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명 콘퍼런스 등에 9억원 집행… 예비비 주먹구구 지출 관행 여전

이희경 2023. 7. 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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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2021회계연도 22건 지적
공수처 절반 달해… 가장 부실
국회 시정요구사항 살펴보니
공수처 명퇴자 수당 산정했지만 불용
협의회 횟수 과다 책정 예비비 받기도
과기부 4차산업혁명위 예산 삭감 불구
예비비로 다시 증액… 국회 무시 지적
2021년 회계연도에 편성된 예비비 지출 관련 국회의 시정요구사항 중 절반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지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수처는 1억원이 넘는 특수활동비 등을 심의 없이 지출하는가 하면 정책연구용역도 수의계약으로 체결해 법 집행 기관의 기본적인 자세조차 결여된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출범 첫해부터 고위공무원의 퇴직금을 산정하는 등 비상식적인 예비비 지출 항목을 만들어 예산 불용도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국토교통부는 주거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수백억원 주거급여 예산을 2년 연속 예비비로 집행하는 등 제대로 된 추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편성했던 것으로 파악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국회에서 감액된 예산을 다시 예비비로 메우는 등 국회를 무시하는 행태도 보였다.

3일 세계일보가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2021회계연도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 심사결과 시정요구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결과’에 따르면 국회는 2021회계연도에 반영된 정부의 예비비 지출 중 22건을 문제 삼아 시정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비는 정부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지출 사유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마련해 두는 돈으로, 국가재정법상 일반회계 예산총액의 1% 이내에서 편성할 수 있다. 성격상 총액 수준에서 국회 심의를 먼저 받기 때문에 실제 지출이 발생한 이후 국회로부터 예비비 지출 승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가 문제점을 지적하면 각 부처는 시정 조치 후에 향후 예산 운용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2021회계연도에 편성된 예비비의 경우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결산과 함께 최종 심사돼 시정 요구사항이 확정됐고, 기재부는 올해 1, 5, 8월 각 부처로부터 조치완료 여부를 확인 중이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예비비는 예측 불가능하고 시급하며 다른 것으로 할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업들이 있다면 문제”라며 “예비비는 예산의 효율적인 배분 및 집행과 관련이 있는데, 정부가 심사숙고해 예비비를 편성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청사 전경. 공수처 제공
◆공수처, 인건비 과다 계상 용역은 수의계약만

후속 조치결과에 따르면 공수처에 대한 지적사항이 11건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고, 국토부와 보건복지부 및 외교부가 2건씩, 기재부와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 과기정통부, 질병관리청 및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각 1건씩 있었다. 유형별로는 중복포함 제도개선이 13건, 주의가 9건, 시정이 2건 등으로 나타났다. 예비비 지출 관련 국회에서 결정된 시정요구 건수는 2018회계연도 50건, 2019회계연도 34건, 2020회계연도 35건으로 해마다 낮아지는 추세다.

부처별로는 2021년 1월 출범한 공수처의 예비비 편성 및 지출이 가장 부실했다. 구체적으로 공수처는 출범 후 1개월 안에 수사 인력을 공석 없이 임용하겠다는 전제로 예비비를 산출해 인건비 예산 집행 실적이 저조했다. 디지털포렌식 담당 수사관의 경우 임용 자체가 2021년 하반기에 이뤄진 탓에 디지털포렌식 수사관 교육비 1250만원 전액이 집행되지 않았다. 또 출범 첫해에 20년 이상 일한 고위 공무원이 공수처에 임용된 이후 스스로 퇴직할 확률이 낮음에도 수사처검사 1명과 직무등급이 나등급에 해당하는 인원이 퇴직하는 것을 가정해 명예퇴직수당을 산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21년 편성된 명예퇴직수당 관련 예비비는 전액 불용됐다. 아울러 수사협의회와 공소협의회를 68회 개최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예비비를 배정받았지만 실제 개최 실적은 공소심의위 2회, 수사심의회 및 수사자문단 등은 1회에 그쳐 예비비를 과다 계상했다.

공수처는 특히 각종 예비비 집행에 절차를 거치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2021년 수사 업무 전반의 진행 상황이 저조했음에도 특수활동비 1억300만원을 전액 집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특수활동비 심사위원회 구성 및 집행 결과보고서 작성, 특수활동비 사용 직원들에 대한 교육 실시 등의 절차를 건너뛰었다. 국회가 이를 문제 삼자 공수처는 2021년 11월에야 특수활동비 심사위를 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수처는 아울러 정책연구용역 3개를 모두 수의계약으로 추진해 국회로부터 제도개선을 요구받았다. 국회는 “수의계약은 자의적인 업체 선정이나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부처도 주먹구구식 예비비 지출

다른 부처 역시 예비비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건 마찬가지였다. 국토부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조사 및 주거급여 관련 사업 예산을 2년 연속 예비비로 집행했다. 이 사업은 2020년 947억3600만원, 2021년 775억55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집행 규모가 컸는데도 통상적인 예산 편성 절차를 밟지 않은 셈이다. 국회가 ‘주의’ 조치를 내리자 국토부는 올해 예산부터는 주거급여 수급가구 및 지원단가 재추계를 통해 전년 대비 예산을 17.9% 상향해서 편성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또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은 청년정책추진단 규모를 청년정책조정실로 확대하고 인원을 10명으로 늘린 뒤 예비비를 배정받았지만 실제 추진된 사업은 행사 개최와 홍보, 연구용역이 전부였다. 또 청년참여 거버넌스 사업의 경우 참석 인원이 10명도 안 되는 콘퍼런스 등을 개최하면서 9억75만원을 집행하기도 했다. 아울러 국무조정실 전체위원회 등 회의가 당초보다 적게 개최되면서 회의 경비(1억5394만원)의 실제 집행액은 1억1425만원으로 실집행률은 71.5%에 그쳤다.
지난해 8월 존속기한 만료로 폐지된 과기정통부 산하 4차산업혁명위는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며 무리하게 예비비를 편성하기도 했다. 4차산업혁명위는 국회 예산안 심의를 통해 직책수행경비 2300만원 등 2500만원이 깎였는데, 다시 예비비를 통해 증액했다. 또 데이터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2명을 추가하면서 1억1900만원을 배정했지만 1억1000만원을 사용하지 않았고, 연구용역비 2억원을 증액했지만 ‘코로나19 위험시설/지역선제적 식별에 관한 연구’와 같이 관련성이 의심되는 연구를 수행했다. 국회는 이를 두고 “국회 예산심의확정권을 무력화하는 등 부적정한 측면이 있다”며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이 밖에 외교부는 ‘루마니아 의료기기 긴급지원’ 등에 477억5900만원의 예비비를 편성했지만 집행이 부진해 지적을 받았고, 기재부는 정부 조직 신설 및 확대를 위해 예비비 507억원을 배정받았지만 평균 집행률은 63.3%에 그쳐 전체 예비비 집행률(95.6%)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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