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체역심사위, 27개월 복무안 제시

2023. 7. 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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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개월 합숙 징벌적” 비판에
우여곡절 끝 미흡한 타협안 도출
추후 정부·국회서 논의 필요성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여부를 결정하는 대체역심사위원회가 복무형태의 개선방안을 병무청에 공식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다. 복무기간을 27개월로 단축, 예외적으로 출퇴근 허용, 복무 분야 확대 등의 내용이다. 2020년 6월 출범한 대체역심사위가 내부 의결을 통해 복무형태 개선안을 마련한 건 처음이다. 나아가 정부 내 기구에서 구체적인 개편방안이 나온 것도 최초다. 그간 현행 ‘36개월·교정시설·합숙’을 두고 징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온 터다.

2020년 10월 26일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개최됐다. / 사진 공동취재단



복무기간 9개월 단축

병무청은 대체역심사위가 지난 4월 28일 대체복무 개선방안을 전달했다고 6월 28일 밝혔다. 대체역심사위는 병무청 산하 기구다.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의 대체역 편입을 심사·결정한다. 현재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병의 2배인 36개월이다. 기관은 교도소 구치소 등 교정시설이 유일하며 반드시 합숙 생활을 해야 한다.

대체역심사위가 제안한 개선안은 기간을 9개월 단축해 현역병의 1.5배인 27개월로 설정토록 했다. 특히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은 대체복무요원은 기간을 21개월로 더 줄이도록 했다. 현역 입영 대상자는 4급을 받으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는데 이들의 복무기간은 21개월이다. 출퇴근도 가능하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라 대체복무를 선택한 이들은 예외 없이 36개월 동안 합숙해야 한다. 이런 대체복무요원은 지난 5월 말 기준 66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대체복무요원 1138명 가운데 5.8%에 해당한다.

개선안에는 합숙을 원칙으로 하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비합숙을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녀 양육이나 심신장애 등을 이유로 합숙이 곤란한 이들에게는 출퇴근을 적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현역 입영 대상자 가운데서도 자녀를 보살펴야 하는 사정이 있으면 출퇴근할 수 있는 상근예비역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복무기관을 확대하는 내용도 대체역심사위의 개선안에 담겨 있다. 소방서나 119안전센터 등 합숙시설이 갖춰진 기관을 우선 검토하도록 했다.

대체역심사위가 개선안을 병무청에 제안한 건 법률에 따른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역법을 보면, 대체역심사위는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의결하는 것 외에도 ‘대체역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조사 및 제안’ 업무를 수행한다.

대체역심사위는 2020년 6월 29일 정식 출범한 이후 복무형태의 개선방안을 논의해왔다. 이번 개선안을 도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우선 대체역심사위가 심사 역할만 하면 되지,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지난해 8월쯤 대체역심사위 내 연구분과에서 개선안을 한 차례 마련했다. 그러나 이를 공식 안건으로 다룰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어렵게 개선안이 안건으로 올라가면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심사위원 29명의 의견이 다양해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투표 결과 이번 개선안이 과반수를 얻어 대체역심사위의 단일안으로 결정됐다.

표결로 정해진 만큼 이번 개선안을 미흡하다고 평가하는 위원도 많다. 대체역심사위원인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월 28일 위원 임기 만료)는 “국회에서 법 개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현행 제도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가진 위원들도 있다 보니 타협적인 안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장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 이들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대로 논의를 거친 다음에 최선의 개선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모호한 근거로 선심 쓰듯이 복무기간을 몇 개월 줄이는 안을 낸 것은 물건값을 흥정하듯이 개인의 양심을 대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선안 마련했지만

이번 개선안의 논의 과정과 내용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체역심사위가 이렇게 단일안을 내놓은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도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일으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또 정부와 국회가 향후 논의에 나설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정부가 당장 제도개선을 적극 검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병무청은 “제도개선은 대체역심사위원회의 제안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라며 “향후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방향과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제도개선 여부를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 100여 건이 헌재에 계류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체복무제도 설계 초기부터 국제인권기준과 해외사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 등을 고려해 현역병보다 1.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와 국회가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해 ‘36개월·교정시설·합숙’ 방안을 추진하자 “징벌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처벌을 위한 복무”라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2020년 1월 대체역법을 제정해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것은 헌법재판소가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의 결정문에는 대체복무가 또 다른 징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헌재는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노인·장애인·중증환자 등의 보호·치료·요양과 같은 사회복지와 관련한 분야에 복무한다면 “사회에 큰 혜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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