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를 단일화나 공천에 쓰는 나라 거의 없어…후진적 정치문화”

박송이 기자 2023. 7. 4. 0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 출간한 김헌태 박사 인터뷰
여론조사전문가로 일해온 김헌태 박사는 최근 <여론조사,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를 출간했다. / 박송이 기자

[주간경향]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와 여론을 다루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가로 일해온 김헌태 박사는 최근 <여론조사,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미다스북스)를 출간했다. 책은 여론조사와 조사기관들에 대한 단골 시빗거리들, 여론조사에 대한 기본 지식, 여론조사가 실제 편향되고 왜곡되는 과정 등을 담았다. 또 여론조사를 오남용하는 한국의 정치문화, 팬덤정치와 여론조사가 충돌하는 지점 등을 분석했다. 그는 지금이 여론조사 수치가 내포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동을 조사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하며 “임기 말 40%가 넘는 역대 최고 지지율에도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을 이루지 못한 이유, 낮은 지지율에도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는 뚜렷한 흐름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 등 새롭게 출현한 정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신념구조의 변동을 추적할 수 있는 여론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 대해 비전문가도 알아야 하나.

“한국 정치에서 ‘여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보여주고 전달하는 공식적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여론조사는 누구나 아는 중요한 이슈나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사실 기초지식이 없다면 이해나 접근이 어려운 분야다. 여론조사에 대해 통용되는 부정확한 지식과 오해가 정치과열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소모적이거나 화풀이 수준의 논쟁만 반복돼왔다.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우리 편이 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여론조사기관을 불신하거나 ‘우리나라 국민이 우매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식이다. 여론조사를 비판하고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기초적인 상식을 알고 해야 토론도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여론조사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본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이 공표되는 저널리즘이 정착되지 않았을 때는 대체로 정치지도자나 지식인,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지식이나 판단을 통해 ‘이것이 여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객관성’을 앞세운 여론조사가 미디어를 통해 공표되면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내가 곧 여론이다’라고 주장하는 일은 사라졌다. 과거 ‘시중여론’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여의도와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정치인들이 매일 여론이 어떤지 민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떠들었다. 저마다 아전인수격으로 여론을 주장했다. 정치인들이 자기 관점으로 여론을 읽고 결국 여론의 반대 방향으로 가다 국가적인 정치파동을 겪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공동발의다. 당시 탄핵을 기획했던 그룹은 낮은 대통령 지지율을 탄핵여론으로 착각했다. 나는 두 가지를 같은 여론 현상으로 혼동하면 큰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실제로 그러한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소모적인 갈등과 충돌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여론조사다. 정확히 말하면 여론조사는 국민적 합의, 컨센서스를 확인하는 도구다. 물론 여론대로만 따라가면 이른바 중우정치가 될 수 있다. 정부나 정당은 결국 여론의 흐름이나 지형을 파악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동시에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여론을 알아야만 국정운영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지금처럼 계층·부문·집단에 따라 복잡다단해진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더욱더 여론을 살피면서 전략적으로 방향을 잡아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하자 ‘지지율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지도자들이 여론이 생각과 같지 않을 때 하는 의기소침한 발언이다.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하겠다는 일은 결국 실패하고 본인은 나중에 독주와 독선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생각보다 여론을 다루는 솜씨가 좋다. 윤석열 대통령 자체는 훈련이 잘 안 돼 있어 불안정하고 서툴지만, 정리돼 나오는 메시지를 보면 여론의 결을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고 피해가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두고 일본 측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자 ‘일본 정부를 옹호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라며 이를 강하게 반박했다. 오염수 방류라는 방향으로 가긴 가면서도 국민 여론을 자극할 수 있는 선을 밟지 않으려고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일종의 심판관 역할을 하다 보니 너무 영향력이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론을 측정하는 여론조사가 오히려 여론을 만든다는 주장은 ‘밴드왜곤 효과’라는 차원에서 짚어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누군가를 지지하니까 덩달아 나도 따라 지지한다는 뜻이다. 법원의 판결문에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론조사가’라는 문구까지 나오지만, 외국이든 한국이든 여론조사 결과가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른바 정설의 지위를 획득한 논문이나 실증자료는 사실상 없다. 개인의 정치적 지지 태도는 지역·연령·세대·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선유경향(이념이나 신념구조)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론조사와 같은 특정한 정보에 의한 단순한 태도 변화는 제한적이고 우발적이며 일관되지 않다. 일각에서는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의제설정’ 등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느냐고도 한다. 그렇게 따지면 정치인의 메시지, 공약, 정치인 관련 수사나 재판 관련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한 모든 정보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여론조사가 투표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도한 우려는 한국사회 전반의 정치문화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팬덤정치는 ‘우리가 지지하는데 어떻게 여론조사가 그렇게 나오나’라며 불만을 쏟아낸다. 최근엔 ‘직접 여론조사 회사를 만들겠다’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정치권도 ‘우리 편 여론조사’만 믿게 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치문화인가.

