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일정 강행군하며 ‘균형외교’에 전력 다해
2003년 5월11일(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는 6박7일 방미 길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기간에 “반미면 어떠냐”는 호기로운 발언으로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미국을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첫 대통령이다. 권양숙 여사는 미국 서부는 두번 갔었지만 동부는 처음이라고 했다.
출국 며칠 전 벤처기업 전문가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한테서 전화가 와서 방미수행단의 벤처기업가 7명이 몽땅 서울 사람이라며 대구 기업인을 한명 추천하기에 정무수석실에 이야기해 추가했다. 대통령 출국 환송차 아내와 함께 성남 서울공항에 갔다. 대통령, 고건 총리, 정대철 민주당 대표와 둘러앉아 차를 한잔 했다. 미국까지 비행시간이 13시간이라기에, 1978년 내가 유학 갈 때 하와이, 댈러스를 거쳐 보스턴까지 28시간 걸렸다고 하니 모두 놀랐다.
2층 환송대에 장관들이 부부 동반으로 줄을 서는데 내 자리가 어딘지 몰라 우왕좌왕하니, 평소 명랑하고 유머가 많은 노 대통령이 “짝이 바뀔 뻔했네요”라고 농담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서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숙소였던 대통령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노 대통령 일정표를 보더니 놀라며 “내가 여기서 평생 일했지만 이렇게 부지런한 국가원수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부시 대통령과 전화 회담할 때 배석했던 외교부 고위관료가 “노 대통령만큼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걸 듣기도 했다.
화물연대 파업과 며칠 동안 씨름한 뒤 5월17일(토) 오후 5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대통령 귀국 환영식에 참석했다.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돌아오니 직원들이 관저 앞에서 대통령을 환영했다.
고건 총리와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문재인 수석과 관저 만찬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회담 뒷얘기를 했다. 부시 대통령이 부인 로라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다가 문전박대당해 무안해 했고, 부시는 폼 잡으며 큰 목소리로 떠드는 스타일이어서 자신과 정반대인 것 같다고도 했다. 반도체회사 인텔을 방문했을 때는 시차 적응이 안돼 깜박 졸다가 깨어나 원고도 없이 엉터리 같은 즉석연설을 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 교육부의 나이스, 새만금 등도 화제에 올랐다. 화물연대 파업은 대통령 방미 기간에 타결됐지만 최종찬 건교부 장관이 물류대란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문제가 있으면 몰라도 실수 한번 했다고 장관을 바꾸지 않고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며 바로 반려했고, 내가 옳은 말씀이라고 동조했다. 8시 넘어 자리가 파했는데 노 대통령은 1주일 강행군과 장시간 비행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이 없어 놀라웠다.
한달 뒤 노 대통령은 일본을 국빈방문했다. 나도 방일 수행단에 포함됐다. 6월5일(목) 9시 수석회의에서 이해성 홍보수석이 “지난번 방미 때 구설에 올랐으니 내일 방일 때는…” 이라고 말하다가 노 대통령의 질책을 들었다. 참여정부를 상투적으로 공격하는 언론을 그대로 인정하는 거냐는 지적에 이 수석이 무안해 했다. 나는 중국이 1972년 일본과 국교 정상화 때 저우언라이 총리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용서하되 잊지 않겠다’(恕而不忘)는 말로 일본을 제압하고 일본 국민을 감동시켰다며 한국과 중국의 과거사 접근 방법의 차이를 설명했다. 일본 지도자 앞에서 과거사 언급을 최소화하고 미래지향적 이야기를 하시라고 권했다.
6월6일(금) 11시20분 서울공항을 출발했다. 공군 1호기 대통령 전용기는 생각보다 협소했다. 비행기 안에서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반기문 외교보좌관에게 뭔가 불만이 있는지 큰소리로 따졌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 반 보좌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외교학과 한참 후배인데…”하며 섭섭해 했다. 오후 1시 반 하네다공항에 도착, 베르사유 궁전 풍 영빈관으로 갔다. 오후 3시 고이즈미 총리가 환영식을 열어줬다.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했다. 양쪽으로 일본과 한국 초등학생들, 한복 입은 부인들이 다수 도열해 양국 국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다. 마침 현충일이라 감개무량했다.
3시 반 황궁을 예방해 천황 내외와 인사를 나눴다. 자애로운 인상의 노부부였다. 천황비는 최초의 평민 출신이라 처음에 구박을 받았다는데 얼굴에 따뜻함과 고상함이 넘쳤다. 직원들이 친절하고 정원이 아름다웠다. 차 10여대가 모두 떠날 때까지 천황 내외는 서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듣기로 천황은 한국을 방문해 과거사를 진심으로 사과할 의향이 있었다는데 끝내 실현되지 않아 아까운 생각이 든다.
저녁 7시30분~10시30분 황궁 만찬에 참석했다. 내 옆에 가와구치 외상이 앉았다. 영어를 잘하고 꾸밈없는 성격이었는데 주말엔 비디오를 5~6개나 빌려본다고 했다. 아들은 미국 회사에 근무하고, 딸은 미국 대학원생인데 핵폭탄을 연구한다기에 다음에 북핵을 연구해보라고 권했다. 오케스트라가 양국 곡을 번갈아 연주했다. 10시쯤 대통령 내외와 황족이 퇴장하기에 끝나는가 보다 했는데, 옆방으로 옮겨가 칵테일 파티로 이어졌다. 천황 내외와 잠시 대화했다. 천황에게 아버지가 해방 전 황궁 바로 앞 제일생명에서 근무했다고 말하니 연세를 묻고 건강, 장수를 기원해주었다. 제일생명 건물은 미군이 전후 사령부로 쓰려고 폭격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황태자 내외와도 잠시 대화했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1981~85년 하버드를 다녔고 경제학과 제프리 삭스가 지도교수였다고 한다. 나와 2년이 겹쳐 대화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아베 신조 부부와도 대화했는데, 부인이 한국 드라마 광팬이고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옆에서 일본인들과 대화했다.
6월7일(토) 오전 9~10시 정상회담에 이어 10~11시 확대정상회담에 김진표 부총리, 윤진식 산자부 장관과 내가 배석했다. 11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한국은 아무래도 압박보다는 대화에 무게”라고 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압박은 대화를 위한 수단”이라고 대답해 한국 입장에 다가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여러차례 노 대통령을 추어올렸다. 저녁 7~9시 고이즈미 총리 초청 만찬에 참석했다. 우에노 부장관, 노 대통령 취임식 때 만난 누카가 중의원 의원, 자민당 간사장 등을 만났다. 우에노 부장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팬이라는 초청가수 보아의 사인을 받고 좋아하더니 조금 뒤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과 나한테도 사인을 받아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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