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프라이드의 달
[숨&결]
[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한국에서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시각에서 6월은 주로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Pride Month·프라이드 먼스)로 기념된다. 프라이드 먼스 기간에는 미국 뉴욕 등 세계 대도시에서 ‘퀴어 프라이드’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호국 보훈의 달을 기념하는 한국에서도 매년 이 기간 퀴어 행사가 개최되지만 쉽지 않다. 혐오 세력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다. 지난 1일 토요일에 개최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매년 사용하던 시청 광장의 허가를 결국 받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야 했다. 그 자리는 기독교 콘서트가 차지했다.
한 사회가 보장하는 성소수자의 권리는 단순히 한줌 소수자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다뤄지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성소수자 수용이, 한 사회가 가진 차별과 윤리와 정의의 문제이며, 사회 통합의 문제이자, 전통적인 성 역할과 고정관념의 척도라고 분석한다. 성소수자에 대해 배타적인 사회일수록 마찬가지로 노약자, 장애인, 난민 등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배제적이며, 높은 수준의 남녀 임금 격차와 낮은 사회통합 수준이 목격된다. 배타적인 사회일수록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이는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오이시디가 성소수자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회원국들의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태도는 개선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회원국 평균보다도 낮게 제자리걸음 중이다.
성소수자 포용 문제는 안보의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미친다. 엄격하게 통제된 질서 아래 통일된 군대가 군기(軍紀) 잡힌 군대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선 낯설겠지만, 다양성과 평등은 현대 군대의 사기와 전투력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 출신 배경이 뒤섞여 있는 미군의 경우, 랜드연구소같이 권위 있는 싱크탱크에서도 군대 내의 다양성 보장에 대한 정책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군대 내의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회적 소수자에 속하는 군인이 집단 내에서 배제될수록 군의 전투력은 감소한다는 주장은 안보 연구의 영역에선 이견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전장에서의 불평등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구한 제이슨 라이얼 다트머스대학 교수는, 구성원 개인이 온전한 시민권을 누리는 사회의 군대일수록 전투력이 강한 군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불평등한 군대일수록 다양한 가치관을 무시하고 강제로 응집시키기 위해 하급자를 위협하거나 폭력을 가하고, 이로 인해 전투력이 약해진다.
한국 군대 내의 성소수자는 어떨까? 오이시디는 성정체성/성적지향은 개인의 개성을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에 숨기도록 강요되거나 공개되었을 때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기준을 제시한다. 한국 군대도 성소수자와 관련한 훈령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동성애자 장병’에 대한 ‘지휘관’의 사고 예방용 관리 조항에 불과하다. 한국 군대의 성소수자 문제란 ‘어떻게 잘 숨길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지, 성소수자 군인을 포용할 수 있는 가치관을 집단 내에서 어떻게 조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는 사이 우리 곁의 여러 성소수자 군인들은 입대하고 전역한다. 그들 중 여럿은 훈령의 존재가 무색하게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거나(군형법 92조의6), 강제전역 당하거나(고 변희수 하사 사건), 혹은 처지를 비관해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호국과 안보, 경제 문제는 전통적으로 보수 진영이 우선시하는 가치였다. 가장 보수적인 영역에서조차 진보의 상징인 다양성과 평등, 포용이 강조되는 지금, 감히 “호국 프라이드의 달”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해본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경제도 안보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당신들이 최고로 여기는 가치에 대한 손익의 관점에서라도 제발 성소수자 문제에 주목해주길 바라본다. 완전히 달라 보일지라도 우리와 당신은 실은 연결된 가치라는 것을,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호국 프라이드의 6월이 기념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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