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되지 못한 ‘서울마루’… 아직 끝나지 않은 ‘지붕의 꿈’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2023. 7. 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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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세종대로 역사문화 특화공간 사업 일환
성공회 신관 등 허물고 광장 조성 계획
‘서울 연대기’ 개념 계획안이 당선작 선정
실시설계 시작 무렵 건물의 용도 바뀌어
서울시의회 건물 연결 통합광장은 무산
‘시각적 기단’ 덕분 대성당 존재감 드러나
등잔 밑은 정말 어두웠다. 성공회 대성당은 서울에서도 주목받는 자리에 있지만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알지는 못했다. 나도 대학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정동(貞洞) 일대를 돌아다니다 성공회 대성당을 처음 봤다. 20년 전 일인데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표정한 회색 건물 뒤에 가려 있던 성공회 대성당은 화려하면서도 단아했다. 서울의 그 어떤 근대건축물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이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기획부터 설계까지 주변 건물들이 돋보이도록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자 했다. 열린 공간이 되어 가능성이 더 커진 자리에 사라짐으로써 존재감이 더 드러나는 건축이 되고자 했다.
성공회 대성당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 살짝 옆을 보니 이번에는 수직, 수평을 강조한 서울시의회 건물(옛 부민관)이 보였다. 1935년에 완공된 부민관은 지금으로 따지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정도로 당시 경성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문화 예술을 즐기던 곳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한옥이 적당히 섞인 성공회 대성당과 근대 모더니즘 양식에 전체주의 양식이 가미된 서울시의회 건물이 한눈에 보이는 장면은 근대시대 서울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 같았다. 서울시청 앞에 새롭게 조성될 광장에서도 이 장면을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성공회 대성당을 가리고 있는 회색 건물을 상상 속에서 철거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회색 건물 자리에 광장을 만든 설계안을 졸업작품에 넣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시청 앞에 광장이 생기고 새로운 서울시 신청사가 들어섰지만 성공회 대성당 앞에 있는 회색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이 회색 건물도 두 건물과 비슷한 시기인 1937년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서울지방국세청 남대문별관으로 준공 당시에는 조선체신사업회관이었다. 4층으로 준공된 건물은 이후 7층까지 증축됐는데 그보다는 1980년대 태평로(현 세종대로) 확장공사 때 전면부가 잘려나가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세종대로서 성공회 대성당으로 경사져 내려오는 전시관.
2015년 5월, 서울시는 <세종대로 일대 역사문화 특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회색 건물과 대한성공회 신관을 허물고 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 내용을 설명하는 뉴스를 읽는 순간 어설픈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나의 졸업작품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어져 그해 가을에 개최된 설계 공모 제출안도 일부러 찾아봤다.
당선작으로 ‘서울 연대기(Seoul Chronicle)’라는 개념을 내건 터미널 7 아키텍츠(Terminal 7 Architects)의 계획안이 선정됐다. 설계자는 대상지 주변 땅속에 묻혀 있는 역사의 흔적을 시간 순서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나오는 도시의 파편화된 기억이 서울의 이야기가 되어 연대기(年代記)로 쓰이는 것을 바랐다. 실제 서울 사대문 안은 어디든 땅을 파면 유적이 나온다. 더군다나 대상지는 과거 덕수궁 궐내였고 철거한 조선체신사업회관의 기초도 지하에 남아 있었다. 땅에 쌓여 있는 과거의 흔적이 마치 지층처럼 드러나는 벽은 지하 3개 층이 트여 있는 ‘비움홀’에 배치됐다.
서울마루에서 바라본 서울시 신청사와 서울도서관.
터미널 7 아키텍츠는 새로운 건물의 지붕이 성공회 대성당과 서울시의회가 함께 쓰는 통합 광장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지붕의 높이를 남쪽에 인접한 덕수궁 돌담 높이에 맞췄다. 색깔도 덕수궁 돌담과 어울릴 수 있도록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붕 덮개(canopy)를 같은 색의 콘크리트로 설계했다.
하지만 설계자의 이런 노력을 현재 건물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기본설계가 끝나고 실시설계가 시작될 무렵 건물의 용도가 서울역사박물관 세종대로 분관에서 도시건축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서울의 도시와 건축을 전시하는 공간에서는 서울의 역사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전시관을 운영할 서울시는 설계자가 제안한 역사의 지층을 회색 마감재로 덮은 거대한 벽으로 바꿨다. 지붕 덮개의 컬러콘크리트는 공사비뿐만 아니라 재료 수급 문제로 일반콘크리트로 시공됐다.
무엇보다 성공회 대성당과 서울시의회 건물이 함께 사용할 광장으로 계획된 지붕은 결국 광장이 되지 못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지붕이 시야를 막는다는 서울시의회의 의견을 반영하여 실시설계 때 지상 구조물이 남쪽으로 3m 이동됐다. 서울시와 성공회 성당은 성당의 기존 주차장을 지하로 만드는 데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세종대로에서 성공회 대성당까지 연결될 계획이었던 광장은 대성당 부지와 만나는 지점에서 85㎝ 단차를 이룬 채 끊어져 있다. 그나마 서울시의회 방향으로는 계단과 경사로가 설치돼 지붕으로 바로 오를 수 있지만 성공회 대성당 방향은 그럴 수도 없다. 광장이 되지 못한 지붕을 서울시는 ‘서울마루’라고 부른다. 그리고 매해 ‘서울마루 공공개입’이라는 공모를 통해 지붕에 설치할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기획부터 설계까지 주변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 서울시의회 건물, 그리고 덕수궁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자 했다. 열린 공간이 되어 가능성이 더 커진 자리에 사라짐으로써 존재감이 더 드러나는 건축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광장이 되지 못하고 마루가 된 지붕은 아쉽다.
설계자가 ‘시각적 기단’이라고 표현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덕분에 이제 많은 사람이 성공회 대성당이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성공회 대성당이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을 갖추게 된 건 30년도 채 안 됐다.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Arther Dixon)의 설계로 공사하다가 1926년 일제의 물자동원령으로 자재 조달이 어려워지자 미완성 상태로 준공됐다. 그렇게 65년이라는 시간 흐른 뒤 대한성공회는 대성당의 완성을 위해 건축가 김원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아더 딕슨이 만든 설계도가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계자가 대한성공회로부터 받은 건 건물 모델을 찍은 작은 사진뿐이었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완성하자는 김원의 제안에 대한성공회는 원형 복원을 고수했다. 그러던 중 당시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학생이 렉싱턴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설계 원본 도면을 기적처럼 찾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성공회 대성당에서 건축가 김원의 시그니처를 전혀 발견할 수 없음에도 이 작업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성공회 대성당은 건축물이 완성되는 시점이 조금 늦을 수 있다는 것, 여건과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스스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광장이 되지 못하고 마루가 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붕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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