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장애학생 'e스포츠 1강' 양평 양일중·고 아이들을 아시나요
5년 전인 제12회 전국장애학생체전 e스포츠 현장에서 만났던 명장은 그날처럼 그곳에 있었다. 지난 5월 울산에서 열린 제17회 전국장애학생체전 e스포츠 경기장에서 특수교사 경력 23년차 장영민 양일고 감독을 재회했다. "내 새끼들 길거리에 떠돌게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장애학생들을 누구보다 강하게 키우는 특수교사, 특수학급, 도움반이라는 명칭 대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전환교육실'이라고 말하는 진짜 스승, 지난 10년간 전국 학교를 통틀어 e스포츠 메달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장은 마치 어제 본 듯 익숙한 모습으로 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일 방과후 오후 8시까지, 주말도 없이 매진해온 훈련이 실전에서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이번에도 양일중·고 아이들은 발군이었다. 보란 듯이 메달을 싹쓸이했다. 경기도지사상에 빛나는 양일고 최강 에이스 이도윤(18)은 피파(FIFA) 온라인, 닌텐도 wii 테니스(지체)에서 2관왕에 올랐고, 박민성(18)은 닌텐도 wii볼링(지체)에서 금메달을, 1학년 이경민(15)은 첫 출전한 닌텐도 wii 테니스(지체)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회복지사가 꿈이라는 '경기도 대표 에이스' 이도윤은 "3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고, 2관왕도 할 수 있어 기분좋다"며 활짝 웃었다. 특수교사가 꿈이라는 박민성은 "장영민 선생님과 함께 있어보니 좋아보여서"라며 진로 결정의 배경을 털어놨다. 게임회사 취업을 꿈꾸는 이경민양(15)은 "장 선생님은 내 인생을 엄청 간절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첫 대회라서 걱정했는데 선생님께서 간절하게 만들어주셔서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부문에서 박지호(양일고·닌텐도wii 볼링) 안상원(양일고) 유강석(양일중·이상 리그오브레전드)도 금메달을 따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뚫고 다시 만난 장 교사와 양일중·고 아이들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교통사고로 오른다리가 불편한 장 교사는 장애당사자로서 "장애인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과도한 배려를 줄이는 게 사랑"이라는 지론을 펼쳤다. "학교 졸업 후 60~70년을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아이들에겐 배려보다 공정한 기회를 주면 된다"고 말했다. 60여 개의 자격증 보유자인 장 교사에게 e스포츠는 아이들의 자립을 이끄는 솔루션이다. "e스포츠를 통해 목표의식과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다. 자판치는 법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여기에 파워포인트, 한글, 인터넷 검색, 그래픽 디자인, 코딩 자격증 등에 바리스타까지 7~8개 자격증을 보유한 채 졸업한다"고 했다. 장 교사는 아이들을 강하게 키운다. 거침없는 돌직구에도 아이들은 싱긋 웃는다. 세파 속에 상처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스승의 진심을 안다. 장 교사는 "장애에 대한 세상 밖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 보통 한 사업장에 2명 이상 아이들을 함께 보낸다. 자칫 회사에서 오해를 사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객관성을 확보하고, 서로 도우라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보다 세더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하면 무조건 버티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장 교사는 아이들에게 경제 조기교육도 시킨다. e스포츠 대회, 각종 공모전, 시상식 상금을 스스로 통장에 저축하게 한다. 결국 "세금 내는 국민으로 키우는 것"이 장 교사의 목표다. "아이들이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졸업생 중엔 벌써 1억 넘게 모은 제자도 있다. 최고의 바리스타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졸업생은 주말에 학교에 와 후배들에게 실습 수업을 해주기도 한다. 앞서간 선배들이 후배들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체전 현장엔 김기상 양일고 교장, 이봉섭 양일중 교장이 총출동했다. 교장 선생님의 응원에 아이들은 더욱 힘을 냈다. 양일고 김 교장은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학생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이 학생들이 세상을 살면서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주눅들거나 소외받는 일이 없길, e스포츠에서 대한민국 최고라는 그 당당함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2년 장영민 선생님이 오신 후 특수학급을 전환교육실로 명명한 지 11년째다. 현재 우리학교엔 20명의 장애학생(지적장애 16명, 지체장애 4명)이 있다. 그땐 장애학생들을 위한 교실이 한칸이었는데 지금은 단독 건물 한 층을 다쓴다. 전환교육실 학생들은 게임도 잘 하고, 커피도 잘 만들어서 선생님,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다"며 웃었다.
양일중·고는 금메달 7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 총 14개의 메달을 휩쓸었다. 경기도가 e스포츠에서 따낸 금메달 11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7개 중 절반을 따내며 e스포츠 전국 최강의 면모를 재확인했다. 경기도 e스포츠 선수단 총감독으로 나선 최선영 양일중 특수교사는 "경기도에 e스포츠는 효자 종목이다.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의 목표 의식이 또렷해지고 눈빛이 바뀐다. 그 에너지면 어디 가서든 살아 남는다. 메달 절반 이상은 늘 양일중·고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12년 전 한 특수교사의 뜨거운 열정에서 시작된 일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양일중·고가 e스포츠 메카로 떠오르면서 양평군 차원에서 새 길을 모색중이다. 현장을 함께한 김선천 양평군장애인체육회 사무국장은 "양평군청 e스포츠 장애인 실업팀 창립을 추진중이다. 229개 시군구 중 최초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양평군이 비장애인 유도, 씨름으로 유명하지만 그동안 장애인 실업팀은 없었다. 양일중고 메달리스트 아이들이 양평군청 e스포츠 실업팀에서 훈련에 매진해 국가대표가 되고, 국위를 선양하고, 운동하며 돈도 벌고, 후배들의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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