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자감세 후 정부 지출 축소, 양극화만 키울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의 기획조정실장(1급)을 최근 소집해 내년도 예산안을 다시 작성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각 부처는 이미 지난 5월 말 부처별 예산안을 기재부에 냈다. 예산안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어떤 사업에 얼마의 예산을 배정할지 등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긴축 재정’을 강조하자 모든 부처에 일률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예산안을 다시 짜라는 지시가 하달된 것이다.
예산의 효율적 집행은 중요하지만 장관 책임하에 작성된 각 부처의 예산안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휴지 조각이 되는 사례는 드문 일이다. 기재부는 예산안 재작성에 사흘의 말미를 줬다고 한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예산안을 정교하게 수정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고, 결국 국가보조금이나 현금성 서민 지원 사업 등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이 재정 긴축에 나선 표면적 이유는 세수 결손 때문이다. 올 들어 5월까지 국세수입은 160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조4000억원 줄었다. 6월 이후 연말까지 작년과 똑같은 규모의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에 비해 41조원 부족하다. 그러나 세수 결손은 정부·여당이 자초한 일이다. 지난해 추진한 법인세율 인하·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부자감세 정책으로 올해 당장 17조6000억원의 세수가 준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국민의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서민 살림살이는 오히려 후퇴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 세금은 깎아주고, 정부 지출을 줄이면 빈부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땐 정부가 지출을 늘려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 정부 부채가 늘었지만 한국 재정은 아직 여유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출 축소 정책을 철회하고, 지금이라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복지·교육 등 공공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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