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정신'과 멀어져 공룡 멸종 따라가는 민주당 [진보, 민주당을 말하다]

2023. 7. 4.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민주당은 지금 총체적 위기다. 진보정당 특유의 강점은 사라지고, 무능과 무책임 도덕불감 강성팬덤의 중병에 빠졌다는 평가다. '민주당, 무엇이 문제인지' 진보인사 4인의 진단과 해법을 연재한다.

<1> 김대중·노무현 정신과 민주당

민주당이 각성하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넓여가던 2010년대에는 김대중·노무현 정신이 빛을 내고 있었다. 2011년 8월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흉상 제막식에서 당시 손학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엘리티즘·진영논리의 운동권마인드
과학적 진단과 국민 상식·양심 무시
합리적 대안, 당내 민주화 복원해야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 충격을 준 사건이 셋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9년 노무현 서거, 2017년 박근혜 탄핵이 그것이다. 외환위기로 오랜 주류집단인 보수당이 심판받고 민주당은 두 번 연속 집권 기회를 얻었다. 민주당이 집권당의 면모를 갖췄다기보다는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두 거인 덕분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로 완전히 무너진 줄 알았던 민주당이 다시 일어나 성공적인 야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건 노무현 서거로 가능했다. 젊은층이 민주당 지지자로 계속 수혈되면서 민주당은 2010년대에 유권자 지지에 있어서 다수당이 되어 갔다.

2017년 민주당의 재집권은 박근혜의 탄핵으로 가능했다. 민주당은 대선, 지방선거, 총선에서 초대박 승리를 거뒀다. 박근혜의 탄핵이 보수세력의 궤멸로 이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불과 4년 만에 민주당은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참패에 이어 정권마저 내줬다. 도대체 민주당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민주당이 스스로의 발목에 걸려 넘어지면서 서울의 민심이 급변했다. 확연히 달라진 2018년과 2022년의 서울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

문재인 정부는 실용적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빈부격차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회한으로 정책에서 확실하게 좌클릭하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민주당 정부를 공약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에 학생 혹은 시민운동권 출신 민주당 인사를 대거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과보다 공이 더 크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운동권마인드가 지배한 일부 정부 부처와 민주당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운동권마인드란 과거 경력과도 관련이 있지만, 몇 가지 특징으로 규정된다.

젊은 시절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분들에 대해 나는 무한한 존경심과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다. 다만, 화염병 들고 불법시위로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쟁취한 운동권의 성공신화 뒷면에는 적대적 세계관, 엘리티즘, 진영논리의 폐쇄성도 공존한다.

운동권마인드는 자신은 도덕적으로 우월하기에 상대는 악이라는 적대적 세계관을 지닌다. 대결정치가 20세기엔 유용한 면도 있었지만, 복잡한 21세기에 더는 통하지 않는다. 기업가와 노동자의 이익이 적대적이면 기업이 생존할 수 없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익도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국민은 여야가 협력해 좋은 정책을 구사하길 기대하지만 운동권마인드는 정책 비판조차 배신이라 낙인찍는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민심이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2021년 여론조사 결과. 그래픽=김문중기자

민주당엔 자신들이 더 잘났다는 엘리티즘으로 전문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그들도 한때는 명문대생이었지만 세상이 변한 만큼 지속적인 학습을 해왔는지 의문이다. 과학적 진단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조차 이념과 단순 논리를 앞세운다. 지난 대선에서 20~30대 남성이 왜 2번을 찍었는지 겸허하게 그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이찍남'이라며 비하한다.

전문가적 도덕성을 몸에 익힌 적 없는 운동권의 진영논리는 보편적인 국민 상식과 양심을 무시하고, 우리 편이면 무조건 옳다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또 상대는 우리보다 나쁜데 왜 우리만 비난하냐며 항의한다. 보수는 인간의 탐욕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진보는 개인의 탐욕을 연대와 공동선으로 승화시키는 이상을 추구하기에 국민의 기대가 높은 만큼 평가도 가혹한 게 당연하다. 진보주의자의 진정성은 실천으로만 인정받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보수세력이 궤멸되자 민주당이 싸워야 할 적도 사라졌다. 보수, 진보 통틀어 역대 어떤 정부도 그렇게 좋은 집권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민주당은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언론과 검찰을 새로운 적으로 만들어, 남 탓을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탄핵과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로 과도한 효용을 맛본 권리당원은 혐오와 증오의 흑백논리로 당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포퓰리즘 정당을 만들었다. 강성당원들은 김대중, 노무현은 신사적이어서 패했다며 복수와 처단을 외치며 당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출당을 청원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 사라진 현재의 민주당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염치와 상식, 합리적이고 디테일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 그리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계파 간 화합할 수 있는 당내 민주주의의 복원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