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6] 소년과 예수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소년과 길을 걸었다. 조만간 미국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거리에는 확성기와 군중이 있었다. 정당이 주도하는 시위였다. ‘증오 돌림병’ 경연장인 정당 플래카드는 선거 기간 외에는 금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만 할까 싶다. 소년이 물었다. “선생님. 저기, 뭐 하는 겁니까?” “정치 데모다.” 소년이 또 물었다.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거야. 총칼로 안 죽이는 대신.” “누구를 죽이려고 하나요?” “인간을.”
이런 시놉시스를 써놓았었다. ‘한 동네에 여당 야당 지역구 사무실이 마주 보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과 야당 당협위원장은 어릴 적 친구 사이. 장르는 시트콤(Situation Comedy).’ 사실 이런 작품은 이미 있다. 조반니 과레스키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포강 유역 마을이 배경이다. 어릴 적 친구였던 성당 신부 돈 카밀로와 자동차 수리공이자 공산주의자 읍장 페포네는 평소 정치적 분쟁에 휩싸이지만 마을의 이익과 위기 앞에서는 의기투합한다. 이 둘 외에 주인공이 하나 더 있는데, ‘목소리’로 존재하는 예수님이다. ‘인간의 양심’을 뜻하는 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돈 카밀로와 페포네는 증오를 유머(humour)로 승화시키며 공존한다. 사실 페포네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착각’하는 순박한 사람일 뿐이다.
차우셰스쿠 공산 치하 정치범 감옥에 14년간 갇혀 있었던 목사 리처드 범브란트의 ‘하나님의 지하 운동’에는 다음 같은 회고가 있다. ‘루마니아에 진주한 소련 군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그들은 징집되기 전 러시아의 농부였다. 누군가가 자연을 다스린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신론자이게끔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기에 자신들이 무신론자인 줄 믿고 있었을 뿐이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독교 신자라고 착각하듯이.’
나는 내 시놉시스를 포기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 충돌이 휴먼드라마가 되기에는 현실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제도’(democracy)로 번역해야 맞는다. 민주의 신격화가 ‘가짜 민주유공자’와 ‘환각 민주화세대’를 만들고 인민민주주의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자의 가면을 밀매(密賣)한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믿듯 민주제도의 허점을 경계해야 ‘모든 정치인’을 의심하는 자유 국민이 가능하다. 세상의 대부분이 ‘쇼’라는 아픈 사실을 알게 될 즈음 소년은 소설가가 되어 있을까? 한국 정치처럼 소설로도 못 쓰는 현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정치가 썩었다고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교육과 종교마저 정치 때문에 타락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천주교 신부가 공개적으로 살인을 주술(呪術)하는 사회가 여기다. 소년의 이 목소리가 우리에게서 떠나버린 예수처럼 느껴진다. “누구를 죽이려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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