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BIFF 재비상, 영화인 역량에 달렸다

강필희 기자 2023. 7.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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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수뇌부 공백 사태에 이사회는 해결 능력 의심받아
시스템 정비·세대교체 숙제 속 영화만 생각했던 초심 찾아야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칸·베를린·베니스영화제처럼 100년을 바라보는 영화제가 될 수 있을까. 최근 2개월 간의 혼란을 접하면서 솔직히 드는 의문이다. 영화제 운영위원장 신설 논란에서 비롯된 BIFF 사태는 이제 수뇌부 집단 공백으로 비화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지난달 26일 신임 운영위원장 해촉안건 논의를 위한 이사회와 임시총회 와중에 중도사퇴를 선언했고, 사흘 뒤인 29일엔 오석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운영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국내외 영화영상 콘텐츠 판매와 투자상담 시장인 ACFM은 의미나 비중이 본 행사 못지 않다. 지금 BIFF엔 영화제를 대표하는 이사장도, 영화제를 총괄 실행할 집행위원장도, 마켓 위원장도 없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란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이 이사장과 오 위원장은 김동호 김지석 전양준 박광수가 떠난 영화제에 남아 있던 창립 멤버다. 공도 과도 있겠지만 자신들도 이런 뒷모습을 남기길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이사장은 이사회 참석도 하지 않은 채 문자로 이사들에게 사임을 통보했다. 오 위원장도 직원용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린 게 전부다. 두 사람 모두 책임의식에 따른 결정이라면 이사회와 임시총회에 직접 나서 진의를 설명하고 백의종군이라도 하겠다는 뜻을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자책보다는 원망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누군지 모를 ‘외부 세력’을 지목하며 ‘악의적인 공격이자 흔들기’라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억측을 낳을 소지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당연히 “영화제를 인질로 부산 시민을 협박하나” 하는 말이 나온다.

수뇌부가 없으면 공백을 메우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할 책임과 권한이 이사회와 집행위원회에 있지만, 이들의 행보도 설명이 안 되거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지난달 26일 임시총회는 당초 수석프로그래머가 겸직하는 집행위원장 대행체제의 근거 등을 마련하는 자리였으나, 난데없이 예고에 없던 운영위원장직 존치안까지 의결됐기 때문이다. 자리는 그대로 둔 채 조종국이란 사람만 날린 셈이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란 비판을 거부하는 고집인가, 아니면 정당성을 재추인해 누군가의 복귀 길을 터놓기 위한 또 다른 꼼수인가. BIFF 이사진 중 이사장 고문 감사 당연직을 제외한 11명 가운데 영화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인사는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현재 이사회는 집행위와 함께 이 이사장의 복귀를 설득 중이라고 한다. 이런 이사회가 꾸리는 혁신위원회가 얼마나 중립적이며 객관적일지 의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BIFF는 척박한 부산 땅에 뿌려진 문화의 씨앗이라는 상징성만 있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 생활이 예사였던 영화인에게 주어진, 연간 150억 원 이상 예산이 투입되는 탄탄한 직장이기도 하다. 행정이나 회계에 대한 전문적인 마인드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제가 막대한 세금을 쓰는 조직으로 커지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법적 지위는 민간단체여도 공공에 준하는 성격과 규모에 맞게 투명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영화제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후임자 육성도 진작에 마쳤어야 했다. 지금쯤이면 제2, 제3의 김동호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시스템 정비를 등한시했고 세대교체에도 사실상 실패했다. 그 결과가 사유화 논란과 내분에 시달리느라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어진 현재 상황이다.

새로 꾸려지는 혁신위에 들어가기 위해 특정인이 로비를 한다거나, 들으면 헛웃음이 나는 수준의 인사가 이사장직을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말 BIFF가 이렇게 망가져도 되나 싶을 정도다.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채 유능한 후임 이사장과 집행위원장감을 찾고 세금을 허투루 쓴다는 의심에서 벗어나도록 영화제 조직을 바로 세우는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영화제 시작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오죽하면 일부를 고치는 개혁보다 전부를 뒤집어 엎는 혁명이 쉽다는 말이 있겠는가. 영화제의 핵심은 영화인일 수밖에 없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영화인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어쩌면 그들의 손에 영화제 운명이 달려 있다. 영화인의 역량이 그야말로 시험대에 올랐다.


BIFF를 만든 여러 신화적 에피소드 중 한 토막을 상기해 본다. 제1회 영화제가 대성공을 거둔 다음해인 199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제2회 행사가 개막했을 때다. 당시 유력 주자였던 김대중 이회창 진영에선 후보를 남포동 BIFF 광장에 세우려고 온갖 압력과 로비를 벌였다. 그러나 외풍이든 사적 인연이든 전부 거부하는 영화제 측의 고집에 결국 누구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련하리만큼 영화 밖에 모르던 영화인이 BIFF를 가장 높이 비상시켰다는 기억은 지금 되새겨야 할 제일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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