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이주민엔 멀기만 한 '자유·평등·박애'…"시위 멈추려면 차별 인정부터"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지난주 경찰이 알제리계 청소년을 사살한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시위가 과격해지자 유족조차 폭동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프랑스 정부가 이번 사건 원인을 구조적 인종차별이 아닌 개별 경찰의 일탈이라고 선을 긋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차별에 대한 인정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일(현지시각) 프랑스 방송 <프랑스24> 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파리를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전날 밤 벌어진 시위에서 15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1일 시위에서 700명 이상, 지난달 30일 시위에서 1300명 이상이 체포된 데 비하면 규모가 줄었다. 거의 일주일 간 이어진 시위에서 3000명 가량이 체포됐다. 프랑스 정부는 이 중 30%는 미성년자고 체포된 이들의 평균 연령이 17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운전 중이던 알제리계 17살 청소년 나엘 메르주크가 경찰의 교통 단속 도중에 사살됐다. 경찰 쪽은 나엘이 경찰을 차로 치려 하는 등 위협적 행동을 해 총을 쐈다고 해명했지만 이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경찰이 정차된 차의 운전석에 총을 겨눴고 나엘의 차가 경찰이 서 있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자 경찰이 발포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시위의 촉매가 됐다.
시위가 격화되며 2일 새벽 파리 남부 라이레로즈에선 시장 뱅상 장브륀의 집으로 차량이 돌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로이터> 통신은 현지 검찰에 따르면 차량이 담에 막혀 집 안까지 들이닥치진 않았지만 시위대가 이후 차량에 불까지 붙였다고 전했다.당시 집무실에 있어 화를 면한 장브륀 시장은 성명을 내 5살과 7살 자녀 중 1명과 배우자가 대피 중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라이레로즈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보른 프랑스 총리는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며 가담자들을 단호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저녁 총리·내무·법무장관 등과 특별안보회의를 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일 양원 의장들과, 4일 시위가 발생한 220곳 지역 시장들을 만나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시위는 인근국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프랑스24>는 2일 프랑스어 사용자가 많은 스위스 서부 로잔 시내에서 100명 이상 규모의 연대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시위대가 상점 창문을 부수고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7명이 구금됐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라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도 연대 시위가 일어 64명이 체포됐다.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며 나엘의 유족조차 시위를 멈추라고 호소했다. 나엘의 할머니는 나디아는 2일 현지 방송 <BFM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폭동과 파괴를 멈추라"며 "나엘을 (폭동의) 핑계로 삼지 말라"고 촉구했다. 나엘의 장례식은 1일 그가 거주했던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가족들에 의해 치러졌다. <AP> 통신은 장례식에 수백 명이 모여 들었고 그 중 대부분이 흑인과 아랍계였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프랑스 내 아프리카계와 아랍계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 지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랑스의 한 독립 민권 기관의 2017년 연구에서 아프리카계나 아랍계로 인식되는 남성은 백인 남성에 비해 경찰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 받을 가능성이 3배, 불심 검문을 받을 가능성은 5배 더 높다고 제시됐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계 및 아랍계 청년들은 나엘의 죽음이 그간 자신들이 당했던 경찰에 의한 폭력 및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모로코 출신 25살 청년 일리스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지난해 7월 파리 동부에서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경찰을 향해 폭죽을 쏘자 경찰이 인근 벤치에 앉아 있던 자신을 폭행해 이가 빠지고 턱이 부러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후 변호사를 통해 경찰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15년 동안 파리 외곽의 저소득·이주민 밀집 지역에서 아프리카계 및 아랍계 청소년들과 함께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는 노라 하마디는 "이들 청소년들은 (프랑스 혁명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가 자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가 프랑스 정치에서 존재감을 높이며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24>는 한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군과 경찰의 60% 이상이 마린 르펜(39%), 에릭 제무르(25%) 등 극우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아프리카계 및 아랍계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라비나 샴다사니 유엔 인권사무소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관련해 "국가가 법 집행 과정에서 차별과 인종주의를 심각하게 다뤄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지만 프랑스 외무부는 "프랑스 경찰의 인종주의나 구조적 차별에 대한 어떤 비난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프랑스24>는 에릭 듀폰 모레티 프랑스 법무장관이 기자들에게 이 사건은 "경찰 전체가 아닌 한 명의 경찰에 관한 것"이라며 제도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활동가들을 비난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및 사회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이저 맥퀸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프랑스학 강사는 <프랑스24>에 프랑스 정부가 "경찰력 집행에서 조직적 차별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비양심적"이라며 국제 인권단체가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기 때문에 "구조적 차별이 없다는 말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거짓"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범죄학자 세바스티앙 로셰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인데, 우리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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