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주가조작범 강력 처벌법'은 어떻게 국회 문턱을 넘었나

원종진 기자 2023. 7. 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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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지난해 저는 SBS 탐사보도부 '끝까지판다' 팀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일대기를 취재했습니다. 취재 노트에 적혀 있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영화 같은 에피소드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만,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김성태 전 회장이 지난 2017년 법원으로부터 받은 최종 형량입니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 주가를 조작하고, 불법 대부업체 '도쿄애셋'을 운영한 혐의 등에 대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죗값은 모두 합쳐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벌금 1,500만 원이었습니다. 법원은 당시 김 전 회장의 범죄가 ▲피해자가 다수인 시세조정 범죄이고 ▲코스피와 코스닥을 넘나들며 자본시장을 교란시켰으며 ▲범죄 수익까지 얻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1500만 원 정도의 죗값만 물었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결심에서 '김성태 일당이 얻은 범죄수익이 347억 원에 달한다'며 추징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취득한 이득이 다액으로 보인다"면서도 "정확한 추징금액을 산정할 계산 자료가 부족하다"며 추징금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솜방망이 처벌만 받은 김 전 회장은 이후 무자본 인수합병과 수많은 정경유착 의혹들을 낳으며 '쌍방울 캐슬'의 정점에 군림했습니다.

기사 링크 : [끝까지판다] 경제 권력 된 불법 사채업자...'쌍방울 캐슬' 쌓기
[ https://news.sbs.co.kr/news/panda.do?plink=GNB&cooper=SBSNEWS ]

'주가조작에 최대 2배 과징금'…5년 만의 국회 통과

주가조작과 같은 경제범죄를 저질러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람이 손톱만큼의 대가만 치른 뒤 다시 시장에 복귀하는 현실. 비단 김성태 전 회장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가조작 사범들은 꾸준히, 반복적으로 집행유예와 소액 추징금만 선고받고는 시장에 복귀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5년 전 처음으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지난 2018년,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낸 법안입니다. 법안은 주가 조작 등으로 얻은 이익을 산정하는 방식을 법 조항에 넣도록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규제 당국과 수사기관의 자의적 권한 행사가 우려된다'는 반대 의견에 막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찾아온 금융시장 호황과 개인 투자자들의 증가, 함께 늘어난 다양한 주가조작 범죄들이 다시금 입법 필요성에 불을 지폈습니다. 2020년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윤관석 의원,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등이 법안들을 잇따라 발의했습니다. 주가조작과 같은 범죄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주가조작 자진 신고자에게는 제재를 감면하는 게 이 법안 내용의 골자입니다.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하나의 대안으로 합쳐졌고, 지난달 30일 드디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


통과된 법안은 자본시장에서 3대 불공정거래(주가 조작·미공개 중요정보 이용·사기적 부정거래)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기존에 규정된 형사처벌은 물론, 부당이득액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주가조작으로 10억 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다고 판단되면, 2배인 20억 원까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17년 김성태 전 회장 판결에서처럼 부당이득 규모를 산정할 기준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안은 '부당이득'의 산정 기준을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뺀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법안은 주가조작 등의 불공정거래를 자진신고 하거나 수사에 협조하는 경우 형벌을 감면하는 근거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 행위는 통상 팀을 짜서 이뤄지는데, 이 규정을 도입함으로써 복잡한 주가조작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 겁니다. 정무위원회와 법사위원회에서 법안 발의와 심사를 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법안 통과로 부당이득의 두 배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가졌던 현실에서 벗어나 '주가조작은 걸리면 패가망신이다'라는 기준을 만들게 된 것 같아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야당-여당-법원 사이 오갔던 치열한 토론의 흔적들

그런데 법안 발의와 통과 과정을 취재하면서, 요즘의 국회 출입기자로서는 보기 힘든 풍경들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극언을 쏟아내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를 '견제 대상'이 아닌 '적'으로 여기는 환경 속, 법안 통과를 위해 법무부와 여당, 야당 간에 치열한 토론과 조율 과정이 있었던 겁니다.

사실 법안에 신설되는 조항을 두고 법원과 법사위 일부 여ㆍ야 의원들은 반대 의견을 내놨습니다. ▲부당 이득이 없는 경우에도 최대 4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고, ▲ 수사협조자가 범죄 발생 이후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진술해 형을 감면을 받는 것은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에 해당돼 수사기관 자의성을 지나치게 확대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법령에서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한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있고,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구체화한다고 해도, 그 이익이 '법 위반으로 얻은 것'이라는 인과성을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물론 행정부도 설득에 나섰습니다. SBS는 법무부와 금융위원회의 국회 제출 설명자료들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여기서 정부는 "불공정거래는 다수의 선량한 투자자와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아가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대한 위반행위임에도, 그동안 엄벌은 내려지지 않고 오히려 주가조작 수법은 고도화ㆍ지능화되고 있어, 수많은 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법취지와 시급성을 고려하여 의원님들께서 입법적 결단을 내려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적었습니다.

정부는 또 2012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금융회사인 SAC캐피탈과 그 직원에게 내부자 거래 혐의를 적용해 소송을 제기한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투자한 제약회사의 신약 임상실험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정보를 부당하게 취득한 뒤, 주식을 매도해 2억 7천5백만 달러의 부당이득을 올린 SAC캐피탈을 상대로 SEC가 소송을 걸었고, 부당이득의 2배가 넘는 6억 1천6백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도록 한 것입니다. 1년 뒤 미국 연방 검찰이 또다시 SAC 캐피탈과 관련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회사로 하여금 18억 달러를 내게 한 사례도 제시됐습니다. 수백억 원 대 주가 조작에 휘말려도 상대적으로 소액의 벌금만 내고 풀려나는 우리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것들입니다. 치열한 여야 대치 상황 속에서 이번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약이 없어질 수 있기에, 금융위와 법무부 관계자들은 법안 통과에 유보적이거나 반대 입장인 의원실을 돌며 대면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막말과 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치'


'법무부'와 '국회'가 기사에서 함께 언급될 때, 장면의 묘사는 검투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야당 의원은 비장하게 연단에 나와 이리저리 말의 칼을 쑤셔보고, 철갑을 두른 장관은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응수합니다. 하지만 한 판의 치열한 말싸움 끝, '그래서 뭐가 남았는데?'라고 생각해 보면 답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논쟁보다는 상대에게 생채기를 내기 위한 말다툼. 이런 것들이 주로 다뤄지는 정치 뉴스를 보고 만드는 일을 하면서, 솔직히 종종 '이러다 나라 망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해가 졌다 다시 뜨면 돌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스템들을 보며 가끔 이런 의문도 떠오릅니다. '근데, 이게 어떻게 안 망하고 돌아가는 거지?'.

싸움의 연극판 뒤, 어디선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문제 해결의 노력들을 취재 기자로서 엿볼 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곤 합니다. 허점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변화된 현실에 맞춰 '개정'이라는 진전을 이룬 이번 법안은 그 실마리들 중 하나입니다.

불구경보다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상품성을 생각하면 정치부 기자인 저는 내일도, 모레도 싸움 얘기를 써야 할 겁니다. 그래도 가끔은, 우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이 해결의 노력들을 기자로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환멸의 동의어가 된 '정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꼭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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