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다빈치’ 헤더윅의 요란 발랄한 서울 나들이 전
“이 자리에서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번 서울 노들섬 디자인 공모에서 헤더 윅의 작품 사운드스케이프(소리 풍경)가 반응이 가장 좋았다는 겁니다. 제가 확인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박수 한번 쳐줘야죠.”
오세훈 서울시장은 들뜬 목소리로 영국의 천재 디자이너 토마스 헤드윅을 확 밀어주는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동자동 옛 서울역사 안에서 열린 헤드윅의 전시 개막식 축사를 하는 자리였다. 지난 5월까지 서울시가 공모전을 연 노들섬 국제 도자인 공모에 출품한 국내외 건축디자이너 7명 가운데 음악이 들리는 소리 풍경 섬의 구상안을 낸 헤드윅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영국의 레오나르드 다빈치’로 불리는 천재 디자이너의 토마스 헤더윅(53)의 두번째 한국 특별전이 개막한 현장은 이날 시종 떠들썩했다. ‘문화역 284’란 이름으로 10여년 전 개조된 문화복합공간 안에 한국의 정계와 재계를 움직이는 인사들이 다수 나타나 작가 앞에 도열했다.
오 시장을 비롯해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뽀로로’ 제작사 오콘의 김일호 대표,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가 주빈으로 나왔고 이들을 전시를 만든 기획사 숨의 이지윤 대표와 공동주최 쪽인 일본 모리미술관의 카타오카 마미 관장이 맞았다. 쟁쟁한 유명인사들인데다 기획자인 이 대표 또한 최근 공모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유력한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오 시장과 헤더윅, 이 대표가 현관 들머리의 친환경 콘셉트 전기차 에어로부터 측면의 2010년 상하이엑스포 영국관 ‘씨앗성당’ 모형과 2012년 제작한 영국 런던의 명물 이층 버스의 리모델링 디자인 ‘루트마스터’로 발걸음을 옮기며 작품들을 둘러보는 동안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속에 국내 재계와 미술계 인사들이 줄줄이 그들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란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는 지난 10여년간 자유로운 상상력과 감성, 친환경, 생태성을 자극한 디자인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헤더윅 스튜디오의 건축 프로젝트 30가지를 소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늘거리는 유연한 투명수지 봉 속에 씨앗을 내장시켜 건물 외장재를 쓴 2010년 중국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과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폐막식의 꽃잎 모양 성화대, 거대한 텐트형 커뮤니터 구조물이 특징인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구글 신사옥 ‘베이뷰’, 주상복합단지 안에 계곡 개념이 들어온 일본 도쿄 아자부다히 힐스 재개발 프로젝트, 사람들이 만나는 계단 통로가 독특한 구조로 중첩된 미국 뉴욕의 베슬 등의 설계 컨셉트 도판과 모형, 1000개의 기둥이 주변환경과 어우러진 거대한 화분 형태로 설계된 복합 개발 프로젝트 ‘1000 트리즈’, 19 세기 석탄 창고를 역동적 건축물로 재탄생시킨 ‘콜 드롭스 야드’,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옆에 설치된 추상조각 같은 변전소 냉각시설물 등이 모두 6개의 소주제에 따라 전시된다.
원래 올해 3~6월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먼저 28개 건축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회고 기획전으로 선보였다가 순회전으로 서울에 왔고 강원도 양양 호텔 프로젝트와 노들섬 사운드스케이프가 덧붙여졌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은 모양이나 얼개를 만드는 발상이 자유롭고 다기하다. 일상용품부터 대형 건축 단지에 이르기까지 나무와 언덕 등의 자연적 조형을 중시하는 유기적인 선형과 재료, 소재의 활용 등에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더불어 날카롭고 예리한 문명적 통찰 등을 느낄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탄환 상흔이 남아있는 옛 서울역 역사의 벽체와 마주한 공간에서 미래와 현재의 도시 상황을 고찰하고 문제의식을 드로잉과 질문지로 내어뱉는 헤더윅의 끄적거린 자취들을 마주할 수 있는 전시장 안쪽의 샘플과 스케치, 관객 참여 공간인 ‘휴머나이즈’ 등에 눈길을 둘 만하다.
복잡한 건축 어휘나 이념 대신 인간적 감성을 최우선에 놓고 일상적인 공간에 대한 궁금증과 문제의식으로 도시공간을 풀어가는 헤드윅 특유의 생각과 발상을 엿볼 수 있다. 9월6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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