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성공회 원로 주교가 하는 ‘모닝 루틴’
#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면 고기잡이하던 어부는 인근 항구로 대피한다. 안전하게 머물며 지친 심신을 충전시키고 쾌청한 날을 기다린다. 인생이란 바다에 사는 우리에게도 풍랑을 피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하다. 항구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삶은 강건하고 풍요로워진다.
대한성공회 윤종모 주교(74)에게 ‘항구’는 명상이다. 성공회대 교수, 부산교구장을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관구장까지 역임한 정통 크리스천이 어쩌다 명상에 심취하게 됐나?
“전세계 신앙에 다 있습니다. 기도와 예배도 명상이요, 기독교의 전통적인 영적 독서(Lectio Divana), 관상(觀想)기도, 불교의 선(禪), 사마타, 위빠사나도 모두 명상이죠.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현자나 예언자들이 광야나 사막으로 나가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도 명상입니다.”
그에게 명상은 육적으로는 건강과 마음의 평안, 영적으로는 신과 교류하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다.
# 윤 주교가 명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가슴 아픈 가족사에서 비롯됐다. 평양서 단신월남한 아버지는 종로에서 병원과 약국을 운영하는 의사였지만 어떤 연유인지 걸핏하면 집을 나가 며칠, 몇 개월씩 사라지는가 하면 집에 돌아와선 술로 날을 지새우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결국 가세는 몰락했고 가족들은 충청도, 경상도로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고 어린 윤종모에게는 너무나 외롭고 힘든 나날들이었다.
청소년기 긴 방황 끝에 연세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40세 나이에 성공회 사제가 됐다. 캐나다 토론토대로 유학가 상담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도 됐으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울증이 찾아오면 설교도, 강의도 하지 못했다. 세상을 구원하고 사람들을 위로해야 할 사제가 자기 어린 시절의 정서도 극복 못하고 좌절하고 있다니….
그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캐나다 에드몬톤에 있는 앨버타대학의 계절대학원에서 영성상담을 공부하였고, 이를 위해 매년 1월 방학때면 캐나다로 날아가 현지 성공회 수녀원에서 지냈다.
그에게 위로와 영적인 각성을 준 것은 도서관도, 교회도 아니고 수녀원 구석 두서너평 되는 명상방(Meditation Room)이었다. 그곳에서 몇시간씩 앉아 있다 보면 신체적으로 두통과 가슴이 뛰는 증상도 사라지고 정신적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하 20°가 넘는 강추위, 통유리를 통해 눈이 하얗게 쌓인 풍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묵상하던 중 불현듯 마음이 밝아지고 지극한 기쁨(bliss)이 찾아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고요, 평화, 관대함…. 그때 비로소 저를 평생 괴롭힌 우울, 시름, 분노 등에서 벗어났고,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를 연민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일종의 신비체험이랄까. 비록 형상이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왔다 간 것이다.
이후 그는 마음의 평안과 신념을 갖고 살아갈 수 있었다. 늦깎이 신부였지만 학자와 목회자의 두 길을 잘 걸어가 2007년 대한성공회 수장(首長)인 관구장에 오를 수 있었다.
# 이제 은퇴한 지도 10년이 지났고 항상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로 여기고 살아가는 노(老) 성직자에게는 수십년간 계속된 ‘아침 일상(morning routine)’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 다시 눈을 떴네…감사합니다”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누운 채로 기지개와 스트레칭을 5~10회 반복한다.
천장을 보고 바로 누운 다음 심호흡을 2~5분 정도한다.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이 집중된다. 자신이 작성해둔 명상 카드 중 생각나는 말씀 하나를 마음 속에 되뇌인다.
“모든 지식에 능통하고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고린도전서 13장2절”
이윽고 거실로 나간다. 아내가 먼저 나와 있다면 ‘좋은 아침!’이라고 약간 높은 톤으로 명랑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베란다 창문 앞에 가서 자신이 이름 붙여준 ‘갑순이’, ‘헬렌’, ‘미카엘’, ‘철수’ 등 나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잠깐 정서적 교류를 한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 지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자비명상’ 혹은 ‘사랑의 친절명상(loving-kindness meditation)’을 한뒤 보통 다음과 같은 말로 아침명상을 끝낸다.
“나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 해 할 것이다. 그러나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神)이 부르시면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오늘을 살 것이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해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떠나기에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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