“여론조사가 선거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여론조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선거조직이 붕괴된다. 선거운동 조직원이 상대방 캠프로 가버리고 후원금도 안 모인다. 하지만 이게 여론조사 때문일까. 한국 정치문화의 문제다. 우리 편이 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내 생각과 다른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문화가 그 배경에 있다. 여론조사를 정치권에서 단일화나 공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는 거의 없다. 당원들이 요구하는 정책을 가장 잘 구현하는 후보를 선출해야지, 질 것 같다고 후보를 바꾸면 안 된다.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기본원칙을 어기는 일이다. 후진적이며 국제적 망신거리라고 본다. 또 모든 범죄 수준의 여론조작 온상도 바로 ‘공천조사’다. ‘전화기 불법 착신전환’, ‘응답자 명부조작’, ‘떳다방 여론조사회사’ 등 여론조사와 관련한 범죄 상당수는 공천 때문에 발생한다. 정치가 과도하게 승패에만 집착하면서 여론조사도 승패의 관점에서만 보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팬덤정치’가 한국 정치문화의 주요한 흐름으로 부상했다.

“팬덤정치와 여론조사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팬덤정치는 편향성을 중심으로 대중을 조직한다. 팬덤정치는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와도 결합돼 있는데, 그 기저에는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는 지성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다. 과거에도 팬덤정치는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팬덤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연청’이 있었다. 팬덤을 중심으로 조직이 만들어졌고 그때도 조직책들, 즉 부정적 표현으로 하면 브로커들이 활동했다. 문제는 디지털 팬덤정치로 전환하면서 팬덤이 주장과 토론 대신, 인신공격이나 막말로 공론장을 점령했다는 점이다. 과거 브로커들은 공론장으로까지 침투하지 않았다. 지금은 팔로워 수가 몇만이 되는 디지털 허브들이 등장하면서 공론장을 대체하고 정치인들이 거기에 의존해 휘둘리고 있다. 반면 ‘여론조사’는 도구의 성격 자체가 편향성과 대립하다 보니 팬덤세력과 근본적으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여론조사가 모든 조건의 사람, 집단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론장과 대립하는 측면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팬덤정치는 그들에 반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우리가 이렇게 지지하는데 어떻게 여론조사가 그렇게 나오나’라며 불만과 비난을 쏟아낸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우리가 직접 여론조사 회사를 만들어 여론조작에 대응하겠다’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정치권에서 ‘우리 편 언론’을 운운하면서 그 폐해로 언론의 심판기능이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우리 편 여론조사’는 여론을 정리해 보여주는, 여론조사의 사회적 공기능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정치권도 ‘우리 편 여론조사’만 믿게 되면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해 정치적인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에는 신뢰도가 낮은 여론조사 방식도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여론조사도 다 같은 조사가 아니라 등급이나 수준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최고의 여론조사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모니터링을 하고, 사후검증을 하고, 할당 충족률을 더 엄격히 지켜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통신사로부터 얻은 가상전화번호 무선전화 명부를 활용한 무작위표집 방식이 가장 높은 스펙의 여론조사다. 무작위표집은 모집단에서 표본을 ‘완전히 골고루 뽑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내가 1000개의 선물을 국민 중 누군가에게 무작위로 골라 주기로 했다. 