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풍년’에 툭하면 출력 차단… 속타는 사업자들 [심층기획]

한현묵 2023. 7. 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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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 태양광 발전 구축 후폭풍
전기 실어나르는 송배전망 부족
전력 과잉공급… 대정전 사태 우려
정부 태양광 발전 출력 중단 명령
사업자들 처분 취소 행정訴 맞서
한전 송변전 설비 확대 계획 세웠지만
적자 장기화… 예산확보 어려울 가능성
제주·영호남 출력 차단 증가 전망 속
업계 “ESS 확충 등 근본적 대책 필요”
“출력 차단 사유를 제시하라.”

지난달 8일 광주지방법원 앞에서는 태양광발전 사업을 하는 전국의 사업자들이 모여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태양광발전의 전력 생산을 중단하는 출력제어 조치를 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출력 차단은 전력 공급량과 수요량의 불일치로 전력계통의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발전사업자에 대해 발전기 출력을 정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전력은 수요보다 공급이 모자라도 문제이지만, 전력이 과잉공급될 경우에도 송배전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블랙아웃(대정전)을 일으킬 수 있다.

해마다 봄철에는 일조량이 많아 태양광발전량이 늘어나지만 전력 소비는 적어 블랙아웃이 우려된다. 정부는 블랙아웃 예방을 위해 지난해부터 제주와 호남지역 태양광발전소에 출력 차단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조치에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은 출력 차단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박근혜정부 시절부터 본격 추진해온 재생에너지 보급이 문재인정부에서 확대되면서 태양광 발전설비용량이 폭증했다. 하지만 생산한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배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 보급 등 전력 인프라가 제때 갖춰지지 않으면서 ‘태양광발 정전대란’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무분별 태양광 발전설비 결국 공급과잉

3일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태양광 발전설비 규모는 2만975MW다. 전남이 4644MW(15%)로 가장 많다. 전북 3957MW(13%), 경북 2910MW(9%), 충남 2571MW(8%), 경남 1446MW(4%)로 뒤를 이었다. 영호남 지역이 전국 태양광 발전설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충남이 10%에 육박할 정도로 발전설비가 늘어나 남부지방에서 점차 중부지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태양광 발전설비 자체는 호남지역이 많지만 설비 증가율은 영남지역이 훨씬 빠르다. 2016년 710MW이던 영남지역 태양광 발전설비용량은 2018년 1047MW, 2020년 2754MW, 2022년 4355MW 등으로 매년 전년보다 20∼40%대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6년 만에 영남지역 태양광 발전설비용량은 6.4배나 증가했다. 호남지역도 같은 기간 5.4배나 늘었다. 제주도 이들 지역 못지않게 태양광 발전설비용량이 증가했다. 지난해 태양광 발전설비는 580MW로 6년 전 101MW보다 6배가량 늘어났다.

이처럼 태양광 발전설비가 증가한 데는 2030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라 역대 정부가 보조금 지급 등 지원을 확대한 영향이 크다.
태양광과 달리 다른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용량 증가는 제자리걸음이다. 풍력의 경우 지난해 발전용량은 1893MW로 6년 전인 2016년(1051MW)보다 채 2배도 늘지 않았다. 수력은 2016년 1785MW에서 지난해 1812MW로 거의 발전설비가 증가하지 않았다.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태양광 발전설비용량에 맞춰 송배전 선로가 확충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전에 따르면 2016년 총 송전선로 길이는 3만 3696C-㎞(길이에 회선수를 곱한 값)에서 2021년 3만5190C-㎞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송배전 선로 확충은 막대한 예산과 주민 반대 등이 거세 쉽지 않은 일이다.

