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 다음날 ‘평화’ 지운 통일정책
‘통일부 역할 변화’ 직접 요구
장관 내정자부터 대변인까지
“자유민주 질서 입각” 표현만
“평화 반영 않겠단 의도” 지적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 장차관을 교체하며 통일부 역할 변화를 지시하자 통일부가 주요 정책 방향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강조하고 나섰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에서 ‘평화적’이란 표현을 뺀 것이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통일부 장차관 교체를 계기로 논란이 된 통일부 역할에 대해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대로 헌법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수립·추진해 나가는 한편 담대한 구상에 따른 북한 비핵화와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 등을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통일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헌법에 있는 ‘평화적’이란 단어를 뺀 것은 전날 윤 대통령 발언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전날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 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극우 성향의 대북 강경파로 평가되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 내정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방점을 찍고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방안을 만들”겠다는 내정 소감을 밝혔지만, 같은 날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들어서며 기자들과 만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통일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할 뿐 아니라 ‘평화적’ 방식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에는 “평화적 통일의 사명”이 명시됐고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제66조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며, 제69조가 제시하는 대통령 취임선서 문구에도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담겨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앞세우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은 북한을 더욱 압박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핵 무력을 급격히 고도화하며 남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통일부는 남북 대화·교류·협력보다 인권 문제를 북한에 제기하는 역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며 북핵 문제 해결책으로 “체제 파괴”를 주장했던 김 내정자 지명이 이를 상징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통화에서 “앞으로 추진할 대북정책과 통일방안에 평화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 같아 굉장히 우려스럽다”면서 “어느 정부라도 당연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통일정책을 펴나가는 것이며 그 목적은 평화”라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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