동네에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골라 선물을 준다면 이는 ‘무작정표집’이다. 반대로 국민 4000만여명의 이름표를 모두 가져다 통에 넣어 섞어서 고르거나(단순무작위), 4000만명에 순번을 매겨 일렬로 정리한 후 1만 번째 사람을 선택해 선물을 주어야(계통무작위) 무작위이다. 무작위표집을 하게 되면 모집단인 국민 전체의 성·연령·직업·소득·학력 등의 분포가 그대로 반영되는 표본을 만들 수 있다. 방송사의 선거예측 출구조사 외에 ‘무작위표집’이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가 있는 것은 ‘통신사 명부를 활용한 조사’밖에 없다.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가장 높은 품질, 즉 신뢰도와 타당도가 높은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ARS(자동응답) 할당표집(정부의 공식 인구통계자료 등을 활용해 연령·성별·지역 등에 대한 표본할당을 모집단의 비율에 맞게 정함) 방식이 가장 저렴한 실속형이라면, 통신사 제공 가상전화 표집은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도 가장 상위의 품질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벽보. 선거가 다가오면 정당 및 후보 지지율과 관련한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온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론조사 품질과 관련해 ‘응답률’ 논란도 있다. 응답률보다 ‘가중치 배율’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응답률은 전화를 받은 사람 중 중간에 끊지 않고 최종적으로 응답을 한 사람들의 비율이다. 응답률이나 접촉률과 같은 개념은 결국 사람들이 얼마나 여론조사 전화를 잘 받아주고, 또 응답을 잘해주냐의 문제이다. 만일 특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 여론조사에 계속 포함되거나 특정한 사람들만 표본에서 자꾸 빠지게 되면 표본의 대표성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를 ‘체계적 편향’이라고 한다. 예컨대 지금 여론조사에서 응답을 거절하는 사람 중 보수가 더 많을까, 진보가 더 많을까. 이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면 ‘체계적 편향성’을 말하기 어렵다. 응답률보다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게 가중치 배율이다. 어떤 표집 방식이든 가중치 배율이 너무 높다면 불량한 표본추출을 의미한다. 무작위표집이든 할당표집이든 잘 되면 당연히 가중치 배율이 낮아진다. 만약 경기도 거주 20대 남성 26명을 조사해야 하는데 10명밖에 못 했다. 그러면 10명 조사결과에 2.6을 곱해 튕겨 버린다. 조사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도 그 방식에 따라 수준이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겠다.

“가중치 배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여론조사의 품질이 떨어지고, 결국 그 말은 비용도 덜 들였다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당연히 모니터링이나 검증도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게 불법은 아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언론사가 이를 선별하고 정리해 보여주는 일이다. 정확도나 신뢰도가 떨어지는 ARS 조사는 사실상 여론조사라기보다는 ‘준여론조사’처럼 표기를 해줘야 한다고 본다. 여론조사의 뉴스 가치가 높아지면서 여론조사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주요 영역이 됐다. 언론이 여론조사의 품질이나 편향성 등을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처럼 여론조사를 응용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여론조사를 보면 조사방식에서 뭐가 문제이고 어디가 약점인지는 알고 기사를 써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정확하게 쓰면 사실상 오보에 준해서 생각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범람할수록 이를 평가하고 스크리닝하는 언론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현업에 있다면 어떤 여론조사를 해보고 싶은가.

