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빠진 정치권… '日 후쿠시마 오염수 팩트'엔 무관심

조병욱 2023. 7. 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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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 4일 ‘후쿠시마’ 보고서
정치권은 ‘당리당략’에만 골몰
與, 2년 전 ‘오염수 방류’ 비판
野는 ‘IAEA 결론 수용’ 뒤집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전성 평가 최종 보고서 발표를 하루 앞둔 3일 정치권은 합리적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는 커녕 진정성 없는 공방만 이어 갔다. 특히 여야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과거에 했던 발언이나 입장을 뒤집은 채로 상대 당을 공격하는 자가당착에 빠졌으면서도 별다른 해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그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 채 정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與 망언 기막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최근 국민의힘 지도부 발언과 관련해 “우리 당을 향해 ‘불치병 걸린 것 같다’, ‘마약에 도취됐다’ 이런 식의 발언을 하는 여당 대표의 망언이 참으로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과거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당시에는 자신들이 실행하지 않았던 대책을 현 집권 당에 압박하고 있고,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내놨던 비판적 입장에 대해선 슬그머니 목소리를 감추고 있다. 여야는 공수가 뒤바뀐 현 상황에서 서로를 ‘내로남불’식으로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 성일종 우리바다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IAEA 검증결과 보고 후속대책 간담회’에서 “IAEA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검증 결과를 이번 주 발표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문재인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도 이 결과 보고서를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공격했다.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 IAEA 국제검증단에 파견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가 참여한 결과물을 스스로 부정하지 말라는 비판이다. IAEA는 이르면 4일 일본 정부에 보고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성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야당이던 2020년 10월 당시 문재인정부를 향해 “후쿠시마 방류에 더 철저히 대비하라”고 요청했고, 이듬해 4월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결의안을 발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정부가 2021년 7월부터 후쿠시마 방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조치를 했는데, “이러한 조치를 촉구한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라고 역설했다. 성 위원장은 “윤석열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를 찬성하지 않는다”며 “문재인정부 때부터 해 왔던 조치들을 그대로 승계하고, 더 촘촘하게 챙기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성 위원장의 주장처럼 문재인정부 당시 국무위원들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현재 민주당과는 다른 입장을 내놨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 이재정 의원 질의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방류 문제는 일본의 주권적인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2021년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이 IAEA 기준에 맞는 절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성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며 “윤 정부의 기조가 문 정부의 기조와 다른가. 입장을 밝혀 주기 바란다”고 했다.
“野 공세 멈춰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운데)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총공세를 펴는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미국산 소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마시겠다고 헛소리로 떠들던 광우병 사이비 종교 신봉자들의 모습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서상배 선임기자
마찬가지로 현재 여권 핵심 관계자들이 야당이었을 당시 발언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재 자신들이 괴담이라고 비판하는 민주당의 주장과 비슷한 취지로 당시 정부와 일본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국회 속기록 등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제주도지사 시절이던 2020년 10월 ‘제주와 대한민국은 단 한 방울의 후쿠시마 오염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했다. 또 김기현 대표도 2020년 10월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염수가 1∼2년 정도 걸려 동해로 흘러들어 온다는 그린피스나 일본 가나자와대·후쿠시마대 등의 발표 내용을 인용하고, 오염수와 관련해 국제 소송과 가처분신청도 해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여당은 야당의 일본 오염수와 관련한 주장이 괴담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가뜩이나 힘든 민생에 민주당발 제2의 광우병 괴담 정치로 불안감이 겹치면서 국민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을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는 민주당 임종성 의원의 토요일 집회 발언은 15년 전 미국산 소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마시겠다고 헛소리로 떠들던 광우병 사이비 종교 신봉자들의 모습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야권 주도로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거부 결의안이 통과된 데 대해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국제 관계와 연관된 결의안을 국회 이름으로 채택하는 것은 관례가 없는 폭주”라고 질타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내용 면에서도 앞뒤가 전혀 맞지 않으며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라며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적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3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시농수산물도매시장 수산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반면 민주당은 이날 일본 정부와 IAEA를 향해 최종 보고서를 둘러싼 공모 의혹부터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사실상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은 IAEA 최종 보고서에 대한 거부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 후쿠시마원전오염수해양투기저지대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유튜브 매체 ‘더탐사’가 제기한 일본 정부의 IAEA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모니터링 개입 의혹에 대해 우선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제보받은 녹취록을 근거로 IAEA가 일본으로부터 100만유로(한화 약 14억원) 이상의 대가성 금품을 받았고 일본 외무성이 사전에 IAEA로부터 보고서를 받고 수정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 단체와 환경단체, 종교단체 등은 잇따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야권을 거들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윤석열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민변은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소송대리인단’을 구성했다. 오는 21일까지 청구인을 모집해 일본의 오염수 방류 전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이 일본 핵 오염수로 국민들의 먹거리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정치권은 IAEA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전성 평가 최종 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여야 모두 의원들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리며 IAEA 보고서 발표 이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가운데)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도 원내 공지를 통해 “언제든 의원총회와 상임위를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의힘 윤 원내대표는 지난주 원내 공지를 통해 이번 주 “의원들 모두 국회 비상 상황에 대비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간담회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다. 당정은 IAEA가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확인하더라도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는 기간 제한 없이,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은 “국제사회, 일본과의 협의 등을 통해 오염수 방류 모니터링 과정에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참여해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 위축으로 인한 어민·수산업 피해가 없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모니터링을 지속하며 전방위적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병욱·유지혜·김병관·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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