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지만 이념 편향엔 “No”… 美 막내 대법관 화제
미국 대학 입시의 근간을 이뤄온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이 지난달 29일 대법원 위헌 결정으로 폐기된 가운데, 미국 사회는 판결 못지않게 이번 심리에 참여한 법관에게 주목하고 있다. 아홉 대법관 중 가장 늦게 임명된 ‘신출내기’이자 미 대법원 233년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53)이다.
지난해 초 진보 대법관이자 최고령(당시 83세)이었던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이 은퇴 의사를 밝혔을 때부터 잭슨은 일찌감치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흑인 여성 대법관 지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곧바로 공약을 지키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잭슨은 취임 후 법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선배 대법관들의 과묵함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잭슨은 변론 중 발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보다 한 변론당 평균 600단어 이상 더 많이 말했다. 잭슨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한 토론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을 정도로 ‘말싸움’에 타고난 법조인으로 알려져 있다. 멀리사 머리(Melissa Murray) 뉴욕대 법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바이든 대통령은 ‘흑인 여성 대법관’에 비중을 뒀을지 모르지만, 잭슨은 그 자체로 준비된 대법관 후보였다”고 했다.
잭슨은 민주당 행정부에서 지명됐기 때문에 진보 판사로 분류되지만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의 동물복지법 위헌 심리다. 밀폐된 공간에서 사육된 돼지로 만든 돼지고기 제품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동물복지법과 이를 반대하며 위헌소송을 낸 미국 양돈업자들이 맞붙은 재판은 5대4로 합헌 결정이 났다. 그런데 잭슨은 다른 두 진보 대법관과 달리 보수 성향 대법관 3명과 함께 “과도한 간섭”이라는 취지로 양돈업자 편에 섰다.
일반적으로 진보 성향 법관들은 소수 의견 편에 선다는 통념과 달리 잭슨은 지금까지 전체 사건 중 약 84%의 사건에서 다수 의견에 섰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번 재판 최종 심리에서 대법원 최고참(1991년 임명)이자 보수 성향 흑인 대법관인 클래런스 토머스(75)와 날카롭게 대립한 장면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토머스는 잭슨을 겨냥해 “잭슨 대법관은 우리나라가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사회이며 노예제가 아직도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작심 비판을 했다. 잭슨은 그 자리에서 받아치지 않는 대신 서면 의견서에서 토머스의 실명을 세 차례 언급하며 “오늘 판결은 비극적”이라고 개탄했다.
한편 대법 판결 이후 ABC방송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2%가 소수계 우대 정책을 폐기한 대법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이 현안을 진보와 보수와 대립하는 이념 문제로 인식하는 미국인이 많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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