“지금 한국사회는 수십년 만에 거대담론이 바뀌는 시점이다. 이를 추적하는 여론조사를 해보고 싶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면서 한국사회의 3대 이데올로기 대결구도가 모두 무너졌다고 본다. 민주 대 반민주(권위주의 대 반권위주의), 민족주의(평화주의) 대 반공주의, 평등주의 대 발전주의(경제민주주의 대 개발지상주의) 이 3가지가 한국사회 여론의 기축이었다. 나머지 모든 여론은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파생된 측면이 있다. 3개의 구도가 무너진 결과 비합법 투쟁의 시대가 종료됐고, 제도권 진보 외에는 살아남기가 어려워졌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수구 또는 보수들이 선동에 의한 떼쓰기라고 비하했던 비합법 투쟁 공간에 대한 대중의 수용도가 높았던 이유는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는 ‘새로운 세상 만들기’라는 기대가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보의 정치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는데, 이러한 희망이 퇴조하면 진보 전체가 위축되고 퇴조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이나,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의 비합법 투쟁 공간이 제도권 진보를 떠받쳐줬다. 지금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20·30대가 기득권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지금 아무리 경찰이 노동자를 폭력적으로 진압해도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도 이 대결구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왜 무너졌다고 보는가.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3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보수 대통령이다. 윤석열 정부가 권위주의적인 지점은 있지만, 5·18이나 4·3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는 여전히 색깔론이나 전 정권에 대한 비판론에 의존하려는 듯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진화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간호법이 폐기돼 간호사들이 준법투쟁에 나섰을 때도 ‘의료당사자 간의 충돌’이라며 비껴갔다. 박근혜 정부 때 여론을 모두 무시하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두 번째, 핵전쟁을 할 수 있는 북한이다. 핵의 평화적 사용, 핵감축 등의 담론이 모두 붕괴됐다. 윤석열 정부가 친미·친일·해양세력과 삼각동맹을 맺는다고 해도 민족담론, 화해담론, 평화담론이 여기에 대항하지 못한다. 외교·안보 측면에서 평화·민족주의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세 번째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진보 대통령, 가장 의석이 많았던 민주당 정부 시대에 양극화 해소가 안 됐다. 빈부 격차 해소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서 모든 게 무력화됐다. 경제민주주의·복지 등 진보와 관련된 경제 담론이 사라졌고, 이 전선을 복원시키기가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한국사회 3대 이데올로기 대결구도가 무너졌다. 왜 문 정부는 임기 말 최고 지지율에도 정권 재창출을 못 했을까. 윤 정부는 권위주의적임에도 왜 사람들의 반향이 나타나지 않을까. 거대 신념구조의 변동을 추적해 여론을 분석할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보면 대립 구도가 살아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52%로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정부 때까지만 해도 일단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지지율이 60~70%까지는 올라갔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윤석열 시대의 여론변동, 지각변동은 이전과 달리 새로 생긴 것이다. 이데올로기 구도 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진영주의로 여론이 분열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국가지도자’는 ‘정파지도자’의 개념으로 축소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이르는 과정에서 짚어봐야 할 지점이 몇 가지 있다. 왜 문재인 정부는 40%가 넘는 임기 말 역대 최고 지지율에도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했을까. 왜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도 지지율이 낮았을까. 윤석열 정부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지 않고 조용할까. 가설을 중심으로 여론을 긴 호흡으로 보고 이를 분석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거대한 신념구조의 변동을 추적해야 그에 따라 파생되는 정치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교체를 분석한 책 <분노한 대중의 사회>를 썼다. 당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실패 이후 새로운 선택지도 없이 대중의 불만이 전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다’로 진단했는데, 이와 유사한 상황인가.

“지금은 한 마디로 대중이 체념한 상황이라고 본다. 계층 변동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변화의 동력, 엔트로피가 사라진 사회다. 도식적 예단이긴 한데 그 에너지가 사라지면 한국의 국운도 여기까지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당장 망하지는 않겠지만, 마치 유럽의 노쇠한 몇몇 선진국처럼 기본적 국가 수준은 유지되더라도 대중은 지쳐가고 사회는 낡아갈 것이다. 이후 정치는 거대담론의 대결이 아닌 사건 중심의 피로감이 반복되는 지지부진한 정치가 계속될 수 있다.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정치적인 비전을 둔 대결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지엽적인 사건을 통한 의미 없는 정권교체가 될 것이다. 다만 만약 선거제도가 제대로 개편된다면 서구식 다양성의 정치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제도개선이 가져오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기존의 정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정치를 조직하고 고양하여 전면적으로 ‘선 대 악’의 구도로 사회를 분할하는 방식이었다. 선거제도가 개편되면 다양한 블록(사람과 집단) 간의 이해관계의 교집합을 극대화해 기득권에 대항하는, 분산과 다양성의 정치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현실정치에서 국민들이 다양성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이 와야 하는데 그게 언젠지 모르겠다. 새로운 모멘텀 또는 파국적 사건 없이 이대로 간다고 가정하면 한국사회에 내재된 문제들이 고조되는 ‘모순의 심화’가 계속되고, 나라는 병들어가게 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