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어느 기업 회장의 '통큰 기부' 보도에 박수 칠 수 없는 이유
미디어오늘 1408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사기업 회장이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건 뉴스일까. 그 기업 회장이 특정 언론의 대주주라면 해당 소식은 꽤 비중있는 뉴스가 될 수 있다. 자본 권력이 언론을 갖고 있을 때 나타나는 문제다. 한국언론 현실에서 워낙 흔하게 벌어지는 내용이라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진짜 문제다.
지난달 29일 헤럴드경제는 28면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 전남대서 명예경영학박사 받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톱으로 배치했다. 기사는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공헌에 앞장선 공로로 전남대가 정 회장에게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이어 정 회장이 역임한 지역 사회 단체장 활동을 나열하고 중흥건설의 민간공동주택 이름도 나온다. 회장의 동정을 포함해 중흥건설 브랜드 이름까지 톡톡히 알린 셈이다. 헤럴드경제 대주주는 중흥토건(주)이다.
지난달 17일 헤럴드경제는 <낮 최고기온 34도 폭염 특보에 전국 해변·계속 피서객 발길>이라는 제목으로 매년 여름이면 나올법한 기사를 보도했는데 특이한 대목이 나온다. “전남 여수 ○○○ 워터파크에는 지난 주말보다 3배 가까이 많은 1500여명이 찾았고 나주 ○○골드스파워터락에도 1800여명이 방문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휴양시설은 중흥그룹 계열사다.
고향 지역민에게 억대 현금을 지급하면서 '통큰 결정' '쾌척' '선행'이라는 키워드로 보도가 쏟아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해당 소식은 종합일간지 보도로 처음 알려진 뒤 종합편성채널과 라디오에서도 크게 다뤄졌다. 내용은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 죽동마을에서 태어나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낸 이 회장이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생 80여 명에게 최대 1억 원씩 전달했고, 현재까지 나눠준 액수가 14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해당 보도는 제주지역 한라일보 보도로도 이어졌다. 한라일보 대주주는 부영그룹이다. 지난 3일 한라일보는 이중근 회장의 국내외 사회공헌 활동 내용을 종합해 보도했다. 이 회장의 선행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내용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 회장은 부영그룹에서 역대 가장 많이 배당금을 배정받아 논란에 휩싸였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22억 원 배당금을 받아갔는데 최근 2년 사이 받아간 배당금이 3000억 원을 상회했다. 급감한 그룹매출과 영업이익, 수천억 원의 영업손실 적자 상태와 비교해 이 회장 배당금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세 승계 작업 시 증여세를 대비해 현금 자금을 쌓고 있다는 분석이 오갔다.
특히 이 회장은 4300억 원 규모의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돼 구속 수감된 뒤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지만 현재 5년 취업제한 규제를 받고 있다. '고향 골든벨'을 울렸다는 억대 쾌척 보도 이면엔 이중근 회장의 이미지를 제고시켜 경영권을 되찾아와야만 하는 상황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해당 뉴스에 '이중근 회장이 이룩한 부의 일부분이 임차인들의 피눈물이라는 걸 알까'라는 반응도 나온다. 부영은 임대아파트 분양전환 과정에서 분양가를 불법으로 높여 부당 이득을 취해 임차인에게 피해를 준 내용으로 소송 중이다. 임차인 입장에서 이 회장의 쾌척은 기만이다.
언론의 대주주 동정 보도를 '어쩌겠나'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넘어가면 이렇듯 자본 권력이 원하는 창으로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언론계에서 강하게 요구 중인 신문법 개정안은 자본 권력의 언론 활용 폭주를 막을 장치가 마련돼 있다. 편집규약과 편집위원회 설치를 강제해 사주의 편집권 침해를 막게 하고 신문사를 등록, 양도, 합병할 때 편집 독립성 보장에 대한 사항을 담은 편집제작운영계획서를 제출하게 했다. 언론을 언론답게 할 수 있는, 즉 자본 권력에 휘둘리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 신문법 개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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