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앞과 맨 뒤가 불안하다..‘투수 왕국’의 속사정[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앞뒤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는 7월 3일(한국시간)까지 시즌 41승 42패, 승률 0.494를 기록했다. 5할 미만의 승률이지만 미네소타 트윈스와 승차 없는 2위. 6개 지구 중 최약체인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특성 덕분에 가능한 순위다. 다만 최약체 지구가 언제나 그렇듯 1위만이 가을 티켓을 따낼 수 있다.
클리블랜드는 지난 10년 동안 9차례 위닝시즌을 만들어냈고 지구 우승 4번, 포스트시즌 진출 6번을 이뤄냈다. 지구의 강자인 만큼 클리블랜드는 올시즌에도 지구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물론 지금도 치열하게 1위를 다투고 있는 만큼 여전히 우승 후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승률 5할도 채 되지 않는 '민망한 1위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 것은 아니다.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타선이다. 팀 OPS 전체 26위에 그치고 있는 하위권 타선이 가장 큰 부진의 원인이다. 팀 평균자책점 전체 6위인 마운드는 여전히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마운드에도 역시 큰 불안요소가 있다.
클리블랜드 마운드의 불안요소는 '가장 믿는 곳'에 있다. 바로 에이스 셰인 비버와 뒷문을 책임지는 마무리 투수 엠마누엘 클라세다. 두 선수는 나란히 사실상 데뷔 후 최악에 가까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비버는 3일까지 17경기에 선발등판해 106이닝을 투구하며 5승 5패,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다. 부진하다고까지 볼 수는 없는 성적이다. 하지만 현재 성적은 '운'이 많이 따른 결과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비버는 올시즌 데뷔 후 최악의 공을 던지고 있다. 원래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아니지만 사이영상을 수상한 2020년 평균 속 94.1마일이던 패스트볼 구속은 지난해 시속 91.3마일까지 떨어졌고 올해도 시속 91.3마일을 유지하고 있다. 162경기 풀타임 시즌 기준으로 시속 93마일 근처에서 형성돼야 할 평균 구속이 1마일 이상 떨어진 것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부정적인 큰 변화는 탈삼진 능력이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비버는 2020시즌 탈삼진율이 무려 41.1%에 달하는 투수였다. 비버는 단축시즌 77.1이닝 동안 탈삼진을 무려 122개나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2019시즌에도 214.1이닝 동안 25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2021시즌에도 부상으로 96.2이닝 투구에 그쳤지만 탈삼진이 134개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200이닝 동안 198탈삼진을 기록하며 9이닝 당 탈삼진이 9개 이하로 떨어졌고 올해는 106이닝 동안 삼진을 85개밖에 잡아내지 못했다. 9이닝 당 탈삼진이 7.22개에 불과하다. 투수의 가장 큰 강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비버의 주요 결정구인 슬라이더, 커브의 헛스윙 유도율이 10% 가까이 떨어진 것이 결국 탈삼진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원래 압도적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닌 비버는 올시즌 강타 허용율, 허용 타구속도 모두 커리어 최악 수치를 쓰고 있다. 비버가 올시즌 허용한 타구의 평균 속도는 시속 91.4마일. 이는 리그 평균(88.4마일)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강타 허용율도 46.7%로 리그 평균(36.1%)보다 훨씬 높다. 허용한 타구 질을 가늠할 수 있는 피기대가중출루율(xwOBA)은 리그 평균(0.315)보다 훨씬 높은 0.336이다(개인 통산 0.299). '질 좋은 타구'를 무수히 허용하고 있는 만큼 비버의 기대 평균자책점은 실제 평균자책점보다 훨씬 높은 4.68에 달한다. 역시 커리어 최악이다.
마무리 클라세도 마찬가지다. 클라세는 올시즌 41경기에 등판해 39.2이닝을 투구했고 1승 5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했다. 블론세이브가 전반기를 아직 마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6개다. 24세이브는 3일까지 메이저리그 전체 공동 1위의 기록이지만 블론세이브 6개는 메이저리그 전체 불펜 투수 중 단연 최다 기록이다.
지난해 42세이브(4블론)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오른 클라세는 2021-2022시즌 2년 동안 148경기 142.1이닝을 투구하며 평균자책점 1.33을 기록한 최고의 불펜투수였다. 1998년생 어린 나이에 시속 100마일의 빠른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로서 그야말로 '철벽 마무리'의 모습을 과시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전혀 다른 흐름이다.
이제 더이상 상대 타자들은 클라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2년 동안 0.500 미만이던 피OPS는 올해 0.603까지 올랐다. 피안타율도 0.242까지 상승했다. 피안타율 0.242는 3일까지 15세이브 이상을 거둔 12명의 불펜 투수 중 2번째로 높은 기록이다(켄리 잰슨 0.257).
클라세의 주무기는 커터. 클라세는 2021시즌 평균 시속 100.2마일의 커터를 던졌고 지난해에도 커터 평균 구속이 시속 99.5마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1마일 이상 떨어져 시속 98.6마일에 그치고 있다. 구속이 떨어지니 탈삼진도 함께 줄어들었다. 지난해 9이닝 당 9.54개였던 탈삼진은 올해 8.17개로 떨어졌다.
구속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제구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9이닝 당 볼넷 허용이 1.24개에 불과했던 클라세는 올해 9이닝 당 2.50개의 볼넷을 허용하고 있다. 구속이 느려지고 제구가 불안해지니 성적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슬라이더의 제구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것이 문제. 지난해에는 슬라이더가 좀처럼 높은 곳으로 향하는 법이 없었지만 올해는 아니다. 제구가 흔들리니 타자도 속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지난해 42.7%였던 슬라이더의 헛스윙 유도율은 올해 33.7%까지 떨어졌다.
클리블랜드는 원래 마운드의 힘으로 버티는 팀이다. 올해도 마운드가 전체적으로 버텨주고 있는 것은 맞다. 피치클락 도입, 견제 제한, 시프트 제한 등 스피드업을 위해 신설한 규정들이 전적으로 투수에게 불리하게 편향된 만큼 타고투저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는 올시즌 클리블랜드 마운드는 여전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투수 왕국'의 에이스와 마무리 투수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이정도가 아니다. 비버와 클라세가 기복을 보이며 놓친 경기들을 잡았다면 클리블랜드는 여유있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28세의 비버와 25세의 클라세는 여전히 젊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노쇠화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다른 많은 투수들처럼 여러가지 새 규정들로 인한 악영향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과연 클리블랜드의 앞과 뒤를 책임지는 두 '특급 투수'들이 올시즌 다시 압도적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자료사진=왼쪽부터 셰인 비버, 엠마누엘 클라세)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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