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열·서예리 "현대음악은 난해하다?…친숙하게 알려드릴게요"
"장난스럽고 가벼운 공연…리게티 곡은 어이없어 웃음 터질 것"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현대음악은 비인기 장르고,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지죠. 로맨틱한 클래식과는 달라요. 저도 이런 음악회의 피해자였죠. 까다롭게 느껴지는 이 장르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게 이번 공연의 목표입니다."(지휘자 최수열)
예술의전당이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현대음악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새로 마련했다. 클래식, 현대음악, 국악 장르를 넘나드는 지휘자 최수열의 이름을 내세운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다. 공연은 오는 6일과 11월 2일 두 차례 열린다.
최수열과 이달 무대에 함께 오르는 소프라노 서예리를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서예리는 고음악과 현대음악 두 분야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어 '멀티 소프라노'라고도 불린다.
두 사람은 현대음악이 난해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관객들이 공연장에서 현대음악을 접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번 공연을 관객들이 현대음악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두 사람의 포부다.
현대음악은 정의 자체가 모호하지만, 통상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통칭한다. 근대음악, 20세기 음악, 전위음악 등으로도 불린다.
서예리는 "현대음악은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동시대의 음악"이라며 "옛날에는 음악을 화성적으로(화음을 연결해) 표현했다면, 현대음악은 그 소리 자체를 들려준다. 비발디의 '사계'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표현했다면, 현대음악은 그 시냇물의 소리를 악기로 가장 가깝게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카메라가 '찰칵'하는 소리, 문을 여닫을 때 나는 '끼익'하는 소리 이런 것들이 다 음악이 될 수 있다.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음향 효과 그런 것들도 들어보면 현대음악"이라고 말했다.
최수열은 "인간의 희로애락 사이에 있는 미세한 감정들을 건드린다는 것이 현대음악의 특징이다. 일반 클래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는 음악적 경험을 넓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관객들이 낯선 장르를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공연 시간도 1시간 정도로 짧게 잡았다.
오는 6일 공연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리게티의 오페라 '그랑 마카브르' 중 '종말의 미스터리', 현대음악의 거장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극 '병사의 이야기 모음곡', 한국 작곡가 신동훈의 '사냥꾼의 장례식'을 들려준다. 최수열은 3곡 모두 리듬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치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익살맞고, 장난스럽고, 가볍다"고 요약했다.
이 가운데 서예리가 부를 리게티 곡은 여느 클래식 공연에서도 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이 곡이 불린 오페라 자체가 블랙코미디로 풍자적인 데다가 서예리가 퇴폐적인 느낌을 주는 경찰복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서예리는 "소프라노의 기교 자체가 어려운 곡인데, 관객들은 '저런 소리를 내네'라는 반응한다. 주위에 있는 연주자들도 이상한 짓들을 한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웃게 된다"며 "의상이나 콘셉트, 음향효과 등 재밌는 요소가 많다"고 귀띔했다.
최수열은 "병사의 이야기 모음곡'은 원래 음악극이지만, 극의 내용을 몰라도 간극이 심한 현악기 2개를 붙여놓는 등 불규칙하고, 독특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어 음악적으로 재밌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사냥꾼의 장례식'은 장송행진곡이지만 슬프거나 심각하지 않다. 사냥꾼이 숲에 갔는데 사고로 죽게 되자 놀란 동물들이 인간의 장례식을 따라 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느낌이어서, 약간 춤곡 같은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최수열과 서예리는 현대음악을 공연장에 올리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최수열은 "외국에서는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프로그램에 현대음악을 넣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현대음악을 잘 안 한다. 현대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음악회는 모객이 잘 안된다는 배경도 있다"며 "하지만 동시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거기서 살아남는 것들이 계속 연주된다. 무대에 자꾸 올려야 살아남는 작품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예리 역시 "수백 년 전 곡들이 지금 클래식으로 연주되듯, 현대음악은 미래의 주된 레파토리가 될 음악들"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현대음악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들리는 대로 감상하는 것이 현대음악이라고 했다.
최수열은 "현대음악은 '기호품'이라고 생각한다. 좋고 신기하다면 계속 찾아서 듣고, 싫다면 안 들으면 된다"며 "클래식을 즐겨 듣지만, 뭔가 충족되지 않는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나 음악회를 전혀 안 와봤지만, 이번 공연을 데이트 코스로 사람이나 모두가 편하게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서예리는 "가요도 신곡이 나오면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자꾸 들으면 좋아지듯, 현대음악도 처음에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보고 재미를 느낀다면,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차를 운전하면서 현대음악을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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