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칼럼] 산업화 설계자들 공로 잊지 말아야
1960∼1970년대 경제 발전에 혼신
‘한강의 기적’ 성취 불구 덜 평가돼
민주화 유공자는 ‘셀프특혜법’까지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의 길을 질주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의 롤모델이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허나 1960~1970년대 산업화 설계자들의 공로는 덜 평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화 공로 평가와 대비된다.
박정희 대통령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재무부·상공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 KIST 연구원들의 고군분투는 하나같이 각본 없는 드라마다. KIST 초대 소장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재미 한국과학자들에게 “나라를 먹여 살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인재 유치에 힘을 쏟았다. 연봉이 4분의 1로 줄었지만 상당수가 귀국길에 올랐다.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애국심이다.
철강, 조선, 자동차산업을 기획·추진한 건 상공부 중공업 차관보를 지낸 김재관 박사다. 포스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1962년 독일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유학생들과의 만남에서 경제발전 조언을 구하자 그는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 방안’ 보고서를 전달한다. 박 대통령이 얼마나 감동했을까. 1964년 해외 유치 1호 과학자로 그를 초빙한 연유다.
‘수입대체냐, 수출주도냐’, ‘경공업이냐, 중화학공업이냐’. 한국 산업화 여정에는 큰 선택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1964년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64∼1967년)이 수출주도 전략의 시동을 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가 천거한 박충훈 상공부 장관과 김정렴 차관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전략 변경은 주효해 박 장관은 그해 11월 수출 1억달러 달성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장(1969∼1978년)이 된 김정렴은 “박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발전 과정을 잘 알았기에 산업화 전략의 전환이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만일 수입대체 전략을 고수했다면? 지금도 한국은 후진국 대열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들의 저성장을 봐도 그렇다. 문제는 경공업 제품만으로는 수출 증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1973년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 전환한다. 중화학공업의 불씨를 지핀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69~1972년)의 역할이 컸다. ‘내 과외선생’으로 불릴 만큼 박 대통령의 신임이 컸던 그다.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74∼1978년)은 ‘한강의 기적’의 일등공신이다. 1,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시절에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또 철저한 수출 위주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통해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하는 데 앞장선다.
1968년 조선·철강·화학·기계·전자분야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한국 조선업의 아버지’로 불린 신동식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1968∼1969년), 박 대통령이 “국보”라고 극찬한 오원철 청와대 경제수석(1971~1979년)의 공로도 기억돼야 한다. 오 수석은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의 발전계획을 추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는데 국산무기 개발사업은 K방산의 밑돌이 됐다.
세계 최빈국을 산업화의 궤도에 올려놓으려 이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은 순교자들의 그것에 비견된다. 선진국의 풍요를 누리는 우리 국민은 산업화 설계자들의 헌신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은 국민소득 4만·5만달러 시대를 속히 열어야 한다. 정책 당국자들이 산업화 역사를 되새겨 미래를 열어갈 성장전략과 노하우, 지혜를 얻길 바란다.
김환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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