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 메시가 미국으로 간 까닭은

2023. 7. 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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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수천억 연봉’ 마다하고 마이애미 입단
국제스포츠 패권 싸움·2026 월드컵 등 연관
리오넬 메시가 지난해 12월 18일 카타르월드컵 우승컵을 들고 동료, 조국 팬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6·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미국을 다음 선택지로 결정했다. 메시는 최근 미국프로축구(MLS) 인터 마이애미에 입단했다.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17년, 파리 생제르맹(프랑스)에서 2년 뛴 뒤 선수생활을 마무리할 곳으로 미국을 택한 셈이다. 메시는 “돈을 생각했다면 사우디 등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구단들이 연봉 4억~5억달러(5248억~6560억원)로 다년 계약을 제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메시 영입에 실패한 사우디는 브라질 국가대표팀 공격수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를 겨냥하고 있다.

사우디 구단들 연봉 4억~5억달러 제시에도

메시가 ‘보장된’ 엄청난 연봉을 마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행은 단순히 메시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미국과 사우디 간 국제스포츠계의 패권 싸움, 2026년 미국·캐나다·멕시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흥행, MLS가 야심 차게 밀어붙이는 세계화 정책, 스포츠 스타·대중 문화·연예계 셀럽 간 융복합 미디어 비즈니스 등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미국은 국제 스포츠 시장에서 사우디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LIV 골프 간 합병이다. 명가의 자존심을 내세운 PGA가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만들어 운영한 LIV 골프의 막강한 자금력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는 2020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도 데려갔다. 최근에도 30세를 넘긴 축구 스타들을 계속 유혹하고 있다. 사우디는 2034년 아시안게임,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을 유치했고 2030년 월드컵 개최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사우디 프로리그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사우디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에 들어 있다”며 “골프에서 큰 효과를 본 사우디가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인 축구에서도 세계 시장 진입을 노린다”고 전했다. 인디펜던트는 “중국축구는 2016, 2017년 잠시 막강한 자금을 앞세워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했지만, 사우디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상당 기간 세계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남아시아(중동)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UAE)는 2008년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해 지금의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2012년에는 카타르가 파리 생제르맹을 샀다. 카타르는 지난해 월드컵을 개최했고, 내년 1월 아시안컵(아시아축구 국가대항전) 유치권도 확보했다. 서남아시아가 ‘오일 머니’를 앞세워 세계 스포츠 시장을 무섭게 점령해가는 형국이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2026년 월드컵을 개최한다. 경기 80% 안팎이 미국에서 열려 사실상 ‘미국 월드컵’인 셈이다. 그보다 2년 앞선 2024년에는 코파 아메리카(남미축구 국가대항전)도 미국에서 벌어진다. 원래 개최국은 에콰도르였으나 치안 문제로 개최를 포기하면서 미국이 개최권을 가져왔다. 잇단 굵직한 메이저대회 개최 및 홍보,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확장 등을 위해 미국이 히든카드로 영입한 게 메시다. 미국은 최근에는 2025년 클럽월드컵 유치권까지 가져갔다. FIFA는 2026년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로 32개 팀 체제로 처음 열리는 클럽월드컵 개최권을 미국에 줬다. 클럽월드컵은 대륙대회 우승팀을 중심으로 2024년 사우디 대회까지 7개 팀 체제로 열리고 미국 대회부터 32개 팀 체제로 크게 확대된다.

MLS 중계권은 애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가 올해부터 10년 동안 갖고 있다. 애플TV+는 세계 107개국에 MLS OTT를 제공한다. 메시가 7월부터 MLS에 뛰기로 하면서 중계 희망국이 늘었고 중계권료도 올랐다. 메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는 5억명 안팎이다. 메시가 마이애미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마이애미 구단의 SNS 팔로워가 하루 200만명씩 늘었다. 미 언론은 “메시 팔로워 중 0.5%(약 250만명)만 MLS 시청권을 사도 애플TV+는 엄청난 소득을 올린다”며 “메시가 직접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킬러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TV+는 메시와 별도의 인센티브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애미 구단도 가능한 한 많은 세계 팬에게 메시의 플레이를 보여주려고 킥오프 시간을 유럽 시간대에 맞췄다. 메시 유니폼, 축구화 후원사는 아디다스다. 아디다스도 메시에게 별도 보너스를 준다. 사우디 연봉보다 크게 적은 마이애미 연봉(5400만달러·약 708억원)이 메시에게는 큰 문제가 안 되는 셈이다.

“메시의 미국행에는 축구 그 이상의 철학이”

마이애미 구단은 ‘영국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공동소유자다. 베컴은 2007년 유럽 생활을 접고 미국프로축구로 진출했고, 2013년 구단주가 됐다. 베컴이 미국에서 뛰면서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마이애미 경기장 좌석은 1만8000석밖에 안 된다. 7월 초 메시 MLS 데뷔전 입장권은 지난 시즌 개막전보다 5~10배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축구단의 전통적인 수입처는 경기장 광고, TV 중계권, 입장권 판매 등 크게 세 가지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미디어가 극도로 발달한 시대에는 새로운 영역에서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미 언론은 “음악, 댄스, 영화,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 미국”이라며 “메시의 미국행은 많은 요소가 정교하게 융복합된 결과물이다. ‘축구, 그 이상의 철학(beyond football’ philosophy)’이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미 언론은 “패션계 영향력을 가진 베컴, 축구에 관심이 많은 르브론 제임스·마이클 조던·라이언 레이놀즈 등 셀럽 등을 고려하면, 마이애미 녹색 그라운드는 (스포츠를 넘어) 많은 걸 그릴 수 있는 깨끗한 캔버스”라고 표현했다. 베컴은 마이애미 구단을 2500만달러(328억원)에 샀다. 지금 시장가는 6억달러(7872억원)다. 10년 동안 20배 이상 커졌다. 베컴은 MLS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메시도 비슷한 조건을 제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자본은 현재 몇몇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프로풋볼(NFL) LA 램스는 아스널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프로야구(MLB) 보스턴 레드삭스는 리버풀의 공동소유자다. 축구 자산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르크트 등에 따르면, MLS는 세계 축구 톱 10리그에 이미 진입했다. 1부리그 팀 수 29개, 선수 수 768명은 프리미어리그보다 많다. 리그 총수입은 유럽 5대 리그 다음으로 많은 6위(14억6000만유로)다. 평균연령은 25.4세로 유럽 5대 리그보다 젊다. 외국인 선수 비중도 54.2%로 프리미어리그(67.6%), 세리에A(61.5%)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MLS가 앞으로 수년 안에 급성장한다면, 서남아시아 국가들보다 먼저 프리미어리그와 전략적으로 제휴할 수도 있다. 미국은 1970년대 펠레(브라질)를 시작으로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요한 크라위프(네덜란드), 베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 티에리 앙리(프랑스), 웨인 루니(잉글랜드) 등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영입해 미국 무대에서 뛰게 했다.

김세훈 스포츠부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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