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응급실 뺑뺑이' 전공의 수사에 "정부가 필수의료 기피 부추겨"
의료계, 필수의료 사고 특례법 제정·응급의료기관 보상 확대 등 촉구
올 3월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건과 관련해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된 데 대한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정부가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전공의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며, 즉각 수사를 중단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의협과 대한응급의학회·대한응급의학의사회·대한전공의협의회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그 원인을 잘못 진단해 개별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대처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리는 행태에 대해 강한 비판과 함께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국의 수사를 두고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할 것"이라며 "이러한 부적절하고 부당한 조치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응급의료 현장에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의료진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응급의료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의 응급의료를 포함한 필수의료의 붕괴속도가 지금보다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3월, 대구에서는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한 A(17)양이 구급차를 타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A양이 최초로 내원한 지역응급의료센터인 대구파티마병원은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타 병원으로의 이송을 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 북부경찰서는 당시 구급대에 이송을 권한 전공의 B씨에게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 거부)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의료계는 이 사건이 전공의 개인의 '잘못된 판단'이 아닌 '응급실 과밀화'로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의협 등은 "현재 중증환자를 담당하고 치료해야 할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응급실에 걸어 들어오는 경증환자로 넘쳐나고 있어, 정작 당장 응급의료나 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실은 소위 '빅(Big) 5'라 불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상급종합병원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환자 상황에 맞게 응급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의 이송이 중요하지만, 이러한 적정 이송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점도 짚었다. 중증외상에 대해 '최종치료'나 배후진료를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니, 적시에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의 전원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의협 등은 "게다가 생명이 위태로운 중증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응급의료를 제공하더라도 의료인이 민·형사상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응급환자에게 신속히 제공돼야 할 최선의 진료가 방해되고, 결국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과중한 업무에 비해 보상은 현저히 낮은데, 의료진의 '사법 리스크'까지 더해진다면, 의사들이 응급의료를 비롯한 필수의료 현장을 지킬 동기가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강민구 대전협 회장은 "필수의료 전반에 대한 전공의들의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전공의에 대한 직접 조사와 처벌까지 이어진다면, 필수의료 행위를 했을 때 보호받을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이들 단체는 "의료진이 의료시스템과 현실적 여건에 따라 적법하게 응급상황에 대처했음에도, 결과만 놓고 의료진의 사소한 과오까지 따지고 심지어 경찰 조사까지 받게 하는 것은 의료진을 의료현장에서 떠나도록 내모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붕괴 위기에 처한 응급의료와 필수의료 체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의료인이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소신껏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 의료환경 마련'이 최우선 과제라고도 밝혔다.
의협과 대한응급의학회 등은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보상 등 지역완결적 최종치료 여건 조성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 자제 등 비정상적 응급실 이용행태 개선 등을 대안으로 촉구했다.
전공의 B씨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응급의료 개편 관련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 또한 요구했다.
이들은 "한 번 붕괴된 의료체계를 다시 복구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긴 시간과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며 "질책과 책임 전가보다는 꺼져가는 응급의료와 필수의료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차원의 강력한 지원 대책 마련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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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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