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이민자 차별…프랑스 ‘분노의 뇌관’ 폭발했다
당시에도 격렬한 시위 불러 프랑스 정부가 차별 시정 약속
경찰의 폭력에 잇단 사망…“공존보다 통합에 치중 문제”
‘나엘’로 알려진 북아프리카계 10대 프랑스 청소년이 교통 단속을 피하려다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으로 프랑스 전역이 격렬한 시위에 휩싸이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공공기관과 상점을 습격하고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이는 배경에는 아프리카계·아랍계에 대한 오랜 차별과 고질적인 경찰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3일(현지시간) dpa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밤부터 시작해 5일째 이어졌던 폭력 시위는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 사이에는 크게 잦아들었다. dpa통신은 “리옹시 등 일부 지역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접근하는 극우 활동가들을 해산하기 위해 최루가스를 쏘긴 했으나 3일 새벽까지 큰 충돌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이 진압 병력을 4만5000여명으로 늘린 데다 나엘의 할머니가 2일 시위대를 향해 폭력 중단을 호소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폭력 시위의 불길이 타오를지 예단할 수 없다. 이번 사태의 불씨가 된 방리유(대도시 외곽 지역) 거주 아프리카계·아랍계 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경찰 폭력의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엘이 사망한 낭테르 역시 파리 교외 방리유에 속한다.
2005년 파리 방리유에서 경찰에 쫓기던 10대 청소년 2명이 변전소 담장을 넘다 감전사하는 사건으로 3주 동안 격렬한 폭력 시위가 벌어진 후 프랑스는 방리유 개발과 아프리카계·아랍계에 대한 차별 시정을 약속한 바 있다. 실제 최근 15년여 동안 교통 인프라 개선 등 방리유 개발에 약 500억유로(71조원)가 투입됐다고 프랑스 싱크탱크 몽테뉴연구소는 밝혔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치러질 경기장 대부분도 파리 북쪽의 대표적 방리유인 생드니에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아랍계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2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5년 폭동의 진원지인 파리 북동쪽 클리시수부아의 빈곤율은 현재도 전국 평균보다 3배가량 높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아랍계 또는 흑인 청년들은 다른 인종에 비해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을 가능성이 20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몽테뉴연구소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방리유 거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실업자가 될 가능성도 3배 더 높았다.
아프리카계·아랍계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대응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6년 아다마 트라오레(당시 24세)가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체포돼 연행되던 중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경찰들이 연행 과정에서 체중을 실어 트라오레의 몸을 짓누른 것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 2020년 1월에도 배달 노동자 세드릭 슈비아(42)가 파리 에펠탑 근처에서 교통 단속을 하던 경찰에게 목이 눌려 질식사했다. 슈비아는 일곱 차례나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으나 가해 경찰은 팔을 풀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경찰을 발견하고 작업실로 들어간 음악 프로듀서 미셸 제클레르(41)를 경찰관 3명이 작업실에 따라 들어가 10여분 동안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작업실에 최루탄까지 던졌다.
낭테르에 사는 한 20대 청년은 2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우리는 똑같은 일을 겪는다. 경찰이 우리를 멈춰 세우면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안에서 뭔가가 맺힌다”면서 “어느 시점에서는 그 분노를 표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정교분리에 기반한 공화주의 이념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민자들과의 공존 대신 이민자들을 프랑스 사회에 통합시키는 정책을 추구해온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프랑스는 통합을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지만 무슬림 주민들은 이를 무슬림 탄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디언 일요판 옵서버는 “분노는 궁극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주의의 이상, 즉 공화국이 상징하는 모든 것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방리유의 소외된 인구 상당수가 이 같은 이상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거나 단순히 거짓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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