한전은 송변전 설비를 확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제10차 송변전 설비계획을 보면 송전설비를 2036년까지 5만7681C-㎞로 2021년보다 1.6배 확대한다. 변전소는 2021년 892개에서 2036년 1228개로 1.4배 확충한다. 이 같은 송배전 설비 확충 계획에 드는 예산은 56조원으로 5년 전 8차 계획 때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적자 늪에 빠져 있는 한전이 이 같은 송배전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호남에서 남아도는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남북축의 HVDC(초고압 직류송전)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전력 수요 밀집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최적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양광이 전체 전력 사용량 40%

태양광 발전설비용량 확대로 일조량이 좋은 지난 4월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전체 전력 수요의 40%에 육박했다. 지난 4월 9일 일요일 낮 12∼오후 1시 한 시간 동안 평균 태양광발전 출력량은 2만1778.7㎿로 우리나라 전체 전력 사용량(5만5577㎿)의 39.2%를 차지했다. 올 4∼5월 두 달간 전기 사용량이 적은 주말과 휴일의 태양광발전 비중은 35∼40%에 달했다.
태양광 발전설비용량 확대로 문제가 되는 지역은 제주와 호남이다. 정부는 이들 지역 내에서 남아도는 전력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발전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설비에서 더 이상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게 막는 조치다. 태양광발전 출력 차단은 2021년 처음으로 제주에서 한 차례 시행됐다. 이후 지난해 28회로 증가하고, 올해는 48회로 벌써 지난해의 2배를 육박하고 있다. 제주가 출력 차단의 타깃이 된 데는 전력 소비는 일정하지만 봄철이면 태양광 발전시설의 증가로 남아도는 전력을 육지로 보낼 수 있는 송배전 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호남과 영남 등 육지에서도 태양광발전 전력 출력 차단이 처음으로 2∼3차례 이뤄졌다. 제주발 태양광발전 출력 차단이 내륙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앞으로도 햇볕이 많은 봄철이면 제주와 영호남 지역에서는 태양광 발전설비의 출력 차단이 늘어날 전망이다.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에게 출력 차단 조치는 ‘영업정지’나 다름없다. 제주강산에너지 홍상기 대표는 노후를 위해 2016년 17억원을 투자해 1만㎡ 부지에 750㎾ 태양광 발전설비를 조성했다. 하지만 날씨가 좋으면 한전에서 전력 출력 차단 조치를 내려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홍 대표는 “올해 벌써 20여 차례 이상 출력 차단을 당해 1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며 “정부가 보조금까지 주면서 태양광 발전설비를 권장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전기생산을 막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태양광발전 출력 차단 조치는 홍 대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에 발맞춰 2036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30% 이상 높여야 한다. 현재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전체 전력의 9.3%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3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 당연히 태양광 발전설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력생산의 계절적 요인이 큰 태양광의 경우 잦은 출력 차단은 불가피하다. 올해 출력 차단으로 발생한 손실은 50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매년 이 같은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태양광 시설. 세계일보 자료사진
◆툭하면 출력 차단…사업자들 소송 맞대응

정부의 잦은 태양광 발전설비 출력 차단은 결국 법정싸움으로 이어졌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와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는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를 대상으로 출력 차단 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를 상대로 출력 제어의 위법성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양광 사업자가 승소할 경우 남아도는 태양광 전력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부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이들 단체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한 출력 차단 처분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다 법률에 근거 없이 사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양광 발전설비 사업자와 정부의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단체는 사전통지 원칙을 준수하지 않고 출력 차단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출력 차단 직전에 문자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일방적인 통보를 하거나 출력 차단 후 사후에 통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만의 출력 차단은 발전 소상공인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또 이들은 전남 영광 한빛원전의 출력을 살리기 위해 태양광발전소의 출력을 정지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5월까지 23차례 4130㎿규모의 원전 출력감소(감발)를 했다. 태양광발전 증가가 결국 원전의 출력 감소로 이어진 셈이다. 태양광발전 구매단가는 올 1분기 ㎾h당 197원으로 한전이 46원을 주고 사들이는 원전 전력보다 4배가량 비싸다. 무분별하게 늘어난 태양광 발전설비로 값싼 원전 이용을 못하고 있다는 게 원전 전문가의 분석이다.

하지만 태양광업계는 글로벌 의제인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대표주자인 태양광발전 사업을 정부가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기웅 전국태양광발전협의회 회장은 “역대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재생에너지 보급에 열을 올렸는데, 이제 와서 전력이 남아돈다고 개인 재산인 태양광 발전설비의 출력제어로 막대한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며 “송배전 선로망과 전기저장장치(ESS) 확충 등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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