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눈높이 내세워, 독립유공자 기준도 ‘정권 입맛대로’?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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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3일 “가짜 독립유공자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가운데, 심사 기준과 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보훈부가 추진하는 유공자 공적심사 기준 개정과 관련한 주요 내용은 크게 네가지다. △특별분과위원회를 신설해 현재 2심제인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를 실질적 3심제로 개편하고 △심사위에 역사학계 외 정치·사회·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위촉하며 △친북 등 논란이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기준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대국민 공개검증 절차에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 등이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리는 일은 전임 문재인 정부 때도 해온 작업이다. 가짜 독립운동가는 오래된 논란거리여서, 당시 국가보훈처는 2019년부터 유공자 1만5189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 조사에 들어갔고, 이 가운데 25%가량에 대해선 조사를 마쳤다. 나머지 75%는 조사하지 못했다. 이번 보훈처의 방침을 두고, “사회적 합의에 따라 형성되어 온 서훈 기준을 뒤흔드는 것은 가짜 유공자를 가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며 부적절하다”(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서훈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추진하는 여론몰이”(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등의 지적이 나온다.
보훈부가 추진하는 방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특별분과위 신설이다. 보훈부는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을 개정해 쟁점 안건을 다루는 특별분과위를 신설하기로 했다. 11명 안팎의 위원으로 채워질 이 위원회는 각 분과위원회에서 심층논의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사안 등을 다룬다. 문제는 보훈부가 역사 전공자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법률 등의 전문가도 이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번 사안의 핵심은 공적심사위원회의 물갈이”라며 “지금까지 주로 독립운동 연구자들이 참여한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해왔는데 정부가 ‘국민의 눈높이’ 등으로 이 전문가 체제를 흔들고 여론몰이를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독립운동가 서훈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라 학계의 연구 성과와 합의가 최우선돼야 하는데, 뉴라이트 성향의 정치·사회·법률 등의 역사 비전문가들이 공적 심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장차관 인선에서 극우 성향 인사들이 여럿 발탁되면서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친북 등 논란이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기준을 명확하게 한다’는 보훈부의 방침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사람은 지금도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는 “현재 심사 기준은 그동안 논의되어온 총합체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 이를테면 월북자, 정부수립 이후 수형자는 포상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이미 세워져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방침을 두고 ‘역사적 퇴행’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는 “1990년대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들어서면서 포상 기준이 바뀌기 시작해 사회주의 활동을 했더라도 북한의 고급 관료로 참여하지 않으면 독립유공자로 선정하기도 했다”며 “이번에 보훈부가 마련한 기준이 박정희 정부 때의 기준으로 돌아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 축적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이 이뤄진 지 20~30년가량 됐는데, 때아닌 색깔론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정부가 해방 후의 공적을 이유로 친일 경력자를 독립운동가로 서훈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을 두고서는 ‘친일 행적은 서훈 제외라는 대원칙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훈 정책 결정에 주요하게 참여한 한 대학교수는 “서훈은 국민이 주는 것이라 국민 누구도 반대할 수 없어야 한다”며 “그동안 친일 행적이 있으면 공적 심사에서 통과를 안 시켰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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