤 맛을 추구하나요.

일단 자극적이지 않아야 해요. 너무 달거나 짜면 빨리 질리거든요. 손님들이 베이글만의 고소함과 씹을수록 올라오는 기분 좋은 단맛, 부드러운 풍미를 제대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스프레드를 바르지 않고 그 자체로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요. 저희는 스프레드를 따로 판매하지 않고 있어요. 또 새로워야 합니다. 유행하는 재료나 제조 방법을 따라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직원들에게 늘 자기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아무리 맛있어도 다른 곳에서 먼저 했다면 우리 것이 아니니까요. 더 연구하라고 이야기하죠.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승부

재료 선정에도 공을 많이 들일 것 같아요.

저희는 코스트코 제품을 절대 사용하지 않아요.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맛을 판매하잖아요. 맛있는 베이글을 만들기 위한 1순위는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거예요. 아무리 비싼 재료라도 베이글의 퀄리티를 높여준다면 어떻게든 사수할 생각이에요. 지금도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고요.

집에서도 코끼리 베이글과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팁이 있다면요.

반죽할 때 물 대신 야채수를 사용해보세요. 오븐에 구워도 괜찮습니다. 더 부드러운 식감과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코끼리 베이글과 100% 똑같은 맛이 나진 않으니 참고하시고요(웃음).

대표님의 최애 베이글은 무엇인가요.

호두 크랜베리 베이글이요. 매일 아침 먹는데 질리지 않아요. 오독오독 씹히는 호두와 상큼한 크랜베리가 입맛을 돋워줘요. 베이글 본연의 맛을 해치지도 않고요. 여기에 달걀프라이와 아메리카노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어요.

성수점의 한 달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요.

약 2억5000만 원에서 3억 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성수점은 지금 변화를 준비 중이에요. 아침에는 베이글, 점심에는 요리, 저녁에는 술과 안주를 팔면서 하루의 미식을 연결시켜주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매출 목표도 지금의 2배 이상으로 잡고 있어요.

대기업에서 인수 제의가 오진 않나요.

인수보다는 큰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거 같아 거절했습니다. 소위 개떡을 만들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가고 싶거든요. 지금 계획은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세컨드 브랜드를 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직원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생길 거고요. 코끼리 베이글은 절대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에요. 직원들의 희생과 애정,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제 최종 목표는 직원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는 탄탄한 회사를 만드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한 것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우리만의 스타일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달에 몇억 번다’는 타이틀만 보고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매출에 현혹돼서는 안 됩니다. 인원, 재료, 관리 등 현실적인 것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해요. 단순하게 '몇백 개를 팔 거야’가 아니라 마진율을 정확하게 잡고 계산한 뒤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매출은 높은데 남는 게 없는 장사가 될 수도 있어요. 세금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떼어가거든요(웃음).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요.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단번에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이는 극히 드뭅니다. 살면서 제일 힘들다고 느꼈을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성공하고 유지할 수 있어요. 가장 위험한 것은 지금 이게 유행이니까, 누군가 했는데 잘되니까 따라 해보는 겁니다. 창업은 본인이 해야만 하는 이유와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또 실패에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실패는 정말 무서운 거예요. 한 사람과 가족의 모든 것을 통째로 무너트릴 수 있거든요. 저는 창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성공보다 실패 사례를 더 많이 찾아보라고 해요. 실패 후 극복 과정을 참고해 미리 계획을 짜놓아야 흔들리지 않거든요. 오래 걸리더라도 성공과 실패를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한 뒤 창업했으면 좋겠어요. 인생에 한 방은 없습니다.

#코끼리베이글 #창업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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