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증가" "학원 EBS인강 실종" 수능 수험생 혼돈
킬러 대신 '신유형' 등장 가능성도 변수
'카르텔 전쟁'에 사교육시장도 급변
"가장 말이 많았던 국어가 제일 걱정된다. 비문학 지문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안 된다."
3일 서울 노량진 재수학원에서 만난 정모(19)씨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 상황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대통령이 시동을 건 '공정수능'으로의 출제 방향 전환이 전날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올해 수능 시행 세부계획 발표로 기정사실화했지만, 수험생들의 혼란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킬러 문항 대신 변별력 확보를 책임질 새 유형의 문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난이도 하락을 기대하며 수능에 대거 응시할 'N수생'(졸업생)들과 어떻게 경쟁해야 할지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9월 모평 지원 N수생, 작년보다 늘었다"
재수생 증가 조짐은 수험생들이 이미 체감하는 바다. 노량진 재수학원에 다니는 노모(19)씨는 "정부 발표 이후 대학에 다니다가 '반수'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위권 N수생이 많아지고 시험 난이도가 쉬워지면 수능은 실수 하나가 운명을 결정짓는 '한끗 승부'가 되기 십상이다. 노씨는 "킬러 문항 배제는 맞는 방향이지만 정부가 올해 1~2월쯤 미리 발표를 했어야 했다"며 원망을 드러냈다.
학교 현장에선 수능의 마지막 가늠자인 9월 모의평가에 응시하려는 N수생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의 3학년 부장 교사는 "졸업생들이 모교를 통해 모의평가 응시 등록을 하고 있는데 그 수가 예년보다 늘어났다"며 "듣기로는 다른 학교 상황도 비슷하던데, 킬러 문항 배제로 수능이 쉬워질 거란 예측이 나오자 시험을 다시 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재수생 비중은 2022학년도 문·이과 통합수능 실시 이후로 이과생의 '문과 침공'과 같은 예상치 못한 현상과 맞물려 계속 증가해왔다. 지난 6월 모의평가만 봐도 지원자 중 졸업생 비율이 19%로 역대 6월 평가 중 가장 높았다. 여기에 킬러 문항 배제 논란까지 겹치면서 올해 본수능에서 N수생 비율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할 거란 예측이 나온다.
수능이 다섯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전에 없던 유형의 고난도 문제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란 점도 부담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수학교사는 "출제자들이 많이 바뀌면서 문제 유형도 바뀔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EBS 교재 문제 하나를 보더라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바뀐다고 생각해 보라고 지도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들으려던 인강이 갑자기 사라졌다" 수험생 커뮤니티도 '시끌'
정부의 '사교육과의 전쟁'으로 학원 교육이 움츠러들고 있는 현실도 수험생 혼란을 더하고 있다. 전날 한 입시커뮤니티에는 메가스터디의 과학탐구 강사가 인터넷상에 개설한 EBS교재 분석 강의가 사라졌다고 항의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해당 강의는 수능 문제와 연계해 EBS교재의 고난도 문항을 분석하는 내용이다. 메가스터디는 "무료 특강이었고 단발성으로 1~2주 진행되는 강좌였다"고 설명했지만, 수험생 사이에서는 교육당국의 대형 입시학원 단속과 무관치 않다는 뒷말이 나온다. 앞서 EBS는 정부 사교육 경감대책이 나온 직후인 지난달 26일 "EBS 수능 연계 교재를 변형해 불법으로 유통하고 있는 사교육업체에 대한 사례를 제보받아 교육당국과 연계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변형 문항'은 EBS교재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내년 2월까지 제보를 받겠다는 게 EBS의 방침이다.
평가원이 수능 문항과 EBS교재의 연계를 강조한 가운데 학원가에서 관련 강의가 폐쇄되는 일까지 겹치자, 입시 커뮤니티에선 "EBS교재만 달달 외우라는 건가"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EBS 관계자는 "수능 교재가 나오면 대부분 학원에서 변형 교재를 만들어 비교적 저렴하게 개설한 강의에 끼워팔고 있다"며 "EBS교재를 무료로 따서 마음대로 쓰면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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