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대한 그리움, 예술로 승화한 작가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사계’ 下]
한국의 근현대 역사는 국권 침탈, 6·25전쟁 등으로 얼룩져 고통과 아픔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문화예술 역시 그 흐름을 함께 했다. 작가들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척박한 현실을 토속적인 동화의 세계로 승화한 동심 등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경기도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 중 이 같은 태곳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을 모아 ‘향수의 계절’ 구간을 선보인다. 총 21점의 작품 중 이건희컬렉션은 11점이 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론을 작품에 구현한 박수근은 일상의 인물과 풍경을 고유의 화법으로 담아냈다.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배제한 채 평면적 형식을 구사하는 화풍이 특징인 박수근은 ‘절구질하는 여인’에서도 검은색의 윤곽선 안에 전체적으로 황갈색을 사용해 투박한 색감을 보인다. 특히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표면을 거칠게 마감함으로써 토속적인 미감을 풀어냈다.
전시실의 한쪽 벽에 빽빽히 자리한 이중섭의 작품이 돋보인다. ‘싸우는 소’, ‘닭과 병아리’를 비롯해 함께 전시된 ‘오줌싸개와 닭과 개구리’는 이중섭이 6·25전쟁 발발 이후 피란길에 제작한 작품으로,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해학이 넘친다. 오줌을 누는 남자에 놀란 듯 닭이 도망가고, 개구리가 이 광경을 관망한다. 전통소재를 담백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 표현적이면서도 해부학적인 정확함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전시의 마지막 구간인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은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처럼 여러 시련 끝에 새로운 경지를 성찰해 나간 작가들의 작품을 담았다. 17점 중 8점이 이건희컬렉션이다.
곽인식은 6·25전쟁 시기 암울한 현실이 반영된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유리, 돌 등을 화면에 붙이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이후 색점의 화합을 이루는 화면을 보여주는 단계로 나아갔는데, 그의 작품 ‘무제’를 통해 이것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인 김환기는 구체적인 형상 대신 깊은 사유와 수행으로 선과 점을 통해 화면을 구성해 나갔다. ‘Untitled’, ‘무제’를 통해 비대상적 주제에 대한 추상성이 양식화돼 가는 그의 예술 과정을 볼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이번 전시와 관련, 도슨트 프로그램을 포함해 큐레이터 전시 투어 프로그램, 다문화 어린이·어르신·유아·장애인을 위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특히 종전 온라인 예약서비스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예매 방법을 변경, 현장 발권을 가능하게 했다. 도미술관은 주중엔 시간당 50명, 주말은 시간당 100명의 관람객에게 현장에서 발권을 가능하게 하고, 노쇼 전시 티켓도 추가로 배분한다. 또 오후 5시부터 시작하는 8회차 전시를 추가로 열어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관람객의 입장이 가능토록 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방초아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사계’는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서 예술가들이 시대와 호흡한 작품들을 선보였다”며 “그 시절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의 삶을 반추하고, 동시대 예술가들의 계절을 음미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의 수작들을 다시 읽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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