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공명하는 생명과 에너지

경기일보 2023. 7.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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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독립 큐레이터

뜨거운 여름 7월을 상상하면 ‘하늘색’, ‘하얀색’처럼 자연의 색을 떠올린다. 지나치게 뜨거운 계절에도 매해 여름은 특별하다. 특히 뉴욕은 그렇다. 넘치는 에너지의 향연과 함께 관광객들이 수많은 설렘으로 뒤섞이는 이 도시. 거대한 도시 속에서 발견되는 색은 전쟁과도 같고 인상파 화가의 팔레트처럼 복잡하다. 사계절 모두를 흡수하고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이는 이 도시에 색의 마지막은 흰색과도 같다. 변화하는 색채 에너지가 보존된 상태로 1년을 머금고 새로운 색이 탄생한다. 

뒤섞이는 사람들 속에서 거대한 ‘숯 덩어리’가 뉴욕 중앙 심장부 록펠러센터에서 우두커니 자리를 잡고 있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쌓인 이 거대한 숯 조각은 비상하는 생명처럼 보인다. 뉴욕 도심 초고층 빌딩 사이, 5번가 6번가 사이에 자리잡은 록펠러센터에서 숯의 화가로 유명한 이배 작가의 ‘불로부터(Issu du Feu)’가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한국 작가 최초로 록펠러센터의 채널 가든에 숯을 높게 쌓아 올린 거대한 조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압도적인 크기의 흑색의 숯 덩어리는 위엄 있고 차분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한국 문화와 전통을 환기시키는 숯의 에너지는 뉴욕의 불꽃으로 쏟아 내며 다양한 울림의 색을 머금는다. 마치 인간 본연의 모습이 저마다 다른 빛으로 반사하듯이. 한여름 뉴욕 5번가의 거리는 생명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숯은 ‘신선한 힘’이란 뜻이 있는 순수 우리말이다. 숯 조각들은 어떤 존재로도 변할 수 있도록 보존된 가능성을 가지며 결국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의 에너지 그 자체다. 작가의 한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숯은 단지 검은색이 아닌 수백 가지의 색상을 가지고 있다. 차가운 흑색, 뜨거운 흑색, 회색빛이 도는 흑색, 금색처럼 빛이 나는 흑색. 동양화의 다채로운 묵색처럼 다양한 의미와 뉘앙스를 풍기는, 속을 알 수 없지만 그 흑색 안에 현실적인 생명이 깃들어 있다. 나무가 타고 남겨진 숯은 불이 붙으면 다시 살아난다. 에너지로 가득 찬 물질이다. 단순한 조형에서 나오는 굵직한 곡면으로 주위의 에너지를 모아 성스러운 빛을 뿜어낸다. 평화와 희망이 담긴 이 숯에서 우리는 도시의 따뜻함을 느낀다.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거대한 숯 조각을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슬픔, 희망, 평화, 전쟁 등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개념을 수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이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불편한 수분을 머금은, 도시 속 수분을 태워 모두 흡수하기를. 인간을 순수하게 만드는 급진적인 생각들. 즉 초월, 정화, 필멸과 불멸 사이, 마침내 부활을 불러일으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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