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생일 하루 앞두고 하늘나라로 간 오빠… 날 작가로 만들어[그립습니다]

2023. 7. 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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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인 오빠는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아홉 살이나 많은 오빠는 자신이 공부할 때면 우리에게도 공부하도록 했다.

나는 오빠가 건네주는 책들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야. 읽어 봐!" 나는 책을 읽고 오빠처럼 '독서일기'도 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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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동진(1955~2014)
1969년 가족사진. 중학교 1학년이 돼 교복을 입은 작은 오빠가 맨 뒤에 의젓하게 있는데, 맨 앞에 앉은 6세 꼬마인 나는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울었다. 나를 안고 있는 엄마 뒤로 사촌 언니와 동네 남자아이가 함께 했다.

중학교 3학년인 오빠는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쓱싹쓱싹 글을 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이 들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중학생인 오빠를 위해 방 가운데쯤에 책상을 놓았고, 그 너머는 오빠의 절대 공간이었다. 오빠는 늘 무언가를 열심히 썼다. 하루는 오빠가 없는 틈을 타 글을 몰래 읽어 보고 키득거렸다. 주인공이 한 학년 위인 여고생을 짝사랑하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아홉 살이나 많은 오빠는 자신이 공부할 때면 우리에게도 공부하도록 했다. 언니와 내가 말을 들을 리 없다. 둘이 장난치거나 투덕거린다. 오빠는 조용히 타이르지만 우리는 더 시끄럽게 웃고 떠든다. 그러면 “요것들, 안 되겠네. 손 들엇!” 하고 제법 큰 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손을 들되 키득거리며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오빠도 피식 웃고 만다. 그런 오빠였다. 너그럽고 다정한.

어릴 적 호되게 앓아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오빠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들어갔다. 그 때문인지 오빠는 성숙했다. 학교에서 문예부장을 하면서 ‘한국문학’ ‘문학사상’ ‘독서신문’을 구독했고, ‘독서일기’를 썼다.

어느 날 오빠는 집집마다 책을 얻으러 다녔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다가 이내 친구들은 물론 나와 언니도 함께했다. 비어 있던 마을 ‘공회당’을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오빠의 ‘좋은 의도’에 적극 동참해 주었다. 휑했던 시멘트 공간이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그뿐만 아니다. 오빠는 작은 개울 옆으로 난 마을 길에 화단을 가꾸기도 했다. 불과 중학생이던 오빠가 생각해 내고 실행한 일들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오빠는 이 일로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시장이 주는 특별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오빠는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각혈까지 하는 폐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2년 가까이 소금강 근처 큰이모 집에서 지내면서 병은 나았지만, 학교를 더는 다닐 수 없었다.

이후 오빠는 직장을 다니면서 책을 사들였다. 세계문학 전집에다 그레이트 북 시리즈, 펄 벅, 헤밍웨이, 톨스토이 전집, 한국 단편 문학 전집, 구전 문학 전집 등. 덕분에 우리 집은 남부럽지 않은 책 부자가 되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오빠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중학생이 되면 이 정도는 읽어야 돼.” ‘백경’이었다. 나는 오빠가 건네주는 책들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야. 읽어 봐!” 나는 책을 읽고 오빠처럼 ‘독서일기’도 써나갔다. 등단한 뒤 오빠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오빠 덕분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흔한 남매끼리는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법! 단지 상금 중 일부를 오빠에게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보냈다.

오빠는 세 번째 죽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9년 전 눈을 감았다. 예순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위암이 췌장까지 뻗쳤는데, 수술하기 위해 개복했지만 장기가 엉키고 붙어 수술하지 못했다면서 의사가 물었다. “언제 큰 병을 앓은 적이 있어요?” 그때의 절망감은 지금까지도 가슴을 짓누른다.

너무 일찍 세상을 깨달아 저세상으로 간 것일까? 오빠가 생각날 때면 혼자 묻곤 한다.

김진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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