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상가 샀는데 문 앞에 기둥이”…분양사는 나 몰라라

분양홍보 당시 기둥 존재 상세 설명 없어
한신공영, 1심 패소 뒤에도 항소 이어가

내부에 설치된 기둥 때문에 법적 분쟁 대상이 된 세종시 나성동 아파트 상가의 내부 모습. 한신공영 상업시설 수분양자 대책위원회 제공

윤아무개(47)씨는 2017년 12월 세종시 나성동의 한 아파트 1층 상가 한곳을 분양받았다. 분양가가 8억원이 넘었지만, 세종시 번화가와 가까운 입지 조건을 고려하면 투자금 회수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021년 8월 건물이 준공돼 분양받은 상가를 처음 눈으로 확인했을 때 윤씨는 너무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공사 기간 동안 가림막 때문에 볼 수 없었던 13평(44.17㎡)짜리 상가 출입문 바로 앞에 가로 60㎝, 세로 70㎝ 크기의 기둥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기둥은 상가 뒤쪽 중간에도 가로 85㎝, 세로 66㎝짜리가 하나 더 있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내부를 정상적 용도로 이용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기둥을 보는 순간, 가슴이 턱 막히더라고요. 분양받을 때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으니까요. 시행·시공사(한신공영)에 따져 물었지만 ‘미리 충분히 고지했으니 문제없다’고만 해요.”

내부에 기둥이 있는 상가를 분양받은 이는 윤씨뿐만이 아니었다. 160개 상가 가운데 31곳이 비슷한 상태였다. 한신공영은 분양계약 때 작성한 확인서를 ‘사전 고지’의 증거로 제시했다. 확인서에는 상가 안에 조그맣게 사각형이 그려진 평면도와 함께 “호실에 따라 내·외부 창호, 점포별 구성, 형태, 기둥의 유무(크기) 및 위치, 마감재 사양 등은 다를 수 있으며, 제반 홍보물의 면적 및 세부 내용은 인허가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계약 체결 시 반드시 확인하기 바라며 이에 대해 일체의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분양받은 뒤 윤씨처럼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계약 당시 여러 서류에 서명하라고 해서 했지만, 기둥에 대한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 설계도 안에 그려진 작은 네모가 기둥이라고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신공영 상업시설 수분양자 대책위원회가 3일 세종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윤씨가 한신공영을 상대로 분양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윤씨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상가의 분양·홍보를 담당했던 외부업체 직원들은 재판에서 “분양·홍보하면서 고객들에게 기둥의 존재를 얘기한 적 없고, 상가 내 기둥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설계도면에 있는 네모 표시가 기둥이란 사실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1심 판사는 “(문제의) 확인서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소송 제기 금지 조항’에 해당해 무효”라며 “설령 기둥에 대해 고지했다고 하더라도 매매의 목적물이 거래 통념상 기대되는 객관적 성질·성능을 결여하거나, 완공된 집합건물의 하자로 인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수분양자(분양받은 사람)는 민법에 따라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신공영은 항소했고, 최근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 중도금 ·관리비 지급명령서 ’를 보냈다 . 윤씨 등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3일 세종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절벽 끝으로 내몰린 상황 ”이라며 “한신공영은 지금이라도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 ”고 요구했다. 곧 2심 재판이 시작된다 .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