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자르고, 물세례… 유신과 통념에 맞섰던 실험미술[미술을 읽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2023. 7. 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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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이건용 작가의 ‘신체항’(1971년). 나무를 뽑아 흙더미 위에 올려 놓는 실험미술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진섭 미술평론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은 대중의 평균적인 시각에서 보면 한마디로 ‘미친’ 전시다. 전시가 미쳤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이 그렇다는 말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멀쩡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 두부모처럼 생긴 거대한 흙더미 위에 올려 놓질 않나(이건용 ‘신체항’·1971년), 붙들어 맨 닭이 흰 석고 가루를 사방에 헤집어 놓는(이강소 ‘무제 75031’·1975년) 등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나간 짓거리’만 하고 앉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실험미술’이란 이름으로!

미술에서 ‘실험’이란 과연 그런 것인가? 그렇다.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새로움을 찾는 게 바로 미술에서의 ‘실험’인 것이다. 그래서 ‘실험미술’이라고 부른다. 전위미술(avant-garde art)과 동의어로 통하는 실험미술은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에 반(反)하고, 기성의 제도에 도전하며, 사물과 사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꿔 놓는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은 전후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미증유의 격변을 야기한 제3·4공화국 시대의 미술을 다룬다. 이른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으로 통칭되는 격동기를 산 전위 예술가들이 뱉어낸 의식의 분비물이 현재 우리가 보는 작품들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지금으로부터 50, 60년 전에 벌어진 미술판의 숱한 실험적 사건들이 스산하면서도 짙은 회색빛 장막을 걷고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서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중이다. 입속에서 웅얼대는 듯, 도시 알아듣기 힘든 난해한 형식과 내용은, 그러나 구체적인 물질과 가시적인 이미지로 돼 있어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과거를 추체험하기에 충분하다. 단, 진정으로 ‘미치지 않은’ 관객이라면 말이다.

성능경의 ‘신문읽기’(1976년). 신문을 읽다가 면도칼로 오려내는 행위를 반복하며 당시 군부통치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난해한 개념성 때문에 정치적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성능경의 ‘신문읽기’(1976년)는 군부통치가 삼엄하던 시기에 특유의 난해성으로 인해 살아남은 작품이다. 책상 위에 한 장의 신문지를 펼쳐 놓고 기사를 읽은 뒤 면도칼로 오려내는 행위를 반복한 결과 신문지는 흰 여백만 앙상하게 남았다. 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성능경의 이 신문을 읽고 오리는 행위는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지닌 난해한 개념성 때문에 정치적 검열을 피할 수 있었던 역설을 보여준다.

황사바람처럼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던 숨 막히는 정치적 상황하에 사회의 일각에서 벌어진 이 ‘사건(event)’은 실험미술이 지닌 교묘한 책략의 외피를 보여준다. 언젠가 성능경은 개념미술에 빠져 있던 당시의 심경을 가리켜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의 이러한 심정은 그로부터 한참 뒤 민주사회가 도래하자 자신이야말로 과거 독재 치하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거나, 자신의 작품이 저항의 산물이라고 호도한 일부 실험작가들의 태도와는 상반된 것이다. 여기서 후자는 자신의 예술 언어가 사회적 억압에 대해 무능할 때 느낀 마음의 빚이 ‘선택된 소수(selected minority)’로서 전위주의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다가 터져 나온 심리적 전도(顚倒) 현상처럼 보인다. 즉, 스스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과한 일종의 심리적 보상인 것이다.

정강자 ‘키스미’(1967년 작품, 2001년 재제작). 과장된 신체 부위를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뉴시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중에서 사회적 비판과 풍자를 통해 1980년대 민중미술 작가들에 의한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맹아(萌芽)가 된 사건(Happening)으로는 ‘가두시위’와 ‘한강변의 타살’을 들 수 있다. 전자는 1967년 12월 11일, 당시 중앙공보관 전시실에서 열린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의 첫날에 ‘무’와 ‘신전’ 동인들이 벌인 사회적 시위이며, 후자는 이듬해인 1968년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이 제2한강교 밑에서 행한 해프닝이었다. 이들은 국전을 중심으로 한 화단 권력에 대해 피켓과 어깨띠, 물세례 등 다양한 방법과 형식을 통해 풍자와 비판을 가했다.

이번 전시는 모두 여섯 개의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①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 ②도심 속, 1/24초의 의미 ③전위의 깃발 아래-AG ④‘거꾸로’ 전통 ⑤‘나’와 논리의 세계: ST ⑥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 등이다. 전시기획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강수정 큐레이터와 구겐하임미술관의 안휘경 큐레이터는 이 여섯 개의 소주제를 렌즈 삼아 1960, 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전개를 관찰했다. 거시적이기보다는 미시적이며, 추상적이기보다 구체적인 접근법이다. 즉, 순서에 따라 ‘무’ ‘신전’ ‘오리진’ 등에 의한 한국청년작가연립전, 김구림, AG, 이승택, 이건용과 ST, 대구현대미술제와 파리비엔날레라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법론을 채택한 것이다.

물론 개인이나 그룹을 통해 특정한 시기의 미술을 조명하는 데 따르는 위험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사(戰史)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특정한 소수의 용장(勇將)들을 통해 전쟁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가능하듯이, 거장들을 통해 일정 시기의 미술사를 해석하는 방법도 때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들의 활동과 작품의 내용, 그리고 사회와 시대적 배경에 대해 내국인보다는 아무래도 선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해외의 관람객들 눈에 이 전시가 어떻게 비칠지 자못 궁금하다. 앞으로 이어질 구겐하임미술관과 해머미술관의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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