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기관 앞세운 ‘카르텔 정치’, 사정·공포 정국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신임 차관들의 임명장 수여식에서 “민주사회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부패한 카르텔”이라며 “우리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지시했다. 정부의 역할을 사회 곳곳의 ‘이권 카르텔 척결’로 규정하고, 사정·감찰·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부패와 부정은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권 비판 세력을 독단적으로 이권 카르텔로 다 묶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은 다른 문제이다. 수사·처벌 위주의 검찰식 통치를 국정에 앞세우고, 정치와 정책이 설 공간은 뒤로 미루는 것이어서 우려스럽다.
정부의 이권 카르텔 공세는 전방위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KBS 수신료 분리징수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공영방송 독립성과 물적 기반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각계 우려에도 강행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또 여권 뉴스를 하위 순위에 배치한 의혹을 제기하며 네이버의 알고리즘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여당의 문제제기에 정부가 나서면서 ‘관제 포털’을 조장·압박한다는 시비가 불가피해졌다. 정보기술(IT) 분야도 예외가 없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주말인 지난 1일 이례적으로 비상 간부회의를 소집해 “카르텔로 오해 살 수 있는 (통신)정책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에 따라 정부 지원 축소와 규제 강화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당국·공정위·경찰로 구성한 ‘사교육 카르텔 범정부 대응협의회’도 이날 교육부의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261건 중 2건의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다.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 문항 배제’ ‘사교육 카르텔 규명’ 지시 후 국세청은 사교육업체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검경 수사와 공정위의 허위 광고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정부가 민간단체 국고보조금과 건설노조 ‘건폭’ 수사에 내건 이권 카르텔 공격이 정부 부처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공세는 윤 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직접 주도하고 있다. 여당은 엄호하고, 검경과 감사원·공정위·국세청·방통위까지 힘있는 공권력과 정부 기관이 총동원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차관 인사 후 정부 부처엔 고위직 물갈이 인사도 예고된 분위기다. 공직사회와 정부 비판 세력을 압박하면서 사정·공포 정국의 그늘이 깊어지고 있다.
입맛대로 편을 갈라 사정하는 정치는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국정 비전과 민생 정책은 뒷전이고, 정권의 반대 세력 응징으로 지지층 결집만 꾀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도 있다. 그렇잖아도 윤석열 정부 국정은 검찰과 감사원이 이끄는 ‘검찰국가’와 ‘감찰국가’란 지적을 받고 있다. 그 속에서 갈등 현장마다 민관의 사회적 대화는 중단됐고, 책임장관제는 형해화되고, 여야의 협치는 설 땅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수사·감찰·인허가·세무조사를 앞세운 사정 통치가 민주주의 퇴행과 국론 분열, 정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할 헌법상의 권한과 책무를 모두 갖고 